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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lee Oct 16. 2020

우리는 인연이 아닌가 봐요

그 소개팅이 안된 이유(1)

가을이 되니 부쩍 외롭다.

누구라도 만나까? 생각이 며 괜히 지난 인연들을 뒤적거린다. 그러나  인연(들)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소개팅 에피소드를 떠올려본다.



1. 그러게 중간에서 보자고 했잖아요.

까무잡잡한 피부에 선한 인상, 그개발자라고 했다. 평소 호감을 갖고 있던 직업군이었기에 얼른 만나보고 싶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연락을 하고 보니 사는 곳이 너무 멀었다. 나 회사는 서울, 집은 고양시다. 반면 그는 회사와 집 모두 경기도  반대편다. 그렇다고 만남을 취소할 수는 없는 일. 그는 토요일 저녁에 일산으로 오겠다고 했다.


'일산이요? 너무 멀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강남에서 봐도 되는데'

'강남이나 일산이나 어차피 운전해서 가야 해요. 그리고 저 일산 몇 번 가봤어요'

'네. 여기 와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조심해서 오세요'  


토요일 오후에 차로 서울을 가로질러 다니, 2시간 넘게 걸릴 텐데. 걱정이었다. 하지만 그와 내가 만족할 만한 중간 지점이 마땅치 않았다. 그가 여기까지 ,  밥을 사면 .   

약속은 6시. 그는 4시에 출발했다고 한다. 하지만 6시가 되었는데도 는 올림픽대로 어딘가라고 했다. 막히는 데 별 수 있나.

결국 그는 7시가 다 되어 도착했다. 지친 얼굴로 "오래 기다리셨죠?" 인사하는데, 정말 비싸고 맛있는 저녁을 사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소고기집으로 그를 데려갔다.

소개팅 분위기는 만족스러웠다. 나는 먼 거리를 와준 그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평소보다 분위기를 띄우려고 노력했다. 그도 신나게 호응고, 오랜만에 재미있는 만남이었다. 우리는 함께 지도 앱을 열어 중간 지점을 열심히 찾아보았다. 꼭 애프터가 있기를 바랐다.  


그는 나를 집으로 데려다주며 "오랜만에 설렌다."고 했다. 나 역시 즐거웠다고, 도착하면 꼭 연락 달라고 진심을 다해 말했다.

자정이 훌쩍 넘어 집에 도착했다는 그의 연락이 왔고, 말투에서 피곤함이 느껴졌다. 그날 이후 한두 번 안부인사가 오갔지만, 만나자는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연락은 끊겼다.


며칠 후, 주선자가 나에게 물었다.

"그 남자랑 또 보기로 했어?"

"음... 잘 모르겠어. 사실 난 그분 마음에 들었는데, 또 보자고 하기가 조심스러워"

"사실 나도 남자 쪽 얘기 들었는데, 너 만난 날 운전을 5~6시간 했다며. 너무 피곤한데 아무리 가도 집이 안 나오더래."

"아... 이사 가야 하나..."

"남자분이 그랬대. 결혼을 한다면 이런 여자랑 하는 거구나, 본인이 아니더라도 너는 곧 결혼할 거 고 했대"

"에이, 정작 보자는 말 안하 ." 


아쉬움이 남은 건 오히려 내 쪽이었다. 후회할 바엔 용기를 내자 싶어 그에게 한번 더 만나고 싶다고 카톡을 보냈다.

한참 뒤 답이 왔다. '좋은 분 만나세요.' 

그의 답변에는 여지가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소개팅에서 '거리'를 따지기 시작했고, 남자가 애프터를 하지 않는 이상 절대 연락하지 않는다. 그것이 진심이니까.



2. 폭우와 함께 사라진 소개팅남

장마가 이어지던 8월의 어느 날. 건너 건너 소개팅이 들어왔다. 무려 2살 연하라고 한다. 나는 불필요 오해가 싫어 '남자분이 연상 괜찮대요? 저 86이에요.' 거듭 확인했다. 주선자는 걱정 말란다. 그날 저녁, 곧바로 연락이 왔다.

소개팅은 약속을 잡을 때 어느 정도 느낌이 오는데, 이 사람은 좋은 쪽이었다. 말이 잘 통했다. 그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우리 대화가 재미있네요." 라며 만남이 기대된다고 했다.


만나기로 한 일요일, 아침 일찍 카톡이 왔다. 소개팅남이었다.

'비가 많이 오네요'


불길하다. 그를 만나지 못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덤덤하게 답했다.

'쉬는 날인데 일찍 일어나셨네요. 어제부터 계속 오네요'


그는 비가 많이 온다며, 저녁에는 더 많이 올 거라고 다.

속이 히 보지만 예의는 지켜야지. '혹시 이따 나오는 건 괜찮으세요? 저는 가까운 거리라 괜찮을 거 같은데'


'너무 많이 오는 것 같은데 다음에 봐도 될까요'


예상대로 였다. 대화가 잘 통한다고 느꼈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퉁명스러운 말투. 당연히 후에도 그게서 연락은 없었다. 

추측하건대, 그는 여기저기 소개팅을 부탁해놓고, 금, 토, 일 차례로 만남을 가졌을 것이다. 금 또는 토요일에 만난 상대가 마음에 들자, 일요일 소개팅은 할 필요가 없어진 게 아닐까.



(계속)



*이미지 출처: https://kr.123rf.com/%EC%8A%A4%ED%86%A1%EC%82%AC%EC%A7%84/%EC%86%8C%EA%B0%9C%ED%8C%85.html?sti=mv9aftx7ghf1badn0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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