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학회에서 만나 취업 준비를 함께 했고, 회사는 다르지만 같은 시기 둘 다 금융권에 입사해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학교 다닐 때와 졸업 직후에는 학회 친구 여럿이 모임을 가졌다. 그러나 유학, 이직, 결혼 등으로 모임은 지속되기 어려웠고 언제부터인가 K와 따로 만나는 게 편해졌다. K는 선비 같은 타입으로, 마음 맞는 한두 명과 깊은 친분을 유지하는 걸 잘하는 친구였다.
우리는 서로 직장생활을 응원하는 친구다. 둘 다 성실한 집돌이 집순이인 데다, 학회 친구들 중 유일하게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는 미혼이기에 공통점이 많다.
얼마 전 입사 10년을 기념해 저녁을 함께 했고, 나는 K에게 말했다.
"10주년 금메달 받고 축하받아서 좋긴 한데, 한편으로는 너무 우울하더라"
"왜?"
"음... 열심히 다녔는데 막상 남은 게 없어.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다닐 수 있을지 불안해"
"나도 마찬가지야. 근데 난 내가 조금씩 쌓아온 돈 보면 뿌듯하더라고"
"돈? 얼마나 모았는데?"
"한 4~5억 될걸?"
뭐라고?
생각해보니, 우리가 재테크 이야기를 나눈 적은 있어도 각자 얼마 모았는지 공개한 적은 없었다.
충격이었다. 나랑 똑같이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연봉도 비슷한데 그렇게 많이 모았다고?
사실 주변에 재테크를 잘한 친구들은 여럿 있다. 일찍 결혼하면서 다소 무리해 집을 샀지만, 결과적으로 집값이 크게 오른 이들이 대표적이다. 솔직히 부럽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운이고, 내가 따라 할 수 없는 거니까 크게 질투가 나진 않는다.
그러나 K는 다르다. 나처럼 K도 싱글이다. K 역시 잘 모르는 부동산이나 대박주에 올인할 성격은 아니다. 그저 꾸준히 월급을 모아 적금, 펀드, 연금, 주식 (그것도 우량주, ETF)으로 재테크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5억이라고?
내가 깜짝 놀라자, 그는 "아니야. 당장 현금화할 수 없는 것까지 합쳐서 말한 거야"라고 수줍어했다. 그러면서도 K는 주식, 부동산 공부를 게을리 한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나는 진심으로 그에게 말했다.
"너 정말 대단한 거야. 이렇게 차곡차곡 모은 사람 없어. 다들 조금만 돈 생겨도 가방, 차 사는데, 넌 안 그랬잖아. 정말 대단해."
돌이켜보면, 그는 쓸데없이 돈을 쓰지 않았다. 흔한 시계, 차에도 관심 없다. 회사 기념품으로 받은 스마트 워치에, 5백만 원짜리 중고차를 탄다. 자기 자신을 과하게 꾸미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절대 짠돌이는 아니다. 친구를 만나면 밥을 사는 편이고, 어쩌다 내가 계산하면 머지않아 그 이상의 식사를 보답한다. 옷은 아웃렛에서 사고 연 1~2회 여행도 간다. 작년에는 부모님께 생애 첫 유럽 여행을 선물했다고 한다. 늘 나를 위해 장바구니를 꽉 채우는 나와는 다르다.
K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은행 앱을 열어보았다. 주식 계좌도 살펴보았다.
아무리 영혼을 끌어모아도 내 금융자산은 5억은커녕, 그 절반도 안된다. 대체 10년 간 받은 월급을 어디에 썼을까. 자괴감이 든다. 왜 나는 대출받아 부동산에 투자하기를 주저했을까. 왜 작년 이맘때 테슬라와 신풍제약을 몰랐을까. 그렇게 한숨을 쉬다 번뜩 정신이 들었다. 부정적인 기분이 쌓이면 스트레스를 받고, 곧 충동구매로 이어질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갑작스러운 소비 절제와 고위험 투자는 시도할 수 없겠지만, 최소한 3가지는 지키려고 한다.
1. 만기 된 적금, 펀드는 곧바로 재 예치할 것.
나는 월 1~2백만 원씩 10년 간 꼬박꼬박 저금해왔다. 원금만 2억 이상이어야 한다. 하지만 나의 패턴을 되돌아보니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만기가 다가오면 부자가 된 기분에 과소비하는 것. 몇 년간 힘들게 모은 적금을 카드값으로 날려버리는 것이다. 만기는 가능한 길게 설정하고 만기 알림이 오면 소비 목록을 떠올릴 게 아니라, 어디에 투자할지 고민해야지.
2. 전투적으로 경제경영, 투자 분야 책을 읽을 것.
9월부터 카카오 프로젝트 100에 참여하고 있다. 매일 경제경영, 자기 계발 책을 읽고 인증해야 한다. 몇 번 빼먹긴 했어도 이 프로젝트 덕분에 투자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은 재테크해야 하는 이유를 상기시키고, 돈을 어떻게 모을지 철학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된다. 투자 책을 읽으며 관련 신문 기사와 브런치 글을 더욱 정독하게 되었다.
3. 돈 얘기, 재테크 얘기에 마음을 열 것. 공부하고 경험할 것.
비트코인 광풍이 불기 직전인 5년 전. 나는 사내 핀테크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남들보다 앞서 블록체인, 비트코인의 존재를 알았다. 그러면서도 투자하지 않았다. 잘 모르겠다는 이유에서였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무관심하던 나와는 달리, 그 분야를 깊이 파고들어 투자한 동료들이 있다. 사실 투자 결과는 제각각이다. 외제차 한 대 값을 번 이도 있고, 수익률 반토막 난 이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나보다 돈 벌 확률이 높은 건 분명하다. 로또를 사지 않으면 절대 로또 당첨이 될 수 없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