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유연하고 수평적인 구조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변화를시도하고 있지만, 너무 잦은 변화는 부작용을 낳는다. 조직개편이 잦을수록 직원들은 새로움을 거부한다. 윗사람들은 자기 세력을 빼앗기지 않으려 촉각을 곤두서고, 직원들은 당장의 안위를 신경 쓰느라 바쁘다. 오랜만에 동료를 마주치면 '요즘 무슨 일 하니. 너희 쪽은 괜찮니?' 묻고 '에휴, 모르겠어요. 똑같죠 뭐'라고 답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이 와중에, 진행하고 있던 프로젝트도 없어졌다.
올해 초부터 참여한 기획 업무였는데, 리소스가 부족하다는 석연찮은 이유로 제대로 보고도 못 해본 채 하루아침에 업무가 사라졌다. 몇 번 겪어봤으니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역시 허탈하다.
"이래서 내가 점점 심드렁해지나 봐. 다시는 일에 정 주지 말아야지." 또다시 다짐.
나는 회사 밖에서의 삶, 인생 2막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브런치와 서점에서 다양한 퇴사 콘텐츠를 볼 때마다 '와, 용기가 대단한 사람들' 또는 '운 좋은 파이어족들'이라고, 나와는 상관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회사 안에서 겪을 내 미래 - 희로애락이 사라진 얼굴로 매주 주간업무에 뭘 써야 할지 고민하고, 일이 많으면 힘들다고 징징, 일이 없으면 괴롭다고 징징. 타인에 의해 내 하루가 결정되는 삶 - 를 떠올리자, 더 이상 내 인생을 방치하면 안되겠다는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11년차 직장인으로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플랜B는 무엇일까?
1. 지금이라도 파이어족?! 최대한 절약하고, 최대한 공격적으로 부동산, 코인, 주식에 투자해볼까. 문제는? 난코인에 100만원도 못 넣는 엄청난 쫄보라는 사실.
2. 한 때 진지하게 고민했던 약대 준비? 60대 후반에도 약사를 하시는 고모를 보면서, '왜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후회한 적이 있다. 하지만 수능 준비에, 약대 6년. 난 생계를 위한 고정 수입이 필요한데, 오랜 공백을 버틸 수 있을까?
3. 다양한 사이드잡 개시. 친한 동료들과 사업 아이템 이야기를 자주 한다. 당장 큰돈 들이지 말고 조금씩 기회를 찾아볼 생각.
4. IT 분야 도전. 하지만... 코딩 책 열 장 읽고 도저히 안 되겠다며 때려치운 적이 있다.
5. 자격증. 나는 경제학을 전공했는데도, 내세울 만한 금융 자격증이 없다는 것이 항상 부끄러웠다. 회계/재무는 내 길이 아닌가 했는데, 최근 사업계획 짜는 일에 흥미를 느꼈고 직장 생활하면서 꼼꼼해진 내 성향과도 잘 맞을 것 같다. 더 늦기 전에 공부해볼까?
그렇게 두 달째, 나는 매일 중급회계 온라인 강의를 듣고 있다. 목표는 세무사 1차 합격.
물론 세무사 시험은 엄청난 공부량을 필요로 한다. 많은 직장인들이 나와 같은 이유로 도전하지만, 직장 생활과 공부를 병행하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다. 모 강사님은 4,000시간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하루 꼬박 3시간 x 3-4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