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를 잃은 지 일주일이 지났다. 지난 일주일은 어느 때 보다 하루하루가 빠르기도 했지만 지독하리만큼 길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루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일방적인 통보를 들었다. 전체 채팅방에서 긴 문자로 우리는 해고 통보를 들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몇몇 사람들도 해고 통보에 포함이 되어있었다. 늦은 저녁 우리는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한참을 핸드폰 화면을 보다가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져 조금은 절망스럽기까지도 했다. 나는 캐나다에 있는 아주 작은 도시에 살고 있다. 대부분의 이민자들이 그렇겠지만 나 또한 정착을 위해 이렇게 먼 시골로 오게 되었다. 최근 캐나다의 이민법 관련 뉴스들은 그다지 좋은 소식들이 아니었고 아직 임시거주자 비자를 가진 나 또한 이 해고 통보에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졌다.
한국을 떠나 외국인의 신분으로 살면서 이민자로서의 삶을 살기까지 일반적으로 많은 비자와 나를 증빙하는 시간들을 거친다. 이것들은 때론 불안정한 상태와 안도의 순간을 넘나들게 만든다. 나의 해고는 어느 누가 봐도 부당했으며 그와 동시에 나는 생계를 걱정해야 한다. 대부분의 많은 친구들이 나의 부당해고에 같이 분노했으나 이후에 나의 문제에 대해서 나는 길게 설명하기엔 너무 힘들었다. 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해고통보 이전에 있었던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떠올리면서 밤을 지새우며 분노했다.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나에게 벌어졌고 나는 그 일의 부당함을 증빙해야 하는 임시거주자의 외국인인 것이다.
우리의 해고 이유는 황당했다. 고용주는 (사장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자신을 험담했던 일을 관둔 직원과 퇴근 후 따로 만났다는 이유로 우리를 더 이상 근무 스케줄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 누가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인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에 대한 참견인 동시에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이유였다. 유튜브에 뜨는 무수히 많은 한인 악덕업주에 대한 영상들의 이야기가 결국 나에게도 일어난 것이다. 그 영상들의 공통점은 일하는 직원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신분의 불안정함을 이용하고 그런 과정에서 사람들은 다양하게 피해를 입는다. 남의 일로 끝나기를 바라는 일은 기어코 나에게도 일어나는 일이 된다. 나는 캐나다 노동법에 관련된 홈페이지들을 찾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들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 며칠은 평정심을 되찾는가 싶다가도 다시 불안감이 찾아오고 분노하고의 반복이었다. 지쳐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적어도 내가 혼자 당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우리는 같이 모여 쓸데없는 이야기들로 웃다가도 채팅방에서 강퇴가 되고 프로그램 접근 권한이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잠시 말을 잃었다. 이후에도 우리는 종종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는 순간들이 있었다.
한 번씩 찾아오는 이 무력감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가진 조건들의 불리함은 이 무력감에 힘을 실어주는 듯했다. 우리는 모여서 이야기했고 같이 밥을 먹었다. 각자의 상황은 달라도 우리는 다음 스탭을 찾기 위해서 움직이기로 했다. 그 사이에 첫눈이 내렸고 12월이 되었다. 오후 4시가 되면 해가 지고 밤은 길어졌다. 올해의 연말이 이렇게나 우울할 줄 누가 알았을까? 시끄러운 도시의 연말이 아닌 조용한 작은 도시에 있다는 안도감이 찾아왔다. 나는 연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늘 일을 했고 한 달 내내 들뜬 그 분위기에서 늦은 저녁까지 일하는 일상이었다. 종일 집에서 주저앉는 마음을 몇 번이고 다잡으며 지내다 산책을 나갔다. 오랜만에 음악을 들으면서 걸었다. 오래전 힘들었던 지나간 시간들을 떠올려보았다. 지금도 나중에 그런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무력감에서 오는 우울을 나는 안다. 그때도 걷고 또 걸었다. 나의 이야기를 쓰고 또 썼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하지만 나의 이 분노와 무력감을 나는 이기고 싶다. 포기하고 싶지 않다.
오랜만에 저녁 산책을 했다. 사람들은 집 밖에 반짝이는 불빛들로 장식을 해두었다. 여러 집들 사이를 걸어 돌고 돌아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 전 사람을 인간적으로 대하지 않는 태도에 대해 분노하며 생각했다. 나는 이 분노를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환경 단체에 소액을 기부했다. 나의 분노가 이렇게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나의 분노는 사라질 수 있을까 아니면 포기하게 되는 걸까. 하지만 이제 난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 졌다. 내가 항상 연말에 이야기했던 “우리 무조건 행복하자고요.”라는 노랫말을 나는 올해도 읇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