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더위는 요 며칠 전까지도 극심하다고 들었다. 내가 사는 곳의 여름은 30도를 넘지 않았다. 하지만 좁은 주방에서의 여름은 퇴근길 눅눅하게 젖은 옷을 입게 되고야 마는 그런 여름이었다. 이번주부터 아침에는 서늘해지기 시작하더니 기온이 조금씩 내려가기 시작했다. 고민하다가 여름 이불들을 세탁해서 넣어두고 입지 않았던 옷들을 모두 정리해 기부를 했다. 이곳의 겨울은 너무 길어서 모두가 여름을 조금이라도 더 붙잡아 두고 싶어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낭만적인 생각을 하기엔 지구는 많이 망가져 버리고야 말았다. 여름엔 이 좁은 동네도 시끌벅적하다. 소음들이 잦아지면 그건 겨울이라는 어떤 신호와도 같다.
나는 최근에 사워도우를 사다가 일주일에 하나씩 먹어 치웠다. 한국에는 맛있는 빵과 디저트가 넘쳐나지만 여기에선 특히나 이런 작은 시골 동네에서는 그런 걸 찾기가 쉽지 않다. 몇 달 전 갑자기 사워도우가 먹고 싶어 계속 생각만 했었다. 코스트코에서 파는 큰 사워도우를 보면서 맛있을까? 생각했다. 난 맛있는 사워도우가 필요했다. 그냥 구워 먹어도 맛있는 그런 빵. 전에 한국에 갔을 때 친구가 직접 만든 사워도우를 잘라 구워 내주었다. 얼음을 넣은 위스키와 멜론도 함께. 어찌나 고소하고 맛있던지 친구의 작은 환대에 나는 너무 행복했었다. 그렇게 생각만 하다 우연히 동네 마켓에서 사워도우를 발견했다. 빵을 구워 파는 가게들이 몇몇 있었는데 주종목이 사워 도우라니 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나는 이탈리안 페퍼로니 맛의 사워도우를 샀고 그 이후 나는 매주 마켓에 가서 빵을 샀다.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이 마켓을 나는 왜 좀 더 일찍 오지 못했는지 통탄스러울 정도였지만 남은 기간 동안 열심히 먹어야 했다. 그리고 나는 오늘 또 빵을 샀다. 다음주가 마지막이라는데 뚜벅이인 내가 주문한 빵을 찾으러 갈 수 없으니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사 온 빵을 썰어 꼬다리 부분을 우적우적 씹으면서 신이 나 어깨를 흔들었다. 작은 시골에는 도시만큼 맛집들이 즐비하진 않아도 숨은 고수들이 간혹 여기저기서 등장하곤 한다.
기본적으로 모든 빵들을 좋아하지만 바나나 브레드와 파운드 케이크는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버터가 듬뿍 들어간 부드럽운 빵은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파운드 케이크는 퍽퍽한 편이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던 나에게 아주 맛있는 파운드 케이크가 나타났다. 같이 일하는 동료의 남자친구 어머님이 만든 빵이었다. 뒤편 마당에서 직접 키운 쥬키니를 넣고 만들었다고 했다. 사진으로 보여줬던 그 쥬키니가 빵이 되었다. 한 입 베어 물고 나는 금세 다 먹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나 부드럽고 촉촉한 파운드 케이크이라니. 적당한 단맛과 촉촉한 식감이 아주 일품이었다. 근처 어디서 사 먹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니 이 또한 통탄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나의 극찬을 전해 들은 어머님은 제법 기뻐하셨다고 했다. 난 어머님이 그 빵을 꼭 만들어서 파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맛있는걸 가족들만 알고 있다니. 어머님은 숨은 고수였다.
20대 초반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빵집은 새벽에 일찍 여는데 출근하면 제빵사 아저씨가 열심히 빵을 굽고 계셨다. 갖가지 빵이 구워지는 냄새가 가득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빵이 좀 남는 날에는 퇴근길에 빵을 들고 갈 수 있었다. 그 당시 그 빵집은 매장이 많지 않았던 프랜차이즈였고 메뉴들도 새로운 것들이 많았다. 거기서 일하면서 빵은 원 없이 먹을 수 있었다. 매일 와서 바게트를 사가던 단골 할아버지는 이 집 바게트가 제일 맛있다고 했고 제빵사 아저씨는 그 말에 흐뭇해하셨었다. 케이크를 진열하다 실수로 망가트리면 얼른 먹으라면서 괜찮다고도 해주셨었다. 모든 음식이 그렇겠지만 역시 남이 해주는 음식은 맛있다. 나중에 요리학교에 다니면서 빵과 디저트를 만들어보니 쉽지 않았다. 계량이 틀려서 온도가 안 맞아서 망치기도 하고 디저트는 만드는 내내 단냄새에 이미 먹고 싶은 생각이 사라지곤 했다. 난 그래서 빵을 잘 만드는 사람이 너무 부럽고 좋다.
새로 사 온 빵은 썰어서 냉동고에 넣어두었다. 그 빵을 버터 두른 팬에 구워 먹으면 정말 행복해진다. 올해 나의 여름의 맛은 그 가게 사워도우가 되었다. 식사 대용으로 먹는 빵들은 넣어두고 한참을 먹고 했는데 사워도우를 일주일 안에 다 먹는다는 건 나에게도 처음 있는 일이다. 다음 주면 마켓이 끝나고 곧 가을이 오고 금세 추워지겠지. 햇살이 내리쬐던 공원과 거리의 나무들이 가지만 남고 바람이 불고 눈이 올 것이다. 겨울의 맛은 어떤 맛이 될까 그렇게 생각하면 긴 겨울도 잘 보낼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