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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한 시대, 너와 나 우리

by kirin

새벽 4시가 다가오는데 잠을 청하지 못하고 영화 두 편을 보다 불현듯 생각이 나 뉴스 속보를 검색하고 영상을 켰다. 계엄이라는 생소한 글자가 매일 뉴스를 뒤덮고 있던 그날이 지나고 나는 추운 거실에서 룸메이트와 탄핵 가결이라는 실시간 뉴스를 봤다. 아직도 주말마다 나의 친구들은 시위에 나간다. 주말마다 길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소리를 나는 작은 화면 너머로 함께한다. 인스타 스토리에 올라온 깃발이 휘날리는 사진과 구오빠의 응원봉을 들고나가는 친구의 사진이 연달아 보인다. 백수가 된 마당에 게다가 현재 구직활동조차 힘든 나는 묘하게 거리 위의 사람들처럼 내 인생도 싸워 나가 이길 수 있을 거 같은 용기를 얻었다. 거리로 나온 성소수자와 전장연 사람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나온 부모들 트랙터를 끌고 올라온 농민들까지. 거리 위에 함께 모인 사람들의 연대가 모든 걸 이겨낼 수 있을 거 같은 마음이었다. 나는 이 연대로 우리 서로도 내 주변부의 사람들이 있다는 걸 결국 우리는 모두 같이 싸우는 같은 사람이라는 걸 그 마음도 오래 기억되길 바란다.


올해 연말은 나에게도 재난과도 같았다. 해고를 당한 다른 동료들과 달리 내 현재 상황은 좀 복잡해졌다. 하필 이민법이 혼란한 시기에 이 일이 일어나 모든 것이 복잡했다. 하지만 하나씩 정리해나가야 했다. 이 일에 대해서 조언을 해 줄 사람들을 찾고 할 수 있는 행동을 해야 했다. 그러한 것들을 알아보고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찾아보고 하는 시간들은 가끔 너무나도 큰 스트레스였다. 연말의 기분은커녕 속 시끄러운 매일의 연속이었다. 우리는 거의 매일 모여 같이 밥을 먹었다. 동네 성당에도 가보고 크리스마켓에도 다녀왔다. 이 시골 동네에서 일을 안 하니 남는 시간에 딱히 할 만한 일도 없었다. 그래도 혼자가 아니니 같이 분노할 사람이 있고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다행이었다. 거리 위의 사람들처럼 나도 주변 사람들에게서 힘을 얻었다. 하루하루의 일과를 보내면서 하나씩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을 해나갔다.


남은 시간들은 많은데 좀처럼 무언가에 집중을 하기에는 어려웠다. 와중에 읽던 책이라도 마저 다 읽자는 생각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김승일이 쓴 <지옥보다 더 아래>. 빨간색 표지에 작은 책을 절반 정도 읽고 덮어두었었다. 제목처럼 이 책은 지옥에 대해서 간혹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지옥과도 같았던 어느 순간들과 지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들에서 나는 위로를 받았다. 나보다 더 한 지옥이 있구나 하는 위로가 아니었다. 나는 일기를 쓰지 않는 사람이다. 내가 슬펐던 힘들었던 시간들을 남기기 싫어 나는 매일의 나를 기록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보니 그 또한 기억해도 되었을 이야기들인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기억이 아무리 선명한다고 한 들 그 모든 기억을 가지고 살아갈 수 없을 텐데 그렇다면 슬픈 기억도 한 번쯤은 남겨두는 게 나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나는 기억할 수 있는 게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일기를 쓰지 않은 겁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지옥보다 더 아래>를 읽으면서 살아온 어느 순간이 혹은 지옥으로 떠올려진 어떤 것들에 대한 글들은 내가 말하지 못할 것들이라서 위로가 된 거 같았다.


우리는 모여 밥을 먹다가 짧은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갑자기 우리는 2박 3일의 여행을 계획했다. 그리고 우리가 여행을 간 날은 가장 추운 날이었다. 차에서도 발이 시릴 만큼 가장 추운 날씨였다. 흐렸고 바람이 불었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여행을 했던 적이 있었던가 싶었다. 발가락이 얼어 떨어질 거 같았다. 사람들이 가득한 거리에는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의 낭만보다 얼어붙을 만큼의 추위가 더 강렬했다. 몇 군데 봐두었던 식당에도 가고 멋진 건물들도 구경했다. 저녁에는 큰 성당에도 갔다. 동네 성당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높은 천장과 크고 멋진 곳이었다. 미사 전에 안을 둘러보다 소원을 적는 트리를 발견하고선 우리는 종이에 소원을 적었다. 그걸 접어 작은 공에 담아 트리에 걸었다. 뒤쪽 자리에 앉아 알아들을 수 없는 미사를 들으며 가만히 앉아 시간을 보냈다. 저 트리에 걸린 소원들은 신부님들이 열어보는 걸까. 나는 한국어로 적었는데 그래도 이해해 주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들을 했다. 다만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저 소원들이 적힌 종이들을 어떤 의식처럼 처리해 주면 좋겠다. 그냥 모아서 버리게 된다면 그건 좀 속상할 거 같았다. 불에 태우든 기도를 하던 어떤 의식을 하면서 없애든 그렇게 그럴싸하게 처리해 주면 좋겠다. 한 시간이 조금 안 되는 미사 시간에 나는 뒤쪽에 혼자 앉아 듬성듬성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불어로 들리는 말소리와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너무 추웠던 짧은 여행에서 돌아와 나는 집을 알아보러 먼 동네로 나갔다. 그날은 눈이 정말 많이 왔다. 아침부터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어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에서도 눈은 계속 내렸다. 아주 작은 기대로 갔던 집은 아침부터 눈을 뚫고 온 반나절을 한순간에 날려버렸다. 왔던 길을 돌아 걸어가며 생각했다. 뭐 어떻게든 잘 되겠지. 이젠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걸 알고 나니 종일 오는 눈에 발이 푹푹 꺼져가면서도 슬프지 않았다. 하루를 통째로 날리고 집으로 돌아와 밥을 먹고 와인을 조금 마셨다. 그리고 다행히 좋은 집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하나씩 해결하고 있다. 다시 내 일상을 찾고 싶다. 부당한 일에 맞설 수 있는 힘이 있다. 아직도 사람들은 길 위로 나가서 소리치고 밝은 응원봉을 흔든다. 무너질 일상을 그대로 둘 수 없기 때문이다. 모두에게는 지키고 싶은 것들이 너무도 많으니까 말이다. 우리의 새해에는 꼭 작은 일상들을 꾸릴 수 있는 행복한 일이 깃들길 바란다. 올해도 나는 말한다. 김일두의 노래 가사에 나온 그 말. 우리 모두 행복하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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