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을 보러 밖에 나온 김에 커피를 마시러 왔다. 전에 한번 와 본 카페로 왔는데 오늘은 외국인 아저씨가 계신다. 가게 주인이 바뀐 걸까 생각한다. 아무리 봐도 직원보다는 사장님 같은 느낌인데 하면서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오랜만에 밖에서 마시는 커피다. 한 달짜리 버스카드를 사두고선 이제야 두 번째 외출을 했다. 전에 살던 집은 날 자른 사장이 집주인이었다. 거의 한 달을 그 집에서 쫓겨나면 어쩌나 갑자기 집에 찾아오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았다. 이젠 집에서 날 자른 사장에게 쫓겨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코가 시린 거실에 있지 않아도 된다. 좋은 집에서 새해를 시작했다. 새로운 집주인이자 룸메이트는 자매이다. 같은 아시안인인 새로운 룸메이트들은 친절하고 사려 깊은 사람들이다. 집주인도 같은 아시안 룸메이트를 찾고 있었고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알고 내심 좋았다고 했다. 집주인은 나와한 살 차이로 내 또래인 데다가 같은 아시안이라서 느끼는 부분들의 공통점이 많았다. 임시거주자 외국인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 은 내가 이 집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사를 한 후 더 이상 한 시간씩 버스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더 많은 것들이 편리해졌다.
일을 하지 않으니 시간이 넘쳐나는 기분이다. 매일매일 해야 하는 일들을 적어보기도 한다. 마트에 가야 하는지 오늘의 식사는 무얼 먹을지 아니면 읽고 있는 원서는 몇 페이지 더 읽을지 같은 소소한 일들이다. 밀린 영화도 마음껏 볼 수 있다. 생각해 보니 제법 오랜만에 긴 시간을 쉬는 거 같다. 이렇게 길게 쉬었던 적이 있어나 생각해 보면 딱히 생각나지 않는 걸 보니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일을 하다 잠깐 쉬게 되어도 내 의지가 아닌 어쩔 수 없이 쉬게 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거 같다. 그래도 오랜만에 쉬어보니 아프던 손목도 아프지 않아서 좋다. 매일같이 가려웠던 손목의 습진도 없어졌다. 하루종일 집에 있어도 마음이 편하다. 살이 좀 쪄버려서 그게 또 걱정이긴 한데 말이다. 가끔씩 나가서 뛰고 싶어 산책을 나갔다가 매서운 바람에 살갗이 얼얼해지는 걸 느끼고 나면 아직 나가서 뛰는 건 힘들겠구나 싶었다. 그러다 운동을 해야 하지 싶어서 운동 영상들을 찾아본다. 하지만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이사를 하면서 그새 늘어버린 짐들을 싸면서 생각했다. 나는 늘 방한칸에 살면서 왜 이렇게 많은 짐들을 이고 지고 사는지 말이다. 그러면서도 아령을 이고 지고 왔다. 이렇게 아령을 들고 온 보람이 있어야 할 텐데 그 와중에 헬스장을 다녀야 하나 그런 쓸데없는 고민을 하고 있다. 역시 시간과 돈을 모두 갖고 있기란 어쩌면 불가능한 일 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 본다.
새해가 시작되고 운동은 시작도 못했지만 작은 것들을 바꿔보았다. 집에 술과 군것질거리를 사다 두지 않았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자꾸만 먹게 된다. 현재 임시 백수로써 식비도 아껴야 하니 이때만큼 하기 쉬울 때도 없지 않나 싶다. 그러다가도 이렇게 시간이 많은데 운동을 다닐까 하는 생각으로 돌아가지만 말이다.
연말을 의도치 않게 정신없이 보내고 새해를 시작했다. 오랜만에 같이 일했던 동료의 연락을 받았다. 생각지 못했던 안 좋은 소식이었다. 나도 상황이 어지러운데 그 친구의 상황은 또 다른 이유로 까마득했다. 도와줄 수 있는 건 내가 아는 정보들을 알려주는 것뿐이었으며 버티라고 분명 길이 있을 거라는 말 밖에는 없었다. 나는 종종 연락 없는 이들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생각한다. 잘 지내겠지 그러니 연락이 없겠지 싶다가도 늘 아쉬운 마음은 남는다. 상대의 필요에 의한 연락에 내가 가진 마음이 오지랖이었을까 싶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다들 잘 살겠지로 귀결되는 이 마음들. 그래도 오랜만의 연락이 슬픈 소식은 아니었으면 싶었는데 왜 이리 다들 어지러운 일상으로 빠져버린 걸까.
아주 오래전 잠깐 알던 친구가 있었다. 그때 어느 날인가 친구는 자신의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나에게 물었다. 너의 플랜비는 무엇이냐고. 당시 20대 초반의 나는 어려워진 집안 형편 때문에 2년제 전문학교 학비를 도움 받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지덕지한 상황이었다. 알바를 하면서 그 돈으로 개인적인 생활비와 학원비를 충당하고 있었다. 여유라고는 없었지만 하고 싶은 꿈은 누구보다 컸었다. 늘 내가 꿈꾸는 건 그냥 너무 꿈같은 일이라 현실의 좌절과 뒤섞이던 수많은 시간들이 있었다. 그 친구는 제법 괜찮은 동네 아파트에서 어릴 때부터 자랐고 공부도 잘했다. 그 친구의 미래는 한 치의 의심도 없다는 듯 방학을 앞두고 그리던 계획표 같았다. 하나씩 헤쳐나가기에 급급했던 나와는 달랐다. 첫 번째 계획과 그 계획이 안된다면 두 번째 계획을 실행하면 된다는 그 심플함이 나는 부러웠다. 한 번도 선명하게 내 미래를 자세하게 그리지 못했었다. 나는 단칸방에서 가족들과 살았다. 어느 날 늦은 저녁에 내 학비를 가지고 언성을 높이던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불속에서 훌쩍이던 밤도 있었다. 그날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며칠을 생각했다. 그 친구가 내심 부러웠다. 나와 너무나도 다른 좋은 집안 환경과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그 친구를 말이다. 그 이후로 자연스럽게 그 친구와 멀어졌던 거 같다. 각자의 길이 너무나도 달랐으니 어쩌면 이미 우리는 스치게 될 사이였을지도 모른다. 많은 시간이 흘러 우연히 보게 된 친구의 프로필 사진에는 남편과 아이가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 알았던 사람들의 프로필을 가끔 찾아보곤 했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그제야 체감하곤 했다. 이제는 종종 안부를 묻지 않을 만큼 멀어진 과거의 사람들. 나를 기억하고는 있을까. 흘러버린 시간의 점처럼 남은 사람들.
어쩌다 보니 지금 사는 지역에서 4번의 이사를 했다. 지겨울 만큼 이사를 했더니 당분간은 이사를 하고 싶지 않아 졌다. 다행히도 좋은 집을 찾았고 당분간 이사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을 거 같아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산더미 같이 쌓여있던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가고 있다. 요 며칠 눈발이 날리는 날이 많았다. 조금 쌓였던 눈이 녹고 다시 또 눈이 오고. 주방에 있는 큰 창문으로 밖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모두가 일을 나가고 조용한 집에서 느지막이 아침을 먹고 눈 내리는 창밖을 보면서 외출을 또 미룬다. 어쩔 수 없지. 눈이 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