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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rin Nov 03. 2022

파자마 니팅 클럽

실로 엮는 시간의 조각들

한국에 잠시 다녀왔던 친구는 뜨개질을 배워왔다. 주황색 실과 연두색 실로 만든 작은 목도리를 만들었고 그 목도리는 몇 달이 지나서야 내 손에 들어왔다. 뜨개질이 제법 흥미가 있는 활동이라는 걸 전해 들은 나는 그새 관심이 생겼다. 겨울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역에서 살다가 겨울이 완연한 곳에 왔으니 과연 혹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제법 모든 일들에 게으른 나는 바늘을 사고 몇 번의 초보자 과정을 거치면서 잠시 손을 놓았다. 모든 일들의 초보자 과정은 흥미로 시작하나 기본을 만드는 과정에서 흥미를 잃기 마련이다. 그렇게 잊혀가나 했지만 같이 사는 하우스 메이트가 내 코바늘로 뭔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않게 나는 같이 뜨개질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 옆에서 컵받침을 만들다가 냄비 받침을 만들더니 겨울에 쓸 모자를 뜨고 있었다. 옆에서 뜨고 있는 걸 보자니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코바늘을 다시 잡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쉬이 흥미를 되찾지 못해 매우 더디게 뭔가를 만들려고 애쓰고 있었다. 모든 초보자들이 그렇듯이 분명 나는 똑같이 따라 했는데 어디서부터 인지도 모르게 내 손에는 정상 경로를 이탈해버린 실 끝이 손에 남아있었다. 그러다 보면 이게 뭐라고 왜 안 되는 건지 짜증이 나버리는데 그걸 몇 번 반복하니 작은 네모를 만들고 원형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완성된 작은 편물이 손에 쥐어지면 마치 모든 걸 다 만들 수 있다는 묘한 자신감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역시나 그것은 큰 착각임을 깨닫는 것에는 큰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꾸준한 일에 있어서 가진 게으름은 하나의 완성까지 시간을 오래 걸리게 만들고 덤벙거리는 태도는 조금 허술해진 편물의 한쪽을 대충 넘겨버리게 했다. 하지만 코바늘이든 뜨개질이든 해봤던 사람들을 알 것이다. 초보자는 연습 과정을 통해 완성작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중간에 풀고 풀다 포기하면 어떠한 편물도 손에 남지 않는다. 제법 인고의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다행히도 지금의 나는 이 시간을 잘 견뎌서 푸는 일에는 제법 의연해졌다. 시간을 들여 만든 편물이 사라지는 빠른 속도를 겪다 보면 사라지는 모래성과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유튜브 튜토리얼 영상의 썸네일에 나온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 또 시간을 들여야만 한다. 이렇게 나는 작은 주머니 몇 개 겨울에 쓸 모자를 완성했고 지금은 침대 밑에 둘 작은 러그와 핸드 워머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대바늘이라는 진정한 뜨개질의 세계로 입문을 하였다. 다른 방식으로 또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아주 멋진 뜨개질의 세계 말이다.

코바늘이든 대바늘이든 뭔가를 만드는 동안에는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다. 그저 코 개수를 세고 지금 뜨고 있는 하나하나에 집중할 수 있다. 생각보다 엄청난 에너지를 들여서 집중한다기보다는 적절히 안정된 상태의 집중력을 경험할 수 있다. 그렇게 시간들을 모으다 보면 어느새 모양이 생겨나고 하나의 무언가가 된다. 조금 서툴러도 다시 하면 되고 잘 해내면 다른 무언가를 또 만들 수 있는 작업이 주는 묘한 즐거움이 있다. 이렇게 나는 제법 오랜만에 취미를 유지하게 되었다. 처음 나에게 뜨개질을 소개한 친구도 조끼를 뜨며 겨울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뜨개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옆에서 코바늘을 시작한 하우스 메이트도 있으니 뜨개질 이야기를 할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어느 날 친구와 영상 통화를 하면서 뜨개질을 같이 하자는 이야기를 했고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내 하우스 메이트는 자신도 초대해 달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생각지도 않게 영상 통화로 모이게 되었다. 이 상황이 너무나 재밌어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그럴싸한 이름 파자마 니팅 클럽이라는 이름도 생겨났다. 그렇게 그날 우리는 화면 너머로 인사를 하고 같이 뜨개질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랜선 모임은 녹화되고 편집이 되어 친구의 채널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사실 말이 그럴싸한 파자마 니팅 클럽이지 니팅을 빌미로 수다를  시간이  이상이다. 하지만 이렇게 떠들면서 뜨개질을 하다 보면 금세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시차가 다르고 쉬는 날이 다르니 날짜를 잡아 모이기란 쉽지 않지만 코로나로 생긴 비대면의 세상은 이렇게  우리에게 작은 모임의 기회를 주었다.

몇 번의 모임을 가지고 겨울이 찾아왔다. 진정으로 뜨개질을 위한 계절 말이다. 진즉에 사다둔 실이 아직도 남았고 떠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이제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뜨개 영상이고 인스타그램은 예쁘고 좋은 실들을 사라며 자꾸 광고를 보여준다. 쌓아둔 실들을 가지고 뭔가를 다 만들기 전에는 실을 사면 안 되는데 왜 세상에는 이렇게 예쁜 실이 많은 건지. 이제 우리는 실을 보면 자꾸만 사고 싶어 하고 진열된 스웨터를 보면서 이건 뜰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를 한다. 내 손에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일 그건 제법 멋지고 신나는 일인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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