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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rin Sep 11. 2022

음악이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는 상상

기묘한 이야기 그리고 Running Up That Hill

개인적으로 굉장한 팬이라고 하기엔 좀 부끄럽지만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를 좋아한다. 최근이라고 하기엔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아무튼 기대만큼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들의 전개라서 즐겁게 시청하고 있다. 이번 시즌에서는 시즌 내내 등장하던 빌런을 전면으로 내세우면서 이야기의 판을 바꾸고 있다. 그리고 이번 시즌을 보면서 단연코 머릿속에 남은 노래는 Kate Bush의 Running Up That Hill이다. 빌런을 피해 가던 주인공들이 전면으로 드러나는 악의 정체에 맞서 싸우는 도중에 맥스는 타깃이 되고 만다. 친구들은 맥스가 다른 피해자들처럼 죽음의 서사를 맞이하기 직전에 구해내고 마는데 거기서 나오는 노래가 바로 Running Up That Hill이다. 더 자세히 이야기를 하기엔 기묘한 이야기의 스토리를 줄줄 말하는 꼴이 되고 말 테니 더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자 한다. 하지만 아직 이 작품을 보지 않았고 볼 예정이라면 이 글을 스킵하셔도 괜찮다.


이번 시즌에서는 주인공들을 괴롭히던 존재가 전면에 나서면서 이전 시즌에서 이어진 이야기들이 비로소 커다란 형태로 만들어진다.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악당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동화 같기도 했으며 지금의 우리의 모습과도 흡사 비슷했다. 괴물 같은 악당을 보면서 무슨 소리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여기에 나오는 베크나 라는 괴물은 조금 다르다. 사람의 가장 약한 마음과 죄책감, 우울감에 파고들어 결국 목숨을 앚아가는 괴물이다. 맥스 역시 그런 부분에서는 최적의 타깃이 되기에 적절했다. 괴물 앞에서 오빠를 잃고 자신이 어떠한 행동도 하지 못했음을 자책하고 죽어가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자신을 잃어가면서 자책하고 우울해하는 맥스를 잡아가려던 괴물에게서 구해낸 것이 바로 노래였다. 맥스는 사건 이후 과거 그 시간에 갇혀버렸다. 이런 맥스가 다른 시공간에서 괴물에게 잡혀 갔을 때 갇힌 시간에서 깨어날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이다. 너무나도 우리의 이야기 같아서 나는 이 편을 몇 번이고 돌려봤다. 다른 어떤 히어로가 아닌 좋았던 기억을 상기시키는 노래로 사람을 구한다는 게 얼마나 클래식한지. 그리고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음악으로 어떤 위로를 받는지 그리고 때로는 구원받는다 느끼는지 말이다. 한 시절에 즐겨 듣던 음악들은 그때의 기억들을 담아둔다. 사실 이렇게 명확하게 과거를 기억할 수 있는 것에는 음악이 최적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힘들어서 주구장창 듣던 노래들은 차마 그때의 기억을 꺼내기 힘들어 들을 수 없기도 하고 위로를 건넨 노래는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 꺼내고야 마는 그런 것이다. 좋았던 기억들은 금세 잊히지만 힘들었던 기억들은 몸에 남고야 만다는 말처럼 말이다. 그것과는 반대로 좋았던 시절을 꺼내올 린 노래와 그 노래가 결국 맥스를 살려낸다는 점에서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맥스에게는 인생을 살릴 노래가 있었다. 나에게도 그런 노래가 있었을까.


아마도 스무 살 초반 시절. 나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매일 아르바이트를 갔었다. 신촌에 있는 작은 라이브 클럽에서 일을 했었다. 음향을 배우고 싶어 정말 적은 돈을 받고도 일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그렇게 했어야 했을까 싶지만 돈도 없고 힘들었어도 좋은 기억들은 남았던 시절이다. 그때 나는 씨디 플레이어를 들고 다녔었다. 그래서 주로 한 앨범을 오랫동안 들었었는데 그중 제일 기억에 남는 건 Weezer의 Green album이다. 내 기억에 겨울 내내 이 앨범을 들었던 거 같다. 그래서 이 앨범을 들으면 괜히 겨울이 느껴져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종종 생각나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그 시절의 나는 참 고달픈 시간을 견뎌내고 있었는데 이 앨범이 쳐진 나를 끌어올려주곤 했다. 첫 트랙부터 어느 노래도 스킵하지 않고 다 들었었다. 시작부터 나오는 신나는 리듬은 지친 하루의 큰 위로였던 것이다. 그 시절의 내가 힘들었어도 이 앨범을 들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시 20대의 젊음이 가진 에너지는 고갈된 에너지도 노래로 채울 수 있을 만큼 빛나는 구석이 있었던 것임에는 틀림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노래로도 위로를 얻을 수 없는 순간들에 좌절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최근 나는 심리 상담을 시작했다. 구구절절 이야기하기엔 유구한 나의 역사는 너무나도 길지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에 처음으로 느낀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난 내가 갑자기 이유도 모르게 떠밀려 떨어진 그 어둠에서 무서웠다. 결국 도움을 요청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게 배신하고 날 떠나간 좋은 시간들 앞에서 나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맥스가 갑자기 눈앞에서 오빠를 잃고 시간이 멈춘 것처럼 나도 내 기억에서 묻혀있던 시간에서 나는 멈춰버렸다. 상담을 시작하고 두어 달을 자책하고 우울해했다. 자신이 외면한 아픔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마주하는 것은 너무 고통스러웠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맥스가 오빠의 무덤 앞에서 긴 편지를 읽을 때 그것은 곧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후회하고 자신의 무력함에 무릎을 꿇었다는 그 자책감을 우리는 어떤 마음인지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외면해도 외면한 것이 아니며 어떤 형태로든 그것은 그대로 남는다. 그리고 그 형태는 결국 어떤 형태로든 나타나 우리를 끌고 가고야 만다. 베크나가 사람들의 약한 마음을 들쑤시고 들어가 죽음으로 데려가는 것처럼 말이다. 노래를 듣다가 가사에 대해서 찾아보니 Kate Bush의 짤막한 설명이 눈에 띈다. 그리고 제목 뒤에는 A Deal With God이라는 문장이 쓰여있다.


"It's about a relationship between a man and a woman. They love each other very much, and the power of the relationship is something that gets in the way. It creates insecurities. It's saying if the man could be the woman and the woman the man, if they could make a deal with God, to change places, that they'd understand what it's like to be the other person and perhaps it would clear up misunderstandings. You know, all the little problems; there would be no problem.”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정말로 신과 거래하여 바꿀  있다면 아마도 맥스는 그때로 돌아가 뭐든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바꿀  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이번 이야기에서는 노래 가사처럼 바꾸고야 말았다. 나락에 빠진 운명을 바꾸는 노래. 음악이 누군가를 살릴  있다는 상상만큼 극적인 상상이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잘 듣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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