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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rin Sep 01. 2022

잘 듣고 있어요.

이랑의 노래 <잘 듣고 있어요>

며칠  친한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러고선 대뜸 나에게    한국을 떠났는지 물었다. 생각해보니 서른 중반에 다다르던 나이였다. 자신의 인생이 도전 하나 없이 흘러가는  맞는 건지 그때 누나의 마음은 어땠냐며 질문을 보내왔다. 물끄러미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다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사실 지금의 나는 번아웃이 왔다고 해도 이상할  을만큼 많이 지친게 사실이다. 마음 같아서는 쉬고 싶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다. 호주에서 캐나다로 온지 이제 7개월이 되었고 1년도채 일하지 않은 상황에서 쉬겠다고 말을 할 수 없었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사람들은 물어오곤 한다. 한국에 잠깐 들어오는  안되는지 이직을 하는   되는 건지 사소한 질문들이 이어진다. 생각보다 자주 비슷한 답변을 해야  때가 많다. 한국을 벗어나 다른 나라에서 산다는 것은 내가 살던 공간들과 기억들이 뒤로 밀려나는 경험인 동시에 나를 설명해야 하는 일이 많아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이직을 하려면 어떤 과정을 겪어야 하는지 나는 지금 어떤 신분으로 체류를 하고 있는지 말이다. 나는 비자를 받고  나라에서 거주하는 사람이다.  임시 거주자의 신분인 것이다. 임시 거주자로 살아가는 것은 체류를 위해 나를 증명해야 한다. 꾸준히 일을 해야만 하고 정부에서 요구하는 조건에 부합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임시거주자의 신분을 벗어나기 위한 해야만 하는 과정인것이다. 일본인 친구가 한국에서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받고 어학당에 다닐 때가 있었다.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한국인 남자 친구와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한국에서 살기 위한 신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생각해보니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어떻게 체류하는지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통화를 하면서 찾아보니 배우자를 통해서 비자를 받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 다른 곳에서 임시거주자로 지내고 있었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확진자 수가 증가하던  나는 일자리를 잃었다. 하루아침에 뉴스에는 락다운에 대한 정부의 지침이 발표되었고 모든 가게는 문을 닫아야만 했다. 당장의 생활비와 앞으로의 학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 막막했다. 당장이라도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옵션이 나에겐 없었다. 어떻게 떠나온 곳인데 포기할  없었으며 그렇다고 집에 도움을 요청할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정말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없었다. 같은 집에 살던 친구들은 부랴부랴 한국행 비행기표를 알아봤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집은 하루아침에 적막함으로 가득했다. 도망가듯이 모두가 떠났고   무력함이 견디기 힘들었다. 아무것도   없는 무력감과 조용해진 거리의 공기는 낯설었다. 매일이  시간을 견뎌야만 하는 날들이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할  친한 친구는 나에게 메일링을 해보라고 권했다. 호주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야기해보는  어떻겠냐면서 제안을 했고   제안을 받아들였다. 친한 언니에게 부탁해 표지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지내왔고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이야기했다. 친구들은 소액의 구독료를 지불하고 나의 메일링 서비스를 신청해주었다.  마음들이 너무 고마워서 나는 글을   있었다. 글을 쓰는 시간이 있어서 무력함에 지치지 않을  있었고 작지만 생활에 보탬이 되는 돈이었다. 그렇게 나는  안부를 전했다.


 연락을 하고 만날  있던 친구들과의 시간이 어느 시점 이후로 옅어지는 것은 공백을 만들어낸다. 어느 순간부터 시시콜콜 나의 이야기를 하려면 설명을 해야 하고 그건 생각보다 지치는 일이 되었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그래서 더 소중하다. 어떠한 설명이 없어도  내가 이렇게 힘든지를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이 20대가 대다수인 사람들 사이에서 30대 중반의 나와 같은 사람을 찾는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호주에서 운좋게 만난 또래의 친구는 참으로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매일 일을 하고 학업을 병행하다 보니 여행은 물론이고 어떠한 여유도 누릴  없었다. 차를 가지고 있던 친구는 차로 갈 수 있는 멋진 곳들을 데려다 준 사람이다.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다른 지역의 페스티벌도 멋진 풍경의 바닷가들도 난 갈 수 없었을 것이다. 거의 3개월 가까이 락다운으로 아무것도 못하던 시간의 끝자락에서  친구가 차로 데려가  조용한 바다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인적조차 드문 조용한 어느 바다에서 오랜만에 모래를 밟았다. 어느 순간부터 친구들에게 하소연하지 못하고 시시콜콜 이야기할  없을  나는 이랑의 노래를 들었다. 이랑의 노래 <잘 듣고 있어요>는 그런 나날들의 큰 위안이 되었다. 그저 멀리서 SNS 친구들의 시간을 보면서  듣고 있다고 그렇게 말하는  마음 같아서   노래를 자주 들었다. 같은 시간을 공유하던 친구들과의 공백은 길어지고 있고 화면 너머로 보이는 엄마는  늙었다. 지나간  공백을 지나  친구들을  가족들을  강아지를  날을 나는 생각한다. 다시  공백을 아주 조금 채울  있을까. 다시 다른 땅으로 돌아와야    어떤 마음일까. 사라져 가는 공간들을 보면서 슬프기도 하고 내가 한국에 다녀갈  있을 때까지 남아있어줬으면 하는 공간들도 있다.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남아있었으면 하는 것들이 사라지는  생각보다 서글프다.


시를 쓰는 친구가 오랜만에 시를 썼다며 시를 보내왔다. 아침에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시를 읽고  읽었다. 소리 내어  읽었다. 눈물이 왈칵 나버렸다. 친구의 마음을 듣는 기분이었다. 나에게는 안부 같은 마음이 담긴 글귀였다. 조금씩 바뀌는 친구의 문장과 분위기를 보면서 친구의 안부를 듣는 기분이다. 나는 아름답고 슬픈 시라고 말해주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눈물이 났다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눌 친구는 많지 않아 졌어도 나는  지내고 있다. 가끔  시간들이 사무치게 그리워도 나는  듣고 있다. 아무것도 아닌 질문 밖에는 없는  노래를  듣고 싶나요 어떤 시간에 어떤 순간에   노래를 .. 하는 이랑의 노래처럼 나도 글로  듣고 있다고 기억하고 있다고 말하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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