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부부여행을 고민하던 차, 남편이 내게 던진 한마디에 순간 번뜩였다. 생각지도 못했던 여행지다. 강원도엔 연고도 없고 가본 곳도 몇 군데 없어서인지 그동안 낯설고 멀게만 느껴져 왔었다.
다녀온 사람들마다 좋았다고 이야기하던 강릉은 언젠간 꼭 가보리 마음만 먹었던 장소인데, 드디어 그 기회가 왔다. 게다가 ktx라는 멋진 교통수단이 있어 서울에서 2시간가량이면 닿을 수 있다니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참고로 이번 여행은 아이들 없이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어서 더더욱 대중교통을 선택했다.
기차 타고 2시간을 달려오니
강릉으로 가는 ktx가 뚫리다니 강원도가 한층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MZ세대의 대표 여행지답게 강릉 가는 기차 안은 거의 만석이었다. 강릉을 가려면 숙박이 아니라 기차표부터 구하라고 하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닌 듯하다.
때 이른 벚꽃 때문이었을까? 마치 봄 MT를 가는 대학생이 된듯한 들뜬 마음으로 객실에서 먹을 주먹밥과 음료수를 양손에 들고 강릉행 기차에 올랐다. 허기를 달래며 온통 봄으로 물드는 창밖의 자연을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강릉에 도착. 서울과 달리 살짝 차가운 공기가 낯설지만 싫지 않았다.
강릉여행, 어떤 것을 즐기고 가야 하지?
전형적인 T형 인간인지라 여행 가기 전, 사전 조사 및 계획을 꼼꼼히 준비하는 편이다. 강릉의 관광지, 음식 등에 대해 공부하며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강릉은 역사적으로 굉장히 의미 있고 유명한 인물과 장소가 몰려있으며 커피의 성지'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컨셉만이라도 제대로 보고 갈 수 있다면 1박 2일의 짧은 시간 동안 강릉의 중요한 포인트를 훑고 가는 것이리라 하는 마음으로 여행에 임했다.
1박 2일 동안 보고 먹고 즐기며 알차게 보냈지만, 이 글에서는 딱 두 가지에 대한 기록만 남겨보려 한다.
강릉의 자랑 오죽헌
강릉역에서 택시를 타고 오죽헌으로 이동했다. 버스를 타보려 시도했으나 서울과는 달리 배차시간이 좀 길어서 시간을 아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마감시간이 오고 있어, 오죽헌 입구 키오스크에서 재빨리 입장권을 구매하고 서둘러 들어갔다. 전통 유적과 키오스크라는, 묘하게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신선했다.
오죽헌은 신사임당의 친정이자, 율곡 이이의 생가다. 조선중기의 목조 건물로, 단일 주거 건축으로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다. '세계 최초 모자 화폐인물 탄생지'로 소개되기도 한다. 예상보다 대지가 넓고 강릉시립박물관, 율곡 기념관 등의 둘러볼 곳도 많아서 천천히 산책하는 기분으로 공간을 돌아봤다. 검은 대나무인 신기한 자태의 오죽도 곳곳에서 보였다. 관람 마감시간이 다가와서 발걸음을 돌려야 했음이 아쉬울 뿐이다.
강릉시 자체에서도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에 대해서 큰 자부심을 갖고 시를 홍보하는 모습이 많이 엿보인다. 참, 강릉역에서 맛보았던 사임당 떡의 맛도 특색있었다.
강릉에서는 커피를
개인적으로 강릉 하면 가장 먼저 드는 이미지는 '커피의 성지'다. 2000년대 초, 국내 1세대 바리스타가강릉 해변에 카페를 오픈한 후, 테라로사 등의 각종 카페, 로스터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결국 강릉시 차원에서 2009년 안목 해변이 카페거리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커피 마니아로서 커피의 고장에 왔으니 안목해변을 당연히 이번 여행코스에 넣었다.
듣던 대로 해변을 따라 각종 카페가 쭉 들어서있는 광경이 장관이었다. 카페 대부분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어 어느 곳을 들어가도 환상적인 푸른 바다뷰를 즐길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무려 동해바다를 품은 카페라니! 커피맛도 저절로 좋아질 것 같은 기대를 안고 미리 검색해 두었던 카페 한 곳으로 들어갔다.
각 카페마다 대표로 하는 시그니처 메뉴가 달라서 미리 찾아보고 가면 더 좋을 것 같다. 참고로, 테라로사 등 이미 너무나 유명해진 카페는 대기시간도 만만치 않으니 기다릴 각오를 하고 가야 한다. 내가 방문한 곳은 쫀쫀한 텍스쳐와 진한 맛이 일품인 크림이 첨가된 커피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었다. 물론 나는 시그니처 메뉴가 아닌 늘 마시는 아이스 카푸치노를 선택했지만, 그마저도 매우 훌륭했다. 커피가 테마인 안목해변답게, 커피콩빵도 이색적이었고 해변에 설치된 커피잔 조형물이 눈길을 끌었다.
위장이 쓰리지만 안는다면 해변가에 있는 카페를 전부 다 가보고 싶은 욕심이 났지만, 이내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볼거리도 먹거리도 충분히 즐긴 여행이었지만 무엇보다 강릉의 푸른 동해바다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제주 바다의 산호빛 찬란함도 좋았지만, 푸르고 깊은 강릉 바다의 매력도 만만치 않았음을 발견했다. 특히 해송과 푸른 바다 그리고 봄하늘의 만남이란! 오래도록 기억에 저장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