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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쿠쌤 Jul 17. 2023

종각을 거쳐 인사동 산책

안녕 인사동

이제 어딜 가지?


예상보다 일찍 볼 일이 끝나버렸다. 이왕에 강남까지 나왔으니 바로 집으로 돌아가긴 싫었다. 근처 서래마을을 가볼까 아님 근사한 브런치를 먹을까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날씨가 더 더워지기 전에 고궁 산책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버스에 몸을 실었다. 반포대교를 거쳐 남산 3호 터널 진입직전에  먼지가 많이 나니 버스 창문을 꼭 닫으라는 기사님의 안내방송이 무척 인상적이라고 느끼던 찰나, 터널을 빠져나오니 금방 이태원이다. 이태원 거리의 이국적인 풍경도 잠시, 버스는 이내 명동과 을지로 한복판을 통과하더니 종각역에 도착한다. 흡사 도시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서울관광을 하는 느낌이다.


삐~~! 바로 지금이야


나도 모르게 버스 하차벨을 눌러버렸다. 분명 처음 생각한 도착지는 경복궁인데 종각과 인사동 길을 보니 반가운 마음에 허겁지겁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선다. 



오랜만이야 인사동


익숙했던 종로와 인사동길은 그새 많이 바뀌었다. 하긴 나의 대학시절 그리고 사회 초년생시절 밥 먹듯(?)이 드나들었던 동네이니 꽤나 오래전 이야기다. 그 시절 나는, 종각 인사동길을 거의 매일 들락거렸다. 영어학원을 다닐 때도, 친구들과의 만남의 장소로도, 그리고 사회인이 되고서는 회식과 스터디의 장소로도 말이다. 집에 돌아가기 아쉬운 날엔 혼자서 인사동 골목을 다니며 전통차를 마시며 구경을 하고 컨디션이 좋은 날엔 안국역을 지나 경복궁까지 걷기도 했다. 최첨단 도시 서울 한복판에서 전통적이면서도 차분한 느낌을 주는 이 골목이 왠지 정이 갔다. 


라떼는 말이지, 외국인 친구들을 위해 인사동에서 우리 전통 문양이 빼곡한 거울이나 부채, 책갈피 등을 사기도 했다. 나도 호주로 유학을 떠나기 전, 누가 봐도 한국적이라 생각이 드는 기념품을 준비해 가서 그곳에서 만난 고마운 호주 친구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그 시절엔 K 컬처의 힘이 지금만큼 강력하지 않았다. 아마 지금이라면 BTS나 블랙핑크 굿즈를 준비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지금의 인사동을 보니 높고 세련된 신축 빌딩이 빼곡히 들어서서 더 이상 인사동이 옛날 골목이라는 느낌은 크게 들지 않는다. 코로나가 지나간 자리에 인파가 몰려들었고 월요일 오전 시간인데도 외국인 관광객을 꽤 많이 볼 수 있었다. 부지런히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리던 상점들이 반갑다. 예전에 비해 크고 작은 갤러리가 눈에 들어오는 것도 인상적이다. 한껏 단장한 세련된 거리의 느낌이 싫지는 않다. 



2023년의 인사동, 어디부터 가야 하지?


아이 없는 외출인지라 쾌적하고 편리한 곳을 찾기보다는 많이 걷는 것을 선택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공평빌딩 쪽으로 꺾어 들어갔다. 예전엔 맥도널드 본사가 있던 흰색 빌딩은 이제 레지던스 호텔이 영업 중이었다. 그래도 건물 지하 식당들의 상호는 그대로라 괜한 안도감이 느껴진다. 즐비한 상점과 인파를 뚫고 가니 보이는' 쌈지길'도 반갑다. 이곳은 2004년 패션기업인 '쌈지'가 야심 차게 오픈한 쇼핑몰이자 인사동의 대표적인 복합문화공간이다. 계단 없이 오르막길로 오를 수 있는 독특한 구조가 기억이 난다. 그 맞은편엔 새 빌딩 느낌 물씬 풍기고 있는 '안녕 인사동'이 있다. 이 건물에 아이와 올 수 있는 뮤지엄이 있어서 작년에 온 적이 있다. 당시 아이들과 이곳에 왔을 때는 인사동 풍경을 둘러볼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전혀 없이 말 그대로 관람만 하고  집으로 돌아갔던 기억이다. 수개월만에 다시 오니 그때와는 사뭇 다른 마음가짐과 여유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정처 없이 걷다 보니 점심시간이 훌쩍 넘어버렸다. 급하게 휴대폰으로 주변 맛집을 검색해 본다. 예전에 자주 갔던 곳도 좋지만 뜬금없는 모험심이 생겨났다. 그리고 근처에 적당한 한식백반집을 찾아갔다. 테이블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대략 50~60대 이상인 것을 보니 성공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유레카. 정갈하고 군더더기 없이 맛있다. 식사를 했으니 소화도 시킬 겸 또 인사동을 걷는다. 


복병을 만났다. 체력이 떨어진 것이다. 게다가 오후에 하원하는 아이들을 케어해야 할 에너지는 유지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걱정이다. 예전에는 고려대상에 들지 않았던 체력이 이제는 발목을 잡는다. 호기심에 이곳저곳 둘러봐야 직성이 풀리던 열정도 이제는 그리 크지 않은 듯하다. 슬프지만 나이 들었음을 인정하는 지점이다. 아니, 어른이 되었다고 하자. 급하게 쾌적한 카페를 찾아 들어가서 커피 수혈을 해본다. 인사동은 그리 멀지 않으니까, 같은 서울이니까 언제라도 올 수 있으니 이만 후퇴(?)하자는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다음번에는 청계천을 거쳐 산책도 하고, 인사동에서 열리는 수많은 전시 중 한 곳을 골라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보리 마음먹고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 때는 지금보다는 좀 더 계획적인 동선으로 움직여보리라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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