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드디어 오늘이다!
레고랜드에 가는 날, 아침부터 아이들은 시종일관 들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행 날짜를 정한 후 무려 한 달 이상을 기다려왔다. 엄마인 나도 그간 레고랜드를 위해 준비하느라 애를 먹었다. 여행가방을 싸는 것은 물론,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우리나라 레고랜드에 대해 공부하며, 아이들과 어트랙션을 제대로 즐기기 위한 최적의 동선을 구상해 왔다. 아이들이 말을 안 들을라치면, '너희 며칠 후에 레고랜드 가려면 엄마말 잘 들어야 해!'라며 으름장을 놓기도 한 나날이었다. 한마디로 벼르고 벼르던 여행이었다.
춘천, 낭만과 닭갈비의 고장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호반의 도시, 춘천. 왠지 낭만적인 느낌의 고장이다. 춘천행 기차 이름도 낭만이 넘치는 'itx 청춘'이다. 듣기로는 청량리-춘천의 앞글자를 따서 지었다는 말이 있다. 작명센스 인정이다.
<춘천 가는 기차>,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 그리고 대표적인 데이트 장소인 남이섬을 품고 있는 춘천은 연 100만 명이 넘게 방문하는 강원도 3대 관광도시라고 한다. 게다가 닭갈비와 막국수라는 호불호 없는 지역대표음식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연애시절, 그리고 아이가 없던 신혼시절에는 바쁜 시간을 쪼개어 틈만 나면 itx 청춘을 타고 춘천으로 향했다. 특히 2층기차를 운행하는 특정 열차칸의 예약경쟁은 매우 치열했다. 나의 착오로 2층이 아닌 반지하(?) 객실을 이용해서 춘천에 간 웃픈 기억도 있지만.
본고장에서 먹는 푸짐하고 맛있는 닭갈비와 막국수로 배를 채우고 유명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무척이나 단순한 코스였지만, 기차 여행의 낭만까지 누려볼 수 있는 나의 최애 서울근교 여행지였다.
나의 춘천이 달라졌다
그런 나의 춘천이 달라졌다. 아니 정확히 말해, 춘천도 나도 달라졌다. '레고랜드'라는 세계적인 테마파크가 어느덧 춘천을 대표하게 되었고, itx청춘을 타고 닭갈비를 먹고 왔던 나는 아이들을 위해 운전을 해서 춘천 레고랜드를 목적지로 삼았다. 물론 닭갈비와 막국수는 차마 여행계획에 넣지 못한 채 말이다.
길이 막히지 않아 서울에서 차로 2시간이 채 안 걸려서 레고랜드호텔에 도착했다. 한눈에 봐도 레고로 도배가 된 외벽이 인상적인 컬러풀한 호텔을 보자마자 흥분한 아이들을 진정시켰다. 신속히 체크인 후 짐을 풀자마자 레고랜드로 입장해 본다.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았지만, 그늘이 거의 없고 덥기로 유명한 곳이기에 선크림과 모자를 준비했다. 참고로 춘천은 기후 특성상 여름에는 춘프리카(춘천+아프리카)로 불릴 정도로 무덥고, 겨울에는 춘베리아(춘천+시베리아)로 불릴 정도로 추위가 매섭다고 한다.
흥겨운 음악소리와 시선을 사로잡는 놀이기구, 고리고 레고 조형물이 레고랜드 입구부터 우리를 반겨주었다. 과연 내가 호반의 도시 춘천에 온 건지 인식을 못할 정도다. 하긴, 어른들도 동심으로 돌아간 순간이었다. 어린 시절, 개인적으로 레고는 그저 개성 강한 비싼 블록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레고를 좋아하는 남편과 아이들의 눈빛은 나와는 사뭇 달랐다.
운이 좋게도 일요일 오후의 레고랜드는 예상보다 한가했다. 인기 많다던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대기하는 시간도 10분을 넘기지 않았다. 야간개장을 한 덕에 레고랜드의 반짝이는 야경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볼 수 있는 행운도 누렸다. 번호표까지 받아야 겨우 음식을 먹을 수 있다던 악명 높던 카페테리아는 사람이 많이 없어서 살짝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이곳에 머무는 1박 2일간 롤러코스터는 8번 이상을 탔고, 맘에 드는 놀이기구들도 5번 이상 타기도 했다. 나중에는 지도가 없어도 어디에 뭐가 있었는지 알 정도가 되었다.
테마파크 입장권 가격도 만만치 않은데, 부모들이 맞닥쳐야 할 또 다른 산이 있으니 바로 레고샵이다. 곳곳에 위치한 샵에는 귀엽고 신기한 레고와 굿즈들이 유혹하듯 진열되어 있다. 아무리 단호한 부모라도 여기까지 왔으니 아이에게 기념으로 레고 하나쯤 사주자 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 마음이 너무 약해졌는지 나를 위한 레고텀블러와 가방까지 구매하기도 했다. 잘 쓰면 되지라는 마음의 다짐을 굳게 하면서.
레고에 큰 흥미가 없던 엄마인 나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꼭 놀이기구가 아니라도,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며 상상력을 펼칠 수 있도록 곳곳에 레고를 활용한 놀이 시설이 눈에 띄어서 감동을 받기도 했다. 말 그대로 아이들이 주인공인 작은 왕국에 온 느낌이었다.
그래, 뭐니 뭐니 해도 춘천 닭갈비!
교통상황을 고려해서 조금 일찍 서울로 출발하려 했던 당초의 계획은 아이들의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레고랜드 사랑으로 무산되었다. 대신 저녁 6시 퇴장에 제대로 맞춰서 테마파크에서 겨우(?) 나올 수 있었다. 이왕 늦은 김에 근처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고 검색을 통해 근처에 리뷰가 좋은 닭갈비집으로 향했다. 어른들을 위한 식사메뉴를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서인지 이틀 동안 소진했던 에너지가 별안간 솟아나는 느낌이었다.
잘 달궈진 불판 위에 지글지글 익어가는 닭갈비와 새콤달콤한 막국수의 조화.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환상의 조합이다. 매운 음식에 취약한 아이들을 위해 어린이정식을 주문했으나 메뉴가 나오기도 전에 아이들은 식당 한편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지금 여기, 춘천!
허겁지겁 식사를 마치다 보니 문득 드는 생각 한 가지. '이제야 춘천에 온 것 같네'.
아이도 어른도 만족스러운, 더할 나위 없는 춘천의 기억이었다. 다음번 춘천여행 때는, 여유롭게 아이들과 맛집투어를 다닐 날을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