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눈을 담거나 얼음을 갈아서 달콤한 과일, 꿀 등을 곁들여 먹는 문화는 아주 오래전부터 세계 곳곳에서 출현해 왔다.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빙수의 기록은 기원전 3000년 경 중국의 '밀사빙'이란 이름의 음식이라고 한다.
각 나라별로도 조금씩 변형된 형태의 빙수가 있다. 싱가포르에서 직접 맛본 '아이스 카창'(Ice Kacang)은 특유의 알록달록한 시럽이 인상적인 빙수였는데, 얼음의 입자가 거친 느낌이 우리나라 카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곱게 갈린 얼음의 형태는 아니었다. 또한 필리핀의 할로할로(halo-halo)는 우베라 불리는 필리핀 고구마로 만든 아이스크림을 첨가해서 독특한 풍미를 자랑했다.
이처럼 주로 더운 지방에서 빙수류가 무척 발전해 온 것 같다. 어쩌면 시원한 디저트가 발전할 수밖에 없는 기후조건일 수도 있겠다.
빙수의 천국, 대한민국에 사는 즐거움
호주에 잠시 거주했던 시절, 김치가 없어도 아무 문제 없이 잘 살던 나에게, 가장 그리운 고향음식을 꼽으라면 단연 '빙수'였다. 가히 디저트의 천국이라 불리는 호주 시드니에서도 제대로 된 한국식 빙수를 맛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대신 그곳에서는 각양각색의 아이스크림과 아이스크림을 첨가한 베리에이션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긴 하다.
어느 새부터 '설빙'이란 브랜드가 빙수계를 선도하기시작했다. 우유로 기본 얼음을 만든 눈꽃빙수를 베이스로 하는 설빙에서도 기본 팥빙수를 좋아하는 클래식한 입맛의 나는 그곳의 한국적이면서도 고소한 빙수 맛에 길들여지기 시작했다. 입안에 닿기만 해도 부드럽게 사르르 녹는, 질척거리지도 얼음처럼 너무 딱딱하지도 않은 텍스쳐의 곱디 고운 우유얼음에 한국적 고소함이 가득한 콩가루를 가득 뿌리고, 우리나라 빙수에 없으면 섭섭한 팥을 과하지 않게 첨가하여, 달달함을 배가시킬 연유를 뿌려 입안 가득 풍미를 느낄 수 있는 그 빙수. 상상만 해도 달려가고 싶은 빙수의 기본 맛이다.
물론 곁들여먹는 토핑에 따라 다양한 이름의 빙수가 계속해서 출시되고, 호텔업계에서까지 여름마다 시즌한정으로 맛과 비주얼까지 모두 갖춘 빙수를 선보이고 있다. 단, 가격이 만만치 않음은 주의할 것.
조금 저렴하게 빙수를 혼자 즐길 때는 롯데리아나 버거킹 등의 패스트푸드 점에서 여름 한정으로 1인빙수를 즐기기도 했다. 물론 요즘에는 워낙 '혼밥 트렌드'가 널리 퍼져 있어서 빙수를 취급하는 웬만한 카페에서는 1인을 위한 빙수를 판매하고 있으니 빙수 마니아로서는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올여름, n번째 빙수
남녀노소 누구나 호불호 없이 즐기는 빙수. 올여름에만 5번 이상 먹은 듯하다. 가족 외식 때, 혹은 친구들과 카페에서 모임을 할 때 빙수를 나눠먹는 한여름의 시원한 재미를 어찌 포기할 수 있으랴. 입맛에 따라 추가할 수 있는 다양한 토핑 덕분에 가끔 밥값보다 더 비싸지는 경우도 있지만 어쩌다 한번 누리는 여름 디저트 미식의 향연은 많은 사람들과 나눌수록 배가되는 것 같다.
프랜차이즈가 아닌 개인 카페의 빙수를 찾아다니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프랜차이즈 카페의 획일화되고 맛이 보장된 안전한 레시피도 좋지만 카페의 고유한 철학과 비법이 담겨있는 빙수를 즐기는 모험심 또한 장착해 보는 것도 이 여름을 즐기는 방법일 테다.
빙수 좋아하는 엄마 아빠를 둔 덕분에 일찍부터 빙수의 맛을 알아버린 아이들이 있기에 이 여름, 한동안은 빙수의 매력에서 빠져지내야 할 것 같다. 올여름엔 과연 몇 그릇의 특색 있는 빙수를 접할 수 있을지 내심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