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이승만, 한성 감옥에서 눈뜨다
자, 이제 이승만을 책으로 만나볼까?
그동안 순진하리만큼 무지했던 나의 역사의식 각성과 기독교적 세계관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며 만난 주요 인물이 바로 '이승만' 건국 대통령이다. 그에 대해 여전히 많은 논란이 지속되고 있지만, 먼저 이승만 본인이 직접 쓴 책을 통해 그를 만나보기로 결심했다. (내 결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내가 이승만을 공부하는 이유'를 참고하시길)
독립정신(20대의 청년이 옥중에서 저술한 우리 민족 최고의 명저) / 이승만/ 비봉출판사/ 2018
청년의 시각으로 쓴 이념서인줄 알고 독서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 책에는 격동의 국제정세 속에서 조선이라는 나라가 처한 국제관계와 백성들의 의식과 당대 생활상이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고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임오군란, 갑신정변, 아관파천 등 역사 교과서에서 단순히 암기식으로 배웠던 역사적 사건들을 생생한 증언과 풍부한 배경으로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게다가 민주정치, 헌법정치 등을 포함한 정치체제와 과학에 대해서도 일정부분 설명하며 오대양 육대주와 세계 여러 나라들에 대해서 알려주는 등 당시 파격적이었던 종합 신학문의 결정체처럼 보인다.
슬프다, 나라가 없으면 집이 어디 있으며, 집이 없으면 내 한 몸과 부모처자와 형제자매며 훗날의 자손들이 다 어디서 살며 어디로 가겠는가.
본문 첫 구절
책의 첫 구절부터 꽤나 인상적이다. 대한민국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고 살아가는 나로서는 나라를 향한 애끓는 감정, 혹은 애국심을 언제 느껴봤는지 부끄러울 정도다.
독립정신이 쓰일 당시 조선은 아직 망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승만은 어려움에 빠진 조선을 폭풍우를 만난 배에 비유하며 나라와 백성 모두 각성과 계몽을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고 역설한다. 백성들의 힘만이 독립의 원천임을 강조하며 쉬운 말로 풀어쓰며 순한글로 쓰인 것도 주목할만한 점이다.
지정학적으로 위태로운 한반도 그리고 러시아, 청, 일본 등 열강의 침략과 전쟁. 이승만이 말하는 독립유지에 필요한 것은 지정학적 접근과 상상력, 그리고 전략이었다. 과거를 준비하며 한문에도 능통했던 선비 이승만은 배재학당에 다니게 되며 선교사들을 통해 영어를 익히고 신학문을 배우게 된다. 이 과정에서 대한제국도 자유주의와 공화주의 이념에 토대를 둔 미국식의 민주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설파하며 미국의 독립선언서와 권리장전을 소개하기도 한다. 그것은 나라를 지탱해 주던 군주제와 신분제를 무너뜨리려는 위험한 내용이었기에 정치적인 이유로 1910년 미국에서 초판이 나온 후 일제강점기 내내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알만한 사람들에게는 '대한민국 건국의 설계도'라고 불릴 만큼 독립운동가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앞서 언급했듯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한국 근현대사를 이 책은 열강의 속내와 당시 국제정세를 바탕으로 놀라울 정도로 분석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피할 수 없는 개화의 물결 속에서 뒤늦게 나라의 문을 개방한 조선, 그리고 청, 일본, 러시아의 조선을 향한 침략과 전쟁을 하나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읽어나가는 것에 깊은 지적 희열감마저 느껴졌다.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접해본 적이 없었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청나라에서는 가장 비판적이다. 특히 1882년의 임오군란으로부터 1894년의 청일전쟁에 이르는 12년 동안 서울에 군대를 주둔시킨 사실이 조선왕국의 개화를 가로막은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분개하고 있다. 게다가 청은 조선을 자신들의 속국이라고 하다가 불리한때는 조선이 청과 관계없는 자주독립국이라고 말을 바꾸는 겁쟁이 나라로 묘사되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묘사도 부정적이다. 폭력적이며 전제적일 뿐만 아니라 한 반도에 대해 영토적 야심을 가진 나라로 평하고 있다. 일본에 대해서는 묘한 감정과 이중적인 태도가 읽힌다. 메이지유신으로 성공한 개화와 열정을 높이 사면서도 경계해야 할 나라로 평하고 있다.
반면, 미국에 대한 태도는 우호적이다. 미국은 조선이 동맹을 맺을 수 있는 유일한 강대국이었다. 이주영 건대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독립정신>은 ‘세계화’와 ‘선진화’가 외쳐지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인을 위한 예언서, 또는 ‘문명개화’의 지침서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선구적인 업적이었다.
... 이 은혜는 다른 것으로는 갚을 수 없고 다만 예수의 뒤를 따라 세상 사람을 위하여 나의 목숨을 버리기까지 일하는 것뿐이다. 천하에 의롭고 사랑하고 어진 것이 이보다 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이는 하나님의 감사한 은혜를 깨달아 착한 일을 스스로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마땅히 이 교(기독교)로서 만사의 근원을 삼아 각각 나의 몸을 잊어버리고 남을 위하여 일하는 자가 되어야 나라를 한마음으로 받들어 영. 미 등 각국과 동등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독립정신> 후록 중
이승만은 다른 개화파 지식인들과 마찬 가지로 “유교 망국론”을 믿고 있었으며 그 대안으로 기독교를 제시했다. 기독교는 민중을 깨우고 개화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다. 다시 말해 서양문명을 받아들이기 위해 근보인 기독교를 철저하게 받아들여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수단으로써의 기독교를 설파하기 이전, 이승만은 회심하여 크리스천이 된 참 기독교인이었다. 한성감옥에서는 수감자들에게 기독교를 전하며 전도를 하기도 했다. 시대를 앞서간 혜안과 놀라운 정도의 박식함 그리고 통찰력과 의지. 이승만은 당대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특출 난 인재였을 뿐 아니라 믿음의 선배로서 크리스천이 국가와 사회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 예시라 하겠다. 물론 지금과 사뭇 다른 나라의 상황이 절박하기는 하지만, 지금도 총성 없는 이념전쟁은 계속되고 국가 간 알력싸움에 따른 긴장은 지속되고 있으니 그의 발자취와 사상에서 배우는 것도 무척 의미 있는 일이 될 것 같다.
이후 천국에 가서 다 같이 만납세다
<독립정신> 마지막 구절
당시 한성감옥에서 사형수로 복역 중이던 청년 이승만의 책 속 마지막 인사가 마음을 울린다. 자신의 앞으로의 운명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과 나라와 민족을 향한 메시지를 통해 선구안적 사상을 전하려 했던 이승만. <독립정신>을 통해 만난 청년 이승만은 믿음의 선배이자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한 획을 그을 준비를 차근차근하고 있었다.
청년 이승만의 신앙의 바탕을 둔 순수한 애국심과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력이 한동안 생각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