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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쿠쌤 Jul 06. 2021

그 멋진 교회오빠는 다 어디로 간 걸까?

교회누나가 알려주는 크리스천의 연애와 결혼

"누가 봐도 선한 성품에 기타를 치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성실한 모범생 같은 남자"


교회오빠 하면 떠오르는 내가 가진 선입견이다. 아마도 대부분이 비슷하게 느끼지 않을까? 연예인으로 치면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SG워너비 이석훈 씨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기부천사이자 국민남편으로 통하는 션은 모두가 인정하는 교회오빠 인듯하다.


더 정확한 이해를 위해 트렌드를 반영한 '네이버 오픈 국어사전'에서 찾아봤다.

교회오빠란 교회(장소) + 오빠(호칭)의 합성어로 교회에 다니는 오빠 혹은 교회에 다니는 것 같은 이미지의 남성을 지칭한다. 요즘은 전자의 의미보다 후자의 의미로 많이 사용된다. 흔히 교회에 다니는 것 같은 이미지란 아래의 사항들이 충족되는 조건들을 말한다. <하얀 피부에 깔끔한 외모, 성실하고 예의바름, 기타 연주가 능숙하며 목소리가 맑음, 깔끔한 셔츠만 입을 것 같은 패션, 언제나 긍정적인 마인드>

(출처: 네이버 오픈국어사전)


알면 알수록 멋진 교회오빠의 매력

세상이 갈수록 험해져서일까? 조금은 답답하지만, 성품이 선한 교회오빠가 은근히 인기다. 나쁜 남자는 매력적이지만 상처를 남길 수 있고, 좀 더 진지한 관계와 미래를 생각한다면 여자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교회오빠가 답이라는 것을. 더욱이, 나 같은 크리스천은 결혼은 꼭 같은 크리스천끼리 해야 한다는 것이 일종의 사명이자 신앙의 기준이다. 그런데 이것을 지키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에 관해 내 경험을 토대로 이 글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참고로 난 교회 동생과 결혼에 골인한 '성공한(?) 교회누나'임을 미리 밝혀둔다.



어딜 가야 교회오빠를 만날 수 있는 걸까?

'교회에 가 교회오빠를 만날 수 있겠지.' 당연한 말씀. 교회오빠는 말 그대로 교회 다니는 오빠니까. 그런데 왜 과거의 나는 교회오빠 만나는 일이 거의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을까? 비교적 착실한 크리스천인 나는 모태신앙은 아니었지만 교회에 꾸준히 출석하며 학창 시절에는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크리스천 청년들이 그렇듯이 (혹은 나만 그랬듯이) 대학 입학 후 세상 문화에 휩쓸려 다니며 살짝 방황하며 비기독교인 청년과 교제를 하기도 했다. 그 후 정신을 차리고 난생처음 '배우자 기도'라는 것을 진지하게 하기 시작했다. 어떤 기독교 집안에서는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부모가 그 아이의 미래의 배우자를 놓고 기도한다는 충격적인 말을 들으면서 말이다.

(배우자기도에 대해서는, '배우자 기도를 아시나요?'를 참고하시길)


배우자 기도와 동시에 눈에 불을 켜고 교회오빠를 찾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눈에 불을 켠다고 없던 교회오빠가 갑자기 생길 리 만무하다. 지난주에도, 지난달에도 계속 봐왔던 그런 형제들만 주변에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도 교회 열심히 다니는 성실하고 괜찮은 남자 청년들이었는데 그 당시 내 눈엔 왜 그리 매력 없이 보였나 모르겠다. 게다가 누가 봐도 매력 있는 교회오빠에겐 이미 짝이 있었다.


통계적으로 봐도 교회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많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비율이 가장 적은 집단이 싱글 남자이니, 교회오빠 그것도 괜찮은 교회오빠를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알던 여자 집사님은 인생에서 가장 서러웠던 기억이 시집가기 전에 집사 직분을 받은 일이라고 하셨다. 지금에야 좋은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있지만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 (참고로 집사 직분은 결혼한 여자들이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요새는 청년들이 받기도 한다. 나도 결혼 전 20대 집사 직분을 받았다.)


교회오빠 만나기 왜 이리 어려운가요?

20대 시절 내 싱글의 시간이 점점 길어지자, 주변 지인들은 소개팅을 권했지만 '크리스천 형제 아니면 절대 만나지 않겠다'는 확고한 선언을 했다. 속으로는 '내가 너무 빡빡하게 구는 건가? 소개팅을 한다고 다 이어지는 건 아니니 만나기는 해 볼까?'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던 중 마침 크리스천 청년과 잡혔던 소개팅 약속. 믿기 힘들겠지만 이 귀한 세 번의 기회가 모두 날아갔다. 왜냐고? 한 번은 소개팅 약속 당일 갑자기 그 청년의 어머니가 쓰러지셔서 유야무야 되었고, 또 한 번은 서로의 집이 너무 멀다고 그쪽에서 먼저 만남 자체를 깠고(?), 마지막 한 번은 상대방이 준비가 덜된 것 같다며 소개팅 날짜를 미뤘다. 그 마지막 청년에게는 몇 달 후 이제 날 만나보고 싶다고 연락이 왔는데 그때 나는 지금의 남편과 달콤한 연애를 막 시작했었다. 세 번의 기회가 모두 어그러진 그 당시 나는 어쩌면 반쯤 포기 단계였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일에 집중하며 미래를 설계했던 기억도 있다.


지금에야 교회오빠 아니, 교회동생과 결혼한 내 이야기를 웃으며 회고할 수 있지만, 그때는 마음이 꽤 복잡했었다. 성경에 나오는 사도바울처럼 혹시 내게 독신의 은사가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까. 이 말을 들은 집사님은 배꼽을 잡으며 웃기도 하셨더랬다. 지금 내가 생각해도 피식 웃음이 난다.


아무튼 교회오빠 찾기와 배우자 기도로 심각했던 나는 청년 수가 많은 서울의 초대형교회로 옮겨야 하나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듣기로는 청년이 많이 모이는 교회는 예배당이 아니라 연애당이란 소문순진한 교회오빠들의 마음을 이용해 금전적인 사기를 친 여자들의 이야기도 종종 들려왔다. 실제로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결혼 적령기의 청년들이  큰 교회로 옮기는 경우도 있다. 난 결국 그러진 않았지만 그것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결혼이란, 배우자를 만나는 일은 나머지 인생과 나아가 내 가문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대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교회동생과 교회누나로 만나 잘살고 있어요

교회오빠 찾기를 관두고 교회누나가 되다

집에서도 결혼에 대한 압박이 슬슬 시작되던 20대 후반, 시선을 외부가 아닌 나 자신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차분히 성경적인 결혼관에 대해 공부하고 나를 위한 시간을 누리기로 했다.

그렇다고 결혼을 포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좀 더 준비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이 들더라. 지금도 국민남편으로 추앙(?) 받으며 대한민국 남자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는 가수 션과 그의 가정을 보며 나의 미래 가정을 꿈꾸기도 했다.  자세히 보니, 션의 아내인 배우 정혜영도 만만치 않게 괜찮은 사람이더라. 그래서 더욱 싱글의 시기를 성실히 채워나갔는지 모르겠다. 나도 저렇게 보석 같은 사람이 되어야 보석 같은 남자가 언젠간 나타나겠지란 희망을 갖으며 말이다. 그렇게 서서히 나는 교회누나가 되어갔다.


돌이켜 보니 싱글의 시기만큼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나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없더라. 연애와 결혼, 출산, 육아... 배우자가 나타나는 순간부터 인생은 다음 스테이지로 바쁘게 흘러간다. 정신없이 따라가기 바쁘다는 표현이 맞을지 모를 정도로. 나 역시 싱글이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고 좀 더 다양한 경험을 하며 재밌고 알차게 보냈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그래서 인생의 단계를 먼저 겪은 선배로서 감히 조언한다. '싱글들이여, 싱글의 시기를 누리시길. 더 공부하고 더 여행하고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봉사하고 자신을 돌아보시길' 참, 방탕하게 무조건 자유롭자는 말은 아니니 오해 마시라.



7년간 인사만 하던 교회동생과 연애를 시작하다

지금은 내 평생의 반려자가 된 교회동생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7년간 우린 만나면 겨우 인사나 나누던 스치는 사이였다. 같이 밥을 먹으며 교제를 나눈 적도 거의 없이 그냥 아는 누나 동생 사이라고나 할까? 심지어 그가 어느 학교에 다니고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지도 못했고 알고자 하는 의지도 없었다. 그러던 우리가 어느 날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교회에서는 모두 놀란 눈치였다. 게다가 난 교회 여자 청년들의 따가운 시선을 감당해야 했었다. 그는 두 살 아래의 대학원생이었고 나는 호주 유학에서 돌아와 회사 다니며 멋진 커리어우먼으로 성장하고 싶어 하는 살짝은 교만한 차도녀 캐릭터의 교회누나였다. 그러다 정말 우연히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고 예상외로 대화가 정말 잘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사람은 같이 떡을 떼며 밥을 먹어야 친해지나 보다) 그 후 여차 저차 하여 연인으로 발전했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배려심 깊은 남편은 본인은 나와 인사만 하던 7년 동안 나를 짝사랑 해왔다고는 하지만 사실유무에 괘념치 않는다. 지금 서로 사랑하고 섬기면 그만이니까


그 후 남편과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우리가 7년 동안 인사만 하던 사이가 아니라, 좀 더 일찍부터 사귀었으면 어땠을까?'라는. 나이가 더 어려 미숙한 점을 포함하고라도 둘 다 좀 더 부정적인 예측이다. 왜냐하면 준비가 덜 된 사람들이었으니까.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서로가 준비되어 있을 때 만난 것이라 서로 동의하고 있다. 물론 좀 더 친하게 지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은 든다. 



이상 개인적인 교회오빠, 아니 교회동생과의 스토리를 녹여 글을 풀어봤다. 혹시 교회오빠를 찾고있는 싱글여성들이 있다면, 싱글의 시기에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누리며 때를 기다리는 것도 경험자로서 추천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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