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헬로쿠쌤 Jan 20. 2023

술알못도 반한 호주 와이너리 투어

시드니 근교 헌터벨리 이야기

이번 주말에 시간 괜찮으면 헌터벨리로 여행 갈까?


셰어메이트 C가 물었다. 헌터벨리라... 호주의 대표적인 와인생산지로 이국적인 부띠끄 와이너리가 즐비한 곳. 가보진 않았지만 궁금했던 지역이기도 했다.

여행을 제안한 C는 내가 다니던 호주 교회 목사님 딸이기도 했다. 교회 자매들끼리 하는 와인투어라. 뭔가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호주는 한국 교회만큼 술에 대해 강조하질 않으니 그리 눈치 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색다른 느낌일 거라 생각이 들기도 했고.


TMI. 개인적으로는 어느 때부터인가 술을 입에 대지 않게 되었다. 종교적인 이유도 없지 않지만, 체질상 술을 마시고 나면 속이 쓰리고 졸리고 아무튼 뒤끝이 영 좋지 않다. 근사한 분위기 속에서 와인 한잔 마시는 경우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소주는 시종일관 쓰디쓰고, 맥주는 배불러서 못 마시겠고. 아무튼 내 주변에서 가장 술알못(술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 술 못 마시는 사람)은 나일 거다. 



호주 헌터벨리는 어떤 곳일까?


'호주'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생산품 중 하나가 바로 와인이다. 호주 와인은 신대륙 와인의 대표 격이기도 하다.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시드니 한인타운에 가면 소주가 와인보다 비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한국에서는 흔하디 흔한 서민의 술 소주가, 호주에서는 본국에서 물 건너온(?) 귀한 대접을 받는다. 자연스럽게, 다양한 와인이 존재하는 호주에서는 와인이 더 싼 경우도 허다할 수밖에.


헌터벨리는 호주 남동부 뉴사우스웨일스주 동쪽으로 흐르는 헌터강의 이름을 딴 지역이자, 호주의 가장 오래된 와인 생산지로 150여 개 이상의 와이너리와 대규모 포도밭이 있다. 기후가 덥고 습한 아열대성이나, 운량이 많고 시원한 해양 바람이 더위를 식혀 여러 품종의 와인이 재배되고 있다고 한다.


시드니에서 차로 2시간가량이면 닿을 수 있어, 2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기도 하는 곳이다. 이러한 위치적인 편리성 덕분에 '헌터벨리 와이너리 투어'라는 이름을 가진 수많은 여행사의 투어 프로그램이 있으며 한국인 여행사에서도 매일 출발하는 스케줄이 있다. 시드니에서만 머무는 것도 좋지만, 좀 더 목가적인 느낌의 색다른 경험을 원한다면 추천하는 바다.



와인과 비어 테이스팅이라는 특별한 경험


그리하여 C와 떠난 헌터벨리 1박 2일 여행.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C의 자가용으로 함께 갔다. 8살 때 시드니로 이민을 온 C는 그야말로 얼굴만 한국인인 완전 호주인이다. 그래서 나 같은 토종(?) 한국인이랑은 마인드셋이 좀 다르다. 그래도 나랑 굉장히 잘 맞았으니 이렇게 여행도 다녔던 거겠지.


시드니에서 조금만 벗어나니 호주 시골의 전형적인 모습니 펼쳐진다. 우리나라처럼 산이 많지 않고 펼쳐진 드넓게 펼쳐진 평야와 눈이 부시도록 찬란한 햇빛. 이런 곳이라야 포도가 자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이국적인 시골 풍경에 넋을 놓고 바라봤다. 


Tempus Two Winery, Hungerford Hill Wines, McGuigan Cellars, Rosemount, Hunter Valley Cellars 이렇게 총 5곳의 와이너리를 방문했다. 와인을 잘 모르니 가장 유명한 곳으로 정했고 여자들끼리의 여행이라 와이너리의 분위기가 예쁜 곳을 골라 무작정 들어가 보기도 했다. 앤틱 한 분위기 속에서 오크통도 감상하며(?) 와인 테이스팅을 할 수 있는데 품종에 따라 맛과 향이 이렇게나 다를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와인과 함께 곁들이면 더욱 풍미가 좋은 치즈까지 무료로 주기도 한다. 참, 와인 테이스팅은 무료로 하는 곳도, $5 호주달러 정도를 받는 곳도 있었다. 나중엔 슬슬 올라오는 취기 때문에 맛을 구분하지 못하고 와인을 샀다는 슬픈 이야기도...


와인뿐 아니라 맥주 브루어리도 방문했었는데, 브루어리 직원의 자부심 넘치는 소개가 인상적이었다. 술알못인 나도 이렇게 색다르고 재밌는데 술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하루가 짧다 느낄 듯하다.



드디어 만난 별이 빛나는 밤


호주 하늘은 유독 맑고 청명하다. 비교적 복잡하고 사람 많은 서울에 살다와서 더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다. 내 평생소원 중 하나가 '쏟아질 것 같은 별들을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호주의 시골 이곳 헌터벨리에서 마침내 소원을 성취했다. 좋은 사람과 함께 좋은 술을 맛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호주 전통(?) 마사지를 받았다. 한국의 화끈한 손맛이 느껴지는 지압을 기대했다면 오산. 이게 진정 마사지인가 싶게 근육이 아닌 살을 아로마로 쓱쓱 문지르더니 아로마 한번 발라주니 끝이란다. 한번 해봤으니 되었다. 


아로마 향 가득한 채로 꽉 찬 하루일정을 마치고 둘만 지내기 넓디넓었던 숙소 리조트로 돌아오는 길. 어느새 어둠이 내리고 주변은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 숨이 멎을 정도로 멋진 별들의 운집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고개를 계쏙 뒤로 젖혀서 목이 아파올 정도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하늘이 그렇게 좋으냐고 내게 묻던 C의 얼굴도 기억난다. 이게 호주 시골의 매력인가 싶다.



헌터벨리 가든에서 기억될 냄새


별들의 향연을 경험한 밤이 지나자 아침은 들판의 새소리로 시작되었다. 시드니를 조금만 벗어나니 느낄 수 있는 호사 라고 해두자. 검색을 통해 찾아낸 Bliss Coffee에서 거품 가득 카푸치노 한잔 후에 헌터벨리 가든에 도착했다. 이곳은 세계 여러 나라의 특색 있고 예쁜 정원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오전 산책하긴 최적의 장소다. 그 안에 있던 브런치 카페에서 '펌킨 수프'를 먹고 반한 일도 인상적이다. 우리나라에서 먹는 호박죽과는 좀 다른 느낌의 수프인데 커다란 보울에 치즈와 호박과 크림이 제대로 섞인 깊고 진한 풍미가 일품이다. 호주에 살면서부터 수프를 좋아하게 되어 한국에서도 레스토랑에만 가면, (심지어 서브웨이에 가서도) 오늘의 수프를 주문하곤 하는데 아직 호주에서 같은 깊은 맛의 수프를 만나보질 못했다.


여행의 막바지. 기념품가게를 들렸다. 휴대용 향수를 파는 곳인데 직접 향수를 만드는 곳이라 특이하고 낯선 향들이 많았다. 흔하지 않아 더 끌렸던 것 같다. 그 향수가게를 마지막으로 우리 둘의 여행은 마무리되었다.

호주 현지인 친구와 여행하는 장점을 최대한 누리는 것 같아 고마운 마음 한가득이다.


와이너리의 앤틱한 풍경과 호주시골의 목가적인 뷰, 별이 빛나는 밤, 수프, 그리고 향이 독특한 향수까지.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저장.


지금은 결혼해서 미국에서 네 아이의 엄마로 살고 있는 C가 문득 그리워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 없이 겨울만 네 번째 맞이한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