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어느 여유로운 주말 저녁, 아이들 유치원에서 문자 한 통이 왔다. 둘째와 같은 반인 친구가 코로나 확진이 되었단다. 우리 아이도 검사 대상자에 자가격리가 될 것이라는 뒤 이은 연락.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가까운 코로나 선별 진료소에 가서 코로나 검사를 했다. 다행히 결과는 음성이었지만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첫째 아이까지 두 아이 모두 가정보육에 들어갔다. 자가격리 대상 자체는 둘째 아이 한 명이었으나, 현실적으로 5세 아이가 혼자서 자가격리를 하는 것은 힘든 일이니 보호자인 나도 같이 격리생활을 이어나갔다. 위드 코로나 시대가 되면서 규정이 조금씩 완화되면서 다른 동거가족은 외출이 허가되었다는 사실에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
자가격리를 통해 돌아본 나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 둘의 엄마이자 자기 계발에 관심 많은 욕심 많은(?) 사람으로서, 팬데믹 시대에 온라인 활동을 활발히 하며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왔다. 온라인 시장의 확대가 오히려 나에겐 기회가 된 셈이었다. 나의 본캐는 아내이자 엄마이지만 자기 성취에 관련한 활동을 많이 하면서 아이들 케어엔 조금 신경이 덜 쓰게 된 것도 사실이다. 유튜브 제작, 온라인 영어 스터디 운영과 각종 sns 콘텐츠 업데이트 등의 많은 일들이 아이들이 유치원에 간 사이에 집중적으로 행해졌다. 이제 2주간 그런 일들이 올스탑 된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나기도 했다. 이런 이기적인 인간 같으니!
하지만 한편으로는 감사가 나왔다. 사람이 로봇도 아니고 어떻게 과부하가 걸리지 않고, 늘 한결같이 불도저처럼 추진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한마디로 나이스 타이밍이었다. 이번 기회에 나의 역할에 대해 재정비하고 아이들에 집중해볼 좋은 기회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리고 활발했던 온라인 활동들을 하나 둘 쉬거나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니,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삼시 세끼... 그냥 나온 말이 아니구나
아이들이 하루 종일 집에 있으니,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 바로 먹는 것이다. 삼시 세끼... 그냥 나온 말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은퇴 후 하루 세끼 꼬박꼬박 얻어먹는 남자들을 빗대어 '삼식이'라고 하겠는가. 아무튼, 어른들은 시계를 보며 밥시간을 알지만, 시계를 볼 줄 모르는 유치원생 두 남매는 시도 때도 없이 간식을 찾고 먹을 것을 요구했다. 물론 내 아이가 잘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다고는 하나, 어느 순간은 지치기도 했다. 시켜먹는 것도 한두 번이라고 하겠지만... 수줍게 고백한다 거의 매일 커피든 음식이든 배달앱을 이용했음을. 쿠*이츠 사랑해요!
내년에 초등학생이 되는 첫째를 위해, 자가격리 기간 동안 한글과 영어공부를 제대로 시켜보리라 야심 차게 계획했지만 현실은 쉽지 않더라. 식사와 간식을 준비하고 먹이고 치우고 집안일하고, 아이들 케어를 하다 보면 애초에 내 욕심이 과했나 싶기도 하다. 좁은 집에서 외출도 하지 못하니 아이들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사실은 내가 좀 답답했나 보다. 예상보다 두 아이는 서로 잘 놀고, 잘 먹고,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세팅의 환경에서 즐거워했다. 정말 다행이다.
빅 브라더가 존재하는 느낌적인 느낌
오전과 오후 한 번씩 하루에 두 번 자가격리 앱에 아이의 건강 상태를 체크한다. 오후 4시경에는 AI로부터 전화가 온다. 자가격리 앱의 위치추적 기능을 통해 조금이라도 집 밖으로 벗어나면 담당공무원의 득달같은 전화가 오기도 한단다. 분명 현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데 감시당하는 이 찜찜한 느낌. 서로의 안전을 위해서라지만 처음부터 대놓고 '너를 못 믿으니 감시할 거야'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대의를 위해 개인의 자유는 그다음 문제인 걸까. 그래도 모두를 위해 견뎌야지. 어디 아파서 집 밖으로 못 나가는 것도 아니니. 그나저나 나치 치하에 숨어 지내던 '안네의 일기'속 안네네 가족은 어떻게 견뎠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연결고리가 가히 롤러코스터 급이다. 이런 생각 할 시간에 아이들과 조금이라도 더 놀아줬어야 하는데 말이다.
유치원에서 온 두 번째 문자
여차 저차 하여 첫 번째 자가격리를 무사히 마쳤다. 자가격리가 해제되던 날, 나와 두 아이는 비가 많이 내리는 날씨에도 외출을 감행했다.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후 다시 받은 유치원 문자 한 통. 이번에는 큰 아이네 반에 확진자가 나왔단다. 다행히 우리 아이는 밀접접촉자가 아니라는 연락을 받았지만 두 아이 모두 가정보육에 들어가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참 신기한 것은 두 번째 가정보육 때는 좀 더 수월하게 시간이 흘러갔다는 것이다. 역시 사람은 적응하며 또 살길을 찾는 존재다. 음식을 준비하는 일도, 아이들에게 놀거리를 만들어주는 일도,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도 좀 더 여유롭게 변했다. 바로 내가 변했다. 역시 나 자신이 문제였나 보다.
자가격리, 피할 수 없는 시대라면
점점 더 늘어가는 확진자 수가 말해주듯, 이제 자가격리는 그다지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좀 더 슬기롭게 맞이하는 지혜가 필요할 테다. 한 달 새 2번의 자가격리(가정보육)를 겪어보니 나 자신의 부족함이 극명히 보이더라. 고작 며칠 간의 외출을 포기하고 어쩌면 집에서 좀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거나 휴식의 기회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말이다. 순수한 아이들은 오히려 새로운 상황 속에서 유연했었던 것 같다. 나에겐 나의 미흡함을 인정하고 지금 있는 곳에서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청산유수처럼 이렇게 서술은 했지만, 또다시 이런 일이 있는다면 조금은 많이 답답하고 불편할 것 같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