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알림음을 듣고 메시지를 확인해본다. '맞다. 오늘이 내 생일이었지'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모바일 쿠폰 선물을 보낸 지인들의 반가운 메시지에 답을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반화되어버린 비대면 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한 축하 메시지를 듬뿍 받은 그날. 내 생일이었다.
친구와 지인을 모두 초대한 시끌벅적한 파티 대신, 모바일 쿠폰으로 마음을 전하고, 카카오톡 알림 덕분에 잊고 지나갈 뻔한 친구의 생일을 기억하게 되는 시대. 문명의 이기란 이런 것인가라며 깊게 생각하진 않아도, 이 흐름과 변화를 꼭 비인간적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봄에 태어난 당신
형형색색의 꽃들이 만발하며 신록이 푸르러가는 마음 설레는 춘삼월이다. 개인적으로 내 생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어릴 적, 어느 계절을 가장 좋아하느냐는 질문엔 항상 '봄'이라고 답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봄에 태어났으니까. 여름에 태어난 유치원생 아들도 본인의 생일이 있는 여름이 제일 좋단다. 모전자전인 것인가!
아무튼 성실하고도 아름다운 자연의 변화에 따라 올해도 어김없이 봄은 찾아왔고 어느덧 1년이 흘러 한 살 더 먹는 생일이 되어버렸다. (이제 나이를 만으로 하는 규정이 생긴다고 하니 생일과 나이가 더 깊은 관련이 있어졌다.)
어릴 땐 그랬지
어린 시절, 생일은 나에게 대단한 의미이자 이벤트였다. 물론 세상에 태어난 날을 해마다 기념하는 것은 축하받을 일임이 마땅하지만 그땐 하루하루 손꼽아 간절한(?) 마음으로 생일을 기다리곤 했다. 정성스레 생일잔치 초대장을 써서 반 친구들을 초대하고 학교가 끝나면 생일 파티를 하러 다 같이 집으로 갔다. 당시는 외식이라곤 피자와 치킨이 전부인 줄 알았던 시절이라, 생일날 엄마는 친구들을 초대해서 외식메뉴와 함께 손수 만든 김밥과 잡채 등 온갖 잔치음식을 차려내곤 하셨다. 생각해보니 피자와 치킨도 집에서 직접 만드시기도 했으니 대단하다. 요즘 같이 손가락으로 쓱하면 각종 세계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배달앱 시대(?)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고 있는 나로서는 그때의 엄마들에게 존경심이 생길 정도다.
생일이 뭐 별거라고
20대에는 화려하고 남들 다 할법한 생일파티를 원했다. 밤새 부어라 마셔라(?)하는 그런 류의 파티는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적대적이진 않았다. 어른이 되고 자유를 만끽해야만 할 것 같은 20대의 생일. 친구들과 함께 수일 전에 미리 예약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파티 복장을 하고 열과 성을 다해 생일 축하송과 작은 케이크까지 선사해주는 레스토랑 직원들 혹은 알바들의 축하를 받으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장난 섞인 친구들의 생일빵도 기꺼이 응해줬다. 20대만 해도 세상의 중심은 여전히 나인 줄 알았으니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땐 내가 어른이 다 된 줄 알았다.
이제는 생일이라고 해서 특별한 감흥이 있다거나 손꼽아 기다려지는 느낌은 별로 없다. 살짝 서운한 감이 들면 미역국을 직접 끓이기도 한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이가 들은 거겠지. 신문기사를 보니 Z세대는 생일 당일뿐 아니라 생일 주간으로 기념한다고 한다. 인스타 감성 충만한 주문제작 케이크에 멋진 프로필 사진으로 해마다 생일을 추억하며 힙한 축하를 나눈다고. 생일도 중요하지만, 생일을 준비하는 마음과 자세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안하지만 이젠 내 생일에 오롯이 쏟을 수 있는 체력과 에너지가 없다. 더 솔직히 말하면, 내게 그런 막강한 체력이 있어도 생일 기념이 아닌 다른 곳에 쓸 것 같긴 하다.
요즘 생일, 달라진 게 있다면?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생일은 매년 있는 매우 특별한 날임은 분명하다. 언제부턴가 나는 생일을, 앞으로 내게 남은 시간에 대한 더욱 의미를 찾아보려는 날로 생각하고 있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강건해야 7~80을 괜찮은 컨디션으로 살 수 있는 인생이기에 남은 날은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커지는 것도 이유 중 하나 이리라. 게다가 생일을 살아온, 그리고 살아갈 수많은 날들 중에 하나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그 의미가 남다르지 않은가. 그래서 더더욱 부모님의 생신을 챙겨드리려 노력하는 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