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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징니 May 16. 2016

언론의 존재 이유를 말하다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보고 쓰다


독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언론사들 간의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경쟁을 통한 발전이라면, 좋다. 문제는 독자를 끌기 위한 노력이 언론의 발전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4월 8일, [연합뉴스]는 소라넷 운영자의 시점에서 쓴 '소라넷은 어떻게 17년을 살아남았나'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해당 기사는 가해자 옹호 수준의 묘사로 크게 비판받았다. 하지만 [연합뉴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비혼이 대세? 외국 처녀라야 딱지 떼는 총각에겐 상처'라는 제목의 기사로 또 한번 물의를 빚었다. 올바른 언론으로서의 자질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는 이런 기사들은 비단 [연합뉴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언론사들이 조회수 높이기에 혈안이 된 나머지, 전해야 할 사안이 무엇이며 전하는 태도는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스포트라이트>가 주는 울림이 더욱 커지는 이유다.




#1. 건조한, 그러나 정직한 연출의 힘

사제 명부를 조사 중인 샤샤(레이첼 맥아담스). 기능적으로 소모되지 않는 여성 캐릭터의 존재 역시 이 영화의 매력이다.

<스포트라이트>는 가톨릭 보스턴 교구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끈질기게 추적해낸 미국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 '스포트라이트' 팀의 실화를 기반으로 한다. 이 영화가 모범적 언론 영화로 기록될 수 있는 것은, '아동 성추행'을 다루면서도 자극적인 묘사가 없고 '언론'을 말하면서도 과정을 생략한 통쾌함으로 퉁치려 하지 않는 연출 덕이다.

<스포트라이트>에는 '사건'이 없다. 성추행 현장에 대한 묘사 없이,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는 장면만으로 그가 겪었을 고통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한다. 자극적인 장면 하나 없이도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하도록 만든다. 또한, 이 영화는 사건을 추적해 나가는 기자들의 길고 힘겨운 과정을 그대로 따라간다. 쉽지 않은 과정들을 적당히 퉁치고 결말의 통쾌함만을 극대화하려는 여타 언론 영화들과의 다른 점이다. 하지만 부패한 시스템을 파헤치는 올바른 언론의 모습과 각자의 역할이 잘 조율된 '스포트라이트' 팀의 팀워크는 관객에게 다른 차원의 통쾌함을 안겨준다. 건조한, 그러나 정직한 연출의 힘이다.




#2. 원래부터 거기에 있었던 일

'스포트라이트' 팀의 샤샤와 성추행 피해자 사비아노

'스포트라이트' 팀과 마주앉은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 사비아노.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 사진이 붙어있는 스케치북을 들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일련의 행동들에서 몸에 밴 듯한 익숙함이 보인다. 마치 이 일을 수십번, 수백번도 더 반복해 왔다는 듯이. 그리고 영화 후반부, 결정적 증거를 발견한 레젠데스가 택시를 타고 보스턴 글로브를 향해 달린다. 택시가 지나치는 공원에 또다른 피해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딸의 그네를 밀어주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단 두 장면만으로, 사건의 피해자들은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이 아니라 늘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늘 그 자리에서 진실을 밝히려 애쓰며, 또는 말없이 고통을 누르며 존재해 있었다는 것을.




#3. 이런 걸 안 쓰면 그게 언론입니까?

이런 걸 쓰는 게 언론이 할 일이냐는 판사의 물음에, 레젠데스(마크 러팔로)는 답한다. "이런 걸 안 쓰면 그게 언론입니까?"

언론의 주요 기능들 중 하나로 '환경감시기능'이라는 것이 있다. 사회 내의 어떤 권력이 시민들을 기만하고 부패를 저지르면, 언론이 이를 감시하고 큰 소리로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스포트라이트' 팀과 배런 국장은 이를 충실히 이행하는 언론인의 전형을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빠져나와 정파성 짙은 보도와 홍보성 기사가 난무하는 우리나라 언론을 다시 마주하니, 내가 판타지 영화를 본 건가 싶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많은 사람이 봤으면 하는 영화다. 그래서 이 대사를 더욱더 많은 사람이 들었으면 한다. 배런 국장의 대사다. "때로 우리가 살면서 대부분 어둠 속에서 비틀거린다는 걸 잊어버리기란 쉽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주변이 밝아지면 비난할 것들이 많아지죠. 내가 이곳에 오기 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당신들 모두가 아주 훌륭한 기사를 써왔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기사는 우리 독자들에게 즉각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합니다. 나한테는 이런 기사가 우리 직업의 목적입니다."




#4. 묵묵히 나아가는 사람들

성추행 사건 기사를 실은 신문이 인쇄되고, 레젠데스는 미첼에게 직접 신문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문을 나서던 레젠데스는 유리문 안에 있는 아이들과 엄마를 발견한다. 바로 또다른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들이다. 발걸을음을 옮기지 못하고 있는 레젠데스에게 다가온 미첼은, 계속해서 노력해달라고 말한다. "Keep doing your work." 보스턴 글로브로 온 레젠데스는 로비와 함께 '스포트라이트' 팀의 사무실로 향한다. 그들이 지나간 후, 저 멀리에 혼자 앉아 일하고 있는 배런 국장의 모습이 화면에 잡힌다. 큰 사건을 해결한 후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에 의해 사회는 조금 더 좋은 곳이 된다. 미첼처럼, 배런 국장처럼, '스포트라이트' 팀처럼.



“언론이 진실을 보도하면 국민들은 빛 속에서 살 것이고, 언론이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다면 국민들은 어둠 속에서 살 것이다."  - 고(故) 김수환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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