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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징니 Jul 25. 2016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책 <나쁜 페미니스트>를 읽고 쓰다

록산 게이, <나쁜 페미니스트>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즘' 또는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는 존재감이 가히 볼드모트 급이다. 이름을 불러서는 안되는 자.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해시태그가 구호로 사용될 만큼,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는 것조차 어느 정도의 용기가 필요한 일로 여겨진다. 

페미니즘이 결함이 있는 이유는 이것이 인간이 만든 운동이고 인간이란 태생적으로 결함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페미니즘에 비이성적으로 높은 기준을 세워 놓고 페미니즘에게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있어 달라고, 혹은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내려 달라고 조르고 있는 것만 같다. 페미니즘이 우리 기대에 못 미치면 페미니즘이라는 이름 아래 행동하는 인간들에게 결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페미니즘 자체가 잘못되었다며 정죄한다. (12-13p)

민주주의를 향한 운동에서 다소 잘못된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민주주의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 의문을 갖거나 비판을 하는 일은 없다. 그런데 유독 페미니즘에 대해서만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한 사람들에게는 온갖 공격이 가해진다. 페미니즘에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저러나 싶을 정도다. 


여하튼, 나 역시 얼마전까지는 그런 분위기에 거의 세뇌된 상태였다. 페미니스트 같은 건 나와는 거리가 먼, 용감하고 부지런한 투사들의 역할인줄로만 알았다. 페미니즘 공부를 한다고 하면 유별난 사람으로 보일 것 같고,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면 무언가 눈에 띄는 행동을 해야할 것 같고. 

페미니즘이 어떤 거창한 사상이 아님을 깨달은 건 작년 즈음부터였다. 이제껏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이 서서히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때였다. '~女'라는 호칭을 쓰지 않는 헤드라인을 찾기가 힘든 것, 몰카를 찍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라 찍히지 말라고 하는 것, 여성이 주가 되는 영화를 찾기가 힘든 것. 급기야는 여자라는 이유로 염산을 뿌리고, 때리고, 죽이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면서 깨닫게 됐다. 페미니즘은 평등의 문제고, 생계의 문제고, 생존의 문제라는 것을. 


어떤 페미니즘 이슈를 이야기하건 간에 나는 페미니스트이다. 페미니즘의 절대적인 중요성과 필요성을 부정할 수도 없고 부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모순적인 사람이지만 확실한 건 나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개똥 같은 취급을 당하고 싶지는 않다는 점이다.
나는 나쁜 페미니스트이다. 페미니스트가 아예 아닌 것보다는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는 편이 훨씬 낫다고 믿는다. (375p) 

김자연 성우가 페미니즘 티셔츠를 구입하고 지지를 표명했다는 이유로, 녹음을 마친 넥슨의 한 게임에서 목소리가 삭제됐다. 불특정 다수가 듣는 팟캐스트에서 여성 비하 발언(이것도 많이 순화한 표현이다)을 일삼은 옹달샘이 이후로도 멀쩡히 일을 하는 것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은 생계의 문제가 될 수도 있고, 결국엔 생존의 문제가 될 수도 있음이 명백해진 셈이다. 

'나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개똥 같은 취급을 당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대의명분에 목숨 거는 사람도 아니고, 그저 하루하루 나 자신을 건사하기 바빠서 나에게만 열중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필요한 순간이 오면 목소리를 내고 행동할 것이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페미니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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