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징니 Feb 26. 2017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책 [혼자일 것 행복할 것]을 보고 쓰다


서울에 생긴 나의 첫 번째 집은 대학 기숙사였다. '집'보다는 '숙소'에 가까웠던 4인실 기숙사. 처음엔 좋았다. 갓 상경한 신입생이었던 나에겐, 나와 같은 지방 출신의 룸메이트 셋이 있다는 사실이 꽤나 큰 심리적 안정감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그런 장점의 효력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고, 나는 곧 '4인실 기숙사'라는 공간은 결코 보통의 '집'과 같은 곳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입학한 첫 학기에는 그래도 버틸 만했다. 룸메이트들도 좋았고, 애초에 기숙사에 잘 들어가지를 않는 한창 바쁠 신입생 시절이었으니. 하지만 다음 학기에 룸메이트가 바뀐 후 고통의 나날들이 시작되었다. 바로 옆 책상에서는 계속해서 들리는 일본 애니메이션 소리, 너무 자연스러운 방 안에서의 전화통화, 게다가 아침 6시의 우렁찬 드라이기 소리란 정말. 그러던 어느 날 새벽 2시, 한쪽에서는 사랑싸움 한쪽에서는 애교 폭발로 난리가 난 두 명의 전화통화를 서라운드로 2시간 동안 강제 청취하다가 나는 결심했다. 자취, 자취, 자취. 나는 자취를 해야만 하겠어. 


자취를 시작하기까지의 과정도 순탄치는 않았지만 어쨌든 성공했다. 초기에는 하루하루가 마냥 행복했다. 집에서 내 마음대로 생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행복한 건지 처음 알았더랬다. 불도 내가 끄고 싶을 때 꺼도 되고,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해도 되고, 음악을 크게 틀어놔도 되고, 게다가 집 안의 모든 수납공간이 내 거다. 헐. 하지만 세상에 마냥 행복하기만 한 일은 없는 법. 내게 주어지는 자유만큼, 집이 집으로서 기능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도 고스란히 나의 몫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그냥 자동으로 굴러가는 줄 알았던, 아니 애초에 생각조차 해본 적 없던 일들. 냉장고 안의 음식들은 저절로 생겨나는 게 아니었고, 방 안의 먼지는 자연 소멸하는 게 아니었고, 생필품은 제자리에서 무한 리필되는 게 아니었고, 전기와 가스는 너그러운 나랏님이 공짜로 주시는 게 아니었다. 처음엔 퐁퐁이 설거지용인지 화장실 청소용 인지도 몰랐던 나는 그렇게 생활인이 되어갔다. 그리고 지금은 청소할 때 베이킹파우더도 쓸 줄 아는 어엿한 자취 6년 차. 


혼자 살아본 적이 없는 친구들 중에는 자취에 대한 로망이 있는 친구들도 꽤 있다. 그 로망은 보통 집안일이나 공과금 납부와 같은 지난한 일들은 소거된 이미지다. 내 취향대로 집을 꾸미고, 밤이면 빔프로젝터로 영화를 보며 맥주를 한 잔 하고, 친구들을 불러서 홈파티를 하고, 뭐 그런. 하지만 보통의 월세 생활자는 집에 자기 취향을 반영하기가 힘들고, 빔프로젝터는 설치도 어려운 집이 많고, 홈파티 후의 청소는 고스란히 내 몫이다. 부모님이 관리해주던 모든 일들을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부담이다. 그럼에도 혼자 산다는 것은 꽤나 근사한 일이다. 대단한 인테리어는 못해도 내 취향의 물건들을 하나씩 채워가는 즐거움이 있고, 새벽까지 크게 음악을 틀고 뒹굴거릴 수도 있고(물론 옆집에 안 들리게), 동네에 놀러 온 친구를 마음대로 재워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자취를 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 이건 한 학기 수백만 원의 대학교 수업과 비교해도 결코 사소하지 않은 공부다. 대표적으로 뭘 배웠냐면, "자취하면 요리 잘하시겠네요"라는 말은 상당한 선입견이라는 것?

매거진의 이전글 가족이라는 말이 가리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