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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징니 Mar 28. 2017

절망의 끝에서 다시 찾은 삶의 의미

책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읽고 쓰다


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 이는 1999년, 미국 콜로라도주 리틀턴시에 위치한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이다. 재학생 두 명이 900여 발의 총알을 난사해 교사 1명과 학생 12명을 죽이고 24명에게 부상을 입힌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학생들이었기에 더욱 충격이 컸던,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총격 사건들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는 사건이다. 가해자들의 이름은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리볼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그중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인 수 클리볼드가 사건 발생 17년 후 펴낸 책이다.


저자는 딜런이 태어나 총격 사건을 벌이기까지의 17년과 사건 발생 후의 17년, 총 34년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다. 여기엔 '나는 딜런을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 나에겐 잘못이 없다'는 변명이 담겨있지 않다. 그보다는 '나는 딜런을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 그런데 도대체 왜?'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한 여정을 기록한 글에 가깝다. 사건 이후 17년 간 저자는 극심한 감정의 파동을 겪는다. 아들을 잃은 슬픔, 자신이 몰랐던 아들의 모습에 대한 충격, 아들이 고통을 안긴 이들에 대한 죄책감, 아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증오, 그리고 그럼에도 끝끝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아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은 아들의 행위를 대신 변명하기 위해서가 아닌, 누구나 딜런과 같은 악마가 될 수 있으니 그 징후를 알아보고 예방하자는 말을 하기 위함이었다. 저자의 의견에도, 제시하는 대책들에도 동의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어렵고 막막하게 느껴진다. 내게는 절대로 일어날 리 없다고 여기던 일을 가능성의 언어로 다시 써보는 것은, 바꿔 말하면 내가 접하는 모든 사건들이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만으로도 괴로워지고 애초에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날 리 없다고 믿었던 끔찍한 일 속으로 다시 파고들어갔다. 오로지 아들을 이해해보기 위해. 그리고 그 절망의 끝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냈다. 아들 같은 사람이 또다시 생겨나지 않도록 하는 일. 영화감독 박찬욱은 추천사에서 '악마가 되어버린 아들을 이해해보려고 하는 이 피눈물 나는 헛수고 앞에서 나는 삼가 옷깃을 여민다'라고 썼다. 그의 말대로 딜런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영영 헛수고일지도 모르지만, 딜런과 같은 사람이 또다시 생겨나지 않도록 하려는 노력은 헛수고만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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