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 되면 달력은 달랑 한 장이 남는다. 시간은 더 쌓여서 나이가 한 살 많아지는데 그 주동자는 더 가벼워진다는 게 얄밉기도 하고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한때 1년 치 흔적들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탁상달력들을 버리기 싫어 차곡차곡 모아봤던 적이 있었다. 왠지 핸드폰을 바꿀 때 개인정보가 그대로 들어있는 기존 핸드폰을 함부로 못 버리고 책상 서랍에 보관하고 있던 것과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또 아까운 마음도 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자그마치 1년이 들어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한편으론 원치 않는 회원권이 자동결제 되듯이 때가 되면 1년이 일방적으로 충전되는 시스템에 불만이 있었다.
소개팅에서 바보 같은 멘트를 날린 적이 있다. 이미 나이 정도는 알고 나오는 자리지만 어색함에 습관처럼 먼저 나이를 물어버렸다. 근데 나이만 물었으면 될 것을...
나: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 거예요 그럼?
소개팅 상대: 아 저 26 이요.
나: 아 맞다. 26이라고 하셨지.
소개팅 상대: (예의상 마지못해) 나이가... 그럼?
나: 아 저는 13살이요. 전 2년에 한 살씩 먹거든요...
이런... 미친... 이건 개그도 아니고, 진심도 아니고 도대체 정체 모를 멘트에 상대는 멘붕에 빠진 표정이었다. 결과는 말해 모 하겠는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냥 혼자서 생각해 봤던 기형적인 생각이 필터 없이, 빠꾸(?) 없이 나와 버린 순간이었다. 한동안 그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시도 때도 없는 이불킥을 시전 했다.
그래도 이왕 시작한 거. 포기하지 않고 그 사건 이후 다시 한번 몹쓸 생각을 이어 나가 봤다.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부터해서 말이다.
아마도 나는 1년이 지나감에도 실제 변해가는 게 없어 보이는데 이미 정해진 관성 같은 1년, 1년이 맞지 않는 기준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마치 돌아가는 회전문에 덜컥 들어가 버린 것처럼.
그러나 결국 그 생각은 얼마 진행되지 못했다. 현실적인 생각만으로도 내 머릿속은 충분히 복잡하니까.
우주의 섭리를 거스르지는 말자. 우리는 한 톨의 먼지만 한 존재일지니.
달력이 가벼워지는 건, 우리가 그만큼의 세월을 가져왔기 때문일 것이다.
달력은 할 일을 했을 뿐이고, 곧 다시 새로운 임무를 수행한다.
우리가 받아낸 세월은 남의 것이 아니기에 억울해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나 같은 어리석은 의문은 자제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