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짇고리 공방의 브랜딩 이야기
리(Lee)에게 브랜드를 만들자고 제안한 건 2018년 정도였다. 통신판매업 신고가 2019년으로 되어있는 것을 보면.
그보다 훨씬 전부터 ‘브랜드를 만드는 게 좋지 않을까’,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지?’ ‘어떤 컨셉? 어떤 이름?’, ‘마케팅은 어떻게 하는 거지?’ 등을 고민해왔다. 리는 20년 전,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이 공방을 해왔다. 반짇고리나 보자기를 만드는 공방. 어렸을 땐 공장이라고 부를 정도의, 크기는 작았지만 일하는 사람도 많았던 곳이었다. 지금은 상품 자체의 시장이 줄어 1인 공방 규모로 작아졌다.
소비자이기만 해 봤던 내가 가진 건 미술을 전공해서 정말 많이 봤다는 것. 눈에 축적되어있을 잡다한 이미지들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더 눈길이 가는 브랜드를 분석하고 브랜딩 강의를 찾아 연구하는 것이었다. 애초에 사업가 기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손 안에서 일을 굴리는 걸 좋아한다. ‘이건 이렇게 하니까 되네?’, ‘이건 이렇게 하니까 안되네?’ 하는 식으로, 과정으로도 충분히 혼자 즐거운 편이다. 그래서 우선은 내 손으로 만든 것들을 모아두는 정도로 생각하고 일을 시작했다. 내가 보기 좋은 상태의 온라인 스토어를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보다 가장 큰, 지금도 여전히 가장 큰 숙제는 우리가 만드는 물건이었다. 반짇고리는 이제 사라지는 물건이었다.
반짇고리는 원래 혼수 품목에 들어가는 물건이었다고 한다. 동대문 시장이나 광장시장, 지역 시장 도소매 업체에서 한복집으로, 이불집으로 들어간다. 혼수 준비를 할 때 사장님들이 서비스로 하나씩 끼워주기도 하는 그런 물건. 메인 아닌 서브 품목. 말로는 친정 엄마가 결혼하는 딸에게 사주면 잘 산다는 속설 같은 것이 있어서 누구나 결혼 살림에 꼭 있던 물건이었던 것 같다.
반짇고리의 검색량은 현저히 적고 찾는 연령대도 한정되어있으며 대체품이 많다. 플라스틱이나 캔 케이스에 꼭 맞게 디자인된 것, 중국에서 생산해서 들여오는 저렴한 물건들. 반짇고리를 만드는 우리 집에는 반짇고리 안에 플라스틱 반짇고리가 들어있다.
그럼에도 이제는 낯설어진, 알긴 아는데 누가 사나 싶은, 이 물건으로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도무지 노동이란 걸 인정하지 않는 시장 구조와 디자인이란 말이 무색한 카피품들 때문이었다. 시장 구조와 카피 문제는 세대 차이, 살아온 환경에서 비롯된 생각의 차이라고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 시장은 그렇게 두고 브랜드의 시장을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80-90년대는 경제 성장기의 잔불 같은 것이 있던 때였던 것 같다. 섬유 제조업 분야, 미싱사, 수공예품을 만드는 노동자에게 낮은 임금을 주고 저렴한 제품 가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최저임금은 없었고 주 6일 근무를 하던 때였다. 그때 리는 아르바이트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시절 설정된 가격과 노동량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 이 가격이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이건 최저시급도 안 나와.”
공방에서 사용하는 자재 가격이 다 올라도 리는 가격을 좀처럼 올리지 않는다. 리도 안다. 말이 안 되는 가격인 것. 그럼에도 가격을 올리면 안 그래도 적은 주문량에 필수 품목도 아닌 물건인지라, 주문이 끊길까 500원도 올리지 못한다. 그 사이 리가 만든 새로운 디테일은 3개월도 지나지 않아 금세 도용당한다. 디자인 상표 등록이랄 것도 없는 시장이긴 하지만, 그 절차는 너무 어이없고 간단하다. 어떤 가게 사장님이 옆 가게에 납품한 리의 제품을 본다. 사진을 찍는다. 그걸 다른 공장 사장님에게 전송한다. 똑같은 상품이 시장에 나온다. 리의 가격보다 1,000원이라도 적게 부르는 공장에 카피를 요구한다. 카피는 이런 작은 수예품 시장이 아니더라도 어디에서나 벌어지는 일이지만, 문제는 여기는 정말 작디작은 시장이라는 것, 그리고 그마저도 점점 줄고 있는 시장이라는 것이었다.
시장은 제로섬 게임인데, 파이의 크기가 점점 줄어든다. 급기야 2000년대쯤 누군가 중국 공장에서 반짇고리를 들여오기 시작했다. 도매가는 기존 가격보다 더 낮아졌고 거래처는 줄었다. 서로 제 살 깎아먹는 싸움이 시작됐다. 저임금 여성 노동자가 빠르게 많이 만들어서 대량으로 팔던 시대가 지났다. 빠르면 물건의 품질은 떨어지기 마련이고 대량으로 구매를 하는 시장도 이젠 없다.
나에게 더 말이 되는 시장은 다른 곳이었다. 필요한 시간만큼 공들여서 잘 만들어진 것을 그 숙련도와 기술, 디자인에 상응하는 가격에 판매하는 곳. 우리가 우리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가면서 우리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 내가 아는 한 그런 시장은 있고 리에게 그 시장을 알려주고 싶었다. 리에게 그녀의 이름으로 된 브랜드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 시절 작은 제조업 공장을 운영하면서 겪었을 불합리한 일들을 뒤집어주고 싶었다.
본인의 삶을 기꺼이 자랑스러워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