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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리 Jul 05. 2022

어느 날, 기회들이 찾아온다

테이스트 마켓 입점기

어느 날, 메일이 도착했다.


[TASTE MARKET 입점 제안]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온라인 쇼핑몰이었다. 나인갤러리라는 곳에서 운영하는 젊은 느낌의 편집숍이었다. 이제 막 시작하는지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4천 명 정도였다. 그동안 cava.life 나 서울번드, 취프로젝트 등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들을 팔로우하고 있었다. 입점 신청을 하지는 않았고, 그저 재미있는 브랜드들 사이에 우리를 놓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인스타그램에 나인갤러리 계정이 팔로우되어 있었다. 인스타그램을 보고 들어온 걸 보니 예전에 텀블벅에서 펀딩 했던 색동 스토리지 박스를 보고 연락이 온 것 같았다.




색동 스토리지 박스



2019년에 텀블벅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관광공사에서 지원을 받았다. 아무래도 전통 원단들을 사용한 반짇고리가 많다 보니 브랜드 콘셉트를 전통적인 이미지로 시작해도 좋을 것 같았다. 색동과 공단 원단이 가진 쨍한 색감이 그래픽적이었다. 젊은 층이 소비할 수 있는, 내 눈에 마음에 드는 걸 만들어보고 싶었다. 아무래도 장식 없는 형태는 깔끔하긴 하지만 포인트가 없었고 한복 저고리의 고름을 접목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저고리 고름을 변형한 샘플 작업을 몇 번 진행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임, 여밈 방식을 데굴데굴 굴려보다 버클 방식이 떠올랐다. 금속 재질이 원단의 쨍한 색감에 생각보다 잘 어울렸다. 리의 거래처에 도금을 맡겨 부자재를 제작했다.



샘플을 완성하고 사진을 촬영했다. 집에 있는 백색 배경지에서 간단한 촬영을 진행했다. 그래픽한 느낌이 마음에 들었는데 텀블벅 측에서 일상의 공간에서 사용하는 연출 사진이 있는 것이 더 좋다는 의견을 들었다.

당시에 친구 중에 공유 오피스를 운영하던 친구가 있어 거실로 꾸며놓은 아늑한 공간을 빌렸다. 따뜻한 조명에 원목 책상, 화분, 소파가 있었고 요리조리 준비해 간 소책자와 필기구, 여권, 통장들과 함께 촬영을 했다.



프로젝트 소개 글을 작성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마리’라는 브랜드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게 처음 말해보는 글이었다. 리와 나에 관해서 어디까지 얼마나 솔직하게 말해야 할까, 너무 TMI는 아닐까, 구질구질하진 않을까 생각하면서. 텀블벅 담당자께서 준 피드백은 우리의 이야기보단 프로젝트 리워드 상세 설명 자체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크기를 가늠할 수 있도록 모두가 가진 사물과 비교 샷을 촬영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받았다. 여권을 예시로 두고 또 촬영을 하고 설명을 추가했다.


당시에는 건조한 글만 잔뜩 쓰던 때라 말랑말랑한, 다정한 글을 쓰는 것이 낯간지럽고 거짓말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도 그렇게 다정한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는 기분은 아니다. 그런 글을 써야 할 때면 항상 리에게 빙의한다. 리의 말투를 따라 한다고 생각하면서, 리라면 어떻게 썼을까 상상한다. 그렇게 하고 나면 ‘^^~’ 같은 이모티콘이 술술 나온다. 내 유전자에 리의 다정함이 없지는 않겠지, 싶다.




프로젝트는 다행히도 감사하게도 200% 가까이 도달했다. 190만 원 정도의 후원금이 모였고 총 60명 정도의 후원자에게 리워드를 보내드렸다. 그때 나의 물건을 산 친구들은 아직도 아까워서 집에 모셔두고 못 쓰고 있다고 한다. 부끄럽기도 하면서 기분이 좋다.


어렸을 때에는, 꽤 최근까지도 리가 하는 일, 그러니까 내가 하는 일을 밝히는 것이 낯설었다. 부끄러움이 있던 때도 있었는데, 그보다는 이 일을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것들 중 어디에 위치시켜야 하는지를 몰랐던 것 같다.


내가 리의 일을 공방, 공예, 브랜드, 디자인, 리빙, 소품 등의 내가 아는 영역의 말들과 연결시킨 것은 얼마 전이었다. 그 이전에 리의 일은 동대문의 골목길, 이른 아침 아무도 없을 때에 잠시 들러 물건을 놓고 나오는 일, 좁고 스산한 공간에서 오랜 시간 작업하는 모습, 밤을 새워서 마감일을 맞추고 난 후 직원분들의 날 선 모습, 아무것도 입혀지지 않은 나무 골조에서부터 시작되는 날 것의 이미지였다. 그건 그저 장면으로 머릿속에 있는 리의 일이었다.


리는 늘 마감에 쫓겨 바쁘게 일했기 때문에 집에선 종종, 꽤 자주, 큰 소리로 부부싸움이 있었고 난 그것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리의 일을 이름 붙이지 않은 채로 두었었다.





테이스트 마켓에 입점 제안을 받게 되었고 잠시 잊고 있었던 프로젝트의 기억이 떠올랐다. 좋은 디자인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내 바람이 같이 떠올랐다. 반짇고리가 40-60대 여성층을 대상으로 하는 상품이라면, 수납함과 보자기로 20-30대 여성층을 타게팅하고 싶었다. 입점 계약을 맺고 상품 이미지를 테이스트 마켓에 어울리게 편집해서 올렸다. 몇 가지 아이디어들이 동실동실 떠다닌다. 곧 다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또 상품군을 늘려갈 수 있을 듯하다.


어느 날, 느닷없이, 이렇게 또 기회가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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