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소녀에게 생긴 용기
"저는 성적이 1등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뛰어나게 예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반을 잘 이끌어 보겠다는 마음은 1등입니다."
입가의 근육이 덜렁덜렁하며 이에 닿은 침은 마른 지 오래다. 심장은 밖으로 튀어나올 듯이 그리고 당장이라도 응급실을 가도 될 만큼 빠른 심박수를 진정시키며 자리에 앉았다.
고1, 열일곱의 3월이었다.
줄반장이 될까 두려움에 떨던 나의 눈빛, 이름이 불리면 자리에서 일어날 때의 떨리는 나의 허벅지 근육이 생생한데 어떻게 나는 반장 선거에 나갈 수 있었을까. 원했다. 밝고 당당한 소녀가 되어보고 싶었다. 답답했던 내가 참으로 바랬던 나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10여 년간 보인 동네의 친구들에게 갑자기 바뀌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란, 십 대 소녀에게 용기 내어 볼 만한 것이 아니었다.
두근거리던 입후보 발표 후 투표용지를 여는 순간의 쿵쾅거림. 우리 반 1등으로 들어온 임시 반장과 나와의 두 후보로 좁혀져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김 oo, 조미소, 김 oo, 김 oo, 조미소, 조미소... 결국 2표 차이로 당선. 소감 발표는 기억나지 않고 아득하다. 어떻게 집에 왔는지 무슨 걸음으로 어떤 표정으로 하루를 지냈는지. 이제 됐다. 싶었다. 나는 더 이상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하지 않아도 괜찮다. 싫다고 할 수 있고, 큰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감투를 쓰지 않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변화였다. 이 친구들은 지금의 내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테니. 편안하고 자유로웠다. 내가 만들어 가는 나의 모습과 나의 세상이었다.
당시 1학년 담임 선생님께서 1년 후 교직을 떠나실 분이셔서 그랬는지 모든 조례와 종례를 반장인 내가 선생님께 가서 이야기를 듣고, 반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상황이었다. 덕분에 나의 별명은 조틀러가 되었다. 싫은데 싫다는 말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싫다는 아이들까지도 청소를 시키고 마는 그런 리더십이 있는 반장이 되어있었다. 당시 학교에서 하는 활동들이 많았다. 반 인원 모두가 참여해야 하는 패션쇼, 합창대회, 축제까지 모두 학생들의 참여로 돌아가던 행사였다. 패션쇼 회의를 하며 조별로 나눠 옷을 만들고, 반에서 아이들의 파트를 나눠 합창대회 지휘를 하고, 각 반 반장과 친해지며 친분이 쌓이고, 서울시 임원 수련회를 가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반장에 매료되어 목표를 정하게 된다.
‘3년 반장과 전교 회장을 해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