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가면, 괜찮아질까요? #5

천사가 아냐!

by 엄마 안녕


고등학교 학생회장이 기억나는가? 작년에 누가 뽑혔는지 모를 정도로 한 팀, 혹은 두 팀만 겨우 나와 조용하던 학생회장 선거가, 내가 출마하던 당시 꽉 채운 4팀이었다. 한 팀당 회장 1명, 부회장 2명으로 총 12명이 나와 교문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장구를 치고 열띠게 홍보했다. 당시 쟁쟁하고 부유한 후보 한 팀이 전 교실 에어컨을 달겠다는 파격적인 공약을 걸었다. 게다가 포스터까지 외주에 맡겨 멋들어지게 만들어서 가지고 왔었다.


심지어 함께 부회장으로 나가겠다고 약속했던 한 친구는 본인이 회장에 나가고 싶다고 이야기해서, 다시 팀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까지 놓이게 되었다. 도저히 안 돼서 그 친구에게 간곡하게 부탁했다. “네가 2학년을 맡고 내가 3학년을 맡으면 우린, 천하무적이야. 우리가 이길 수 있다고. 너랑 경쟁하고 싶지 않아. 확실한 길이 있는데 같이 가자” 그래도 끄떡없었다.


빵빵한 공약과, 어긋난 팀원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표가 갈릴만큼 치열했기에 나는 공약 세우는 데에 더욱 정성을 쏟았다. 내가 학생 입장에서 학교 다니면서 원했던 것, 불편했던 것들을 생각했다. 작지만 소중했고, 소소했지만, 강력했다. 매점에 있던 우리의 사랑 델몬트 오렌지 드링크를 다시 데리고 오는 것. 급식 카드로 바꾸는 것, 시험 범위를 전체 공지로 안내문을 배부하는 것. 포스터 한 장 한 장 진심을 눌러 담았다. 선거 유세 한마디 한마디에 꾹꾹 마음을 담았다. 기적이 흘렀던 걸까. 아니면 진심이 통했던 걸까. 더 이상 천사가 아냐는 내게 꿈이 아니었다. 현실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꿈을 이루었다.



『천사가 아냐』 만화책의 마지막에서, 졸업 후 답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학생회 임원을 했던 여자 주인공은, 답사 용지를 가지고 나가지만 그 순간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어 백지를 가지고 나가 눈물을 흘리며 할 말을 전한다.


“전, 이 학교에 오길 잘했어요. 가장 즐거웠고 꿈만 같았던 추억을 많이 만들 수 있었죠! 모든 건 혼자서 만들 수 없는 추억입니다. 여러분을 만나게 돼서 다행이에요. 3년 동안 정말로 고마웠어요. 고맙습니다.” 내 마음과 같았다. 나의 고등학교 졸업 답사에서도, 나 또한 진심을 담아 감사함을 담아 이야기했다.



학교 다니며 모든 순간 최선을 다했고 열심히 했다. 한치의 후회가 남아있지 않다. 공부를 좀 더 했으면 좋았을걸? 아니, 그 순간 행동했던 모든 행동이 최고의 선택이었기에 지금까지도 내 인생의 반짝거림으로 남아있을 수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이사 가길 잘했다. 사실 대치동이든 아니든 동네는 상관없었다. 그저 소극적이었던 내가 모르는 사람이 가득했던 곳이 필요했었고, 적극적으로 변해보고 싶었던 나의 열망을 깨우치고 행동할 수 있는 곳이 필요했었다. 단지, 내가 스스로 바꿔 갈 수 있었던 터전이 대치동이었을 뿐. 그래서 나에게 대치동이란 나의 변화 그뿐이다. 그 속에서 나는 앞으로도 영원히 히어로로 남아있을 열일곱의 내가 남아있다.


열일곱의 변화 이후, 결국 나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나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좋다. 열 살 모습으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미래의 모습이다. 힘들었던 시절을 현명하게 변화한 나 자신의 삶에 Bravo를 외친다.


마흔을 넘겨 살아가고 있는 나는 여전히 괜찮다. 괜찮지 않았지만 괜찮다. 괜찮은 삶 속 괜찮지 않았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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