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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에 우리 가족 이야기가 실렸다

특별한 순간을 지나 우리 방식대로

by 미지의 세계

그 날은 아침부터 동네 마트에서 귤과 쿠키를 조금 샀다. 평소보다 좀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미국 주간지 '더 뉴요커'의 기자가 우리 집에 오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기자는 한국의 저출산 대책에 대한 기사를 준비 중이었는데, 특히 관련 정책의 수혜를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어했다. 마침 그 소식을 전 직장 선배가 듣고는 지자체 지원을 따라 시골로 이사 간 우리 부부를 떠올렸다. 이 날의 만남은, 그렇게 여러 인연이 걸쳐져 성사다.


다른 지역, 심지어 미국에서 우리 집에 처음으로 누군가 오다니. 게다가 내 생애 첫 인터뷰까지 예정돼 있으니 긴장이 안 될 리 없었다. 부산스럽게 손님 맞할 준비를 하며 긴장을 떨치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대략 이런 모습이 되었다. 부엌 서랍엔 이미 캡슐 커피가 맛 별로 잔뜩 있다. 하지만 혹시 그가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일까 해서 차 티백도 새로 구비했다. 또 그는 따뜻한 음료보다 차가운 음료를 선호할지도 몰랐다. 해서 얼음도 꽝꽝 많이 얼려뒀다. 서울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여기까진 아주 머니까 아침을 거르거나 대충 먹고 올지 몰랐다. 그래서 포만감 느껴질 만한 종류의 쿠키를 골랐다. 그런데 혹시 그 반대로 이것저것 먹고 올지도 몰랐다. 그래서 귤이 장바구니에 들어갔고... 아!


전에 프리랜서 방송인으로 일하면서 인터뷰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그때는 인터뷰를 하는 입장이었기에, 대상자가 긴장하고 떨려하는 걸 그저 카메라 울렁증으로 치부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이야기를 나누기로 한 날이 다가오니 준비하는 입장도 이렇게 초조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이야기가 나오려나.'


물론 한국의 저출산 대책 수혜자로 섭외가 되었으니 대충 그런 이야기를 할 거란 건 알았다. 그래도 사전 질문지를 받지 않은 상태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머릿속으로 굴리고 있었다. 사실 나는 인터뷰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얼마나 챙길 게 많을지 알기에 먼저 질문지를 달라고 요청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초조한 건, 내 오만 때문이야.' 질문지를 받았어도 아마 비슷하게 초조했겠지만, 아무튼 나는 탓하기 가장 쉬운 상대인 스스로를 탓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잘 정돈된 거실을 둘러보고 안절부절못하며 소파에 앉기를 두어 번. 잠시 뒤에 통역인에게 연락이 왔다. "저희 다 왔어요. 어디로 가면 돼요?"


고민이 무색하게도 인터뷰는 아주 편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자, 기자는 우리 부부가 처음 어떻게 만났는지를 물었다. 그런데 조금 수줍어하며 대답하는 도중에 그가 수첩과 펜을 꺼냈다. "벌써 시작하는 건가요?" 나는 과거에 인터뷰이가 내게 수없이 묻던 그런 질문을 하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긴장을 풀어주려고 던진 질문인 줄 알았는데?' 예상을 빗나갔다고 해도 어려운 질문은 아니었기에 대답이 술술 나왔다. 인터뷰 내내 기자가 녹음이나 녹화 없이, 오로지 메모만 하며 우리 이야길 들었기 때문에 내심 속으로 '저렇게 해도 인터뷰 내용이 다 기억날까?' 하는 걱정이 됐다. 물론 나중에 기사 나온 걸 보니 그런 고민은 전혀 필요 없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나나 배우자나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게 어려웠기에 통역하는 분을 두고 인터뷰가 진행됐다. 이런 방식 때문에 인터뷰는 꽤 독특한 대화 형식이 되었다. 가끔 통역하는 분이 우리 이야길 듣다가 다시 한국어로 우리 대답에 재질문을 하는 등 대화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기자가 자기 주변인 중에 '아이를 키우는 일이 정말 축복이고, 행복한 일이라서 아이를 키우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그런 마음을 알지 못하는 건 아쉬운 일'이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한 적 있다며, 그건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었다. 우리는 이에 대해 '아이를 키우는 마음은 반려 동물을 키우는 마음과 얼추 비슷하지 않을까. 물론 사람과 동물은 엄연히 다르지만, 그래도 대상을 누군가가 전적으로 보살피며, 사랑으로 키워야 한다는 점에선 같다. 반려 동물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그러니까 사랑은, 꼭 아이를 키워야만 알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식으로 답했다. 그런데 갑자기 통역하던 분이 "오! 맞아요. 저도 반려 동물을 키우는데..." 하며 공감한 식이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나는 적당한 때에, 유일하게 준비했던 말을 했다. 우리가 아이를 낳아 기르기로 결심한 시기는 정부나 각 지자체가 저출산 대책을 본격적으로 확장하던 시기였다. 마침 운이 따랐기에 우리 가족은 아이를 낳고, 시골에 이사와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운과 제도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작용하는 건 아니다. 육아휴직이 쉽지 않은 직장도 많고, 출산 장려 혜택에서 소외되는 지역도 있다. 결국 이렇게 운에 기대야만 한다는 사실이 이 제도의 가장 큰 한계를 보여주는 건 아닐까. 우리는 그저 운 좋은 사례일 뿐일지도 모르고, 그래서 종종 멈칫할 때가 있다.


보통 생각은 스스로 정리하는 거지만, 간혹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하면서 자신의 생각이 재정립되기도 한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우리 부부는 또 한 번 우리 삶의 방향이 명확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 시골에 이사 온 건 '도시에 살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러니까 서로의 생활과 경제 상황, 자녀의 교육 등을 비교하며 경쟁하기도 하는 분위기에서 벗어나도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회사에서 일하는 것보다 아이들과의 생활을 우선에 두는 삶을 사는 것이다. 휴직 기간이 길어지면서 우리 부부는 여러 차례 승진 기회를 놓쳤고, 이사하면서 출퇴근 시간도 훨씬 길어졌지만 그럼에도 지자체의 지원금 덕분에 남은 육아휴직 기간 동안 아이들과 더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우리 가족의 이상적인 삶을 위해, 고향이든 어디든 언제나 이사 갈 수 있는 자유를 확인했다. 이 시골까지 이사를 왔는데, 아이들이 성장하고 좀 더 많은 자극 요소가 필요해지면 또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기자와 통역인이 간 뒤, 우리 부부는 좀 더 오랫동안 우리 가족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지금처럼 서로 의견을 나누며 잘 지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인터뷰는 지난해 11월쯤 이뤄졌고, 기사는 올 2월에 발행됐다. 그동안 인터뷰의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팩트체커가 따로 연락이 와서 여러 질문을 던졌다. 시간을 두고 다른 사람이 인터뷰 내용을 확인하는 게 기존에 내가 경험한 업무 방식과 달라 새로웠다. 팩트체커는 한국말을 할 줄 알았지만, 대화를 나눠보니 엄청 유창하게 언어를 구사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해서 혹시나 언어가 소통에 방해될까 봐, 우리는 서로 세세하게 상대의 말을 확인해 가며 여러 차례 메일을 나누고 전화 통화도 했다.


그렇게 나온 기사를 보고 느낀 점은 크게 두 가지. 생각보다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매우 자세하게 나왔다는 것. 그리고 미국과 한국의 시간차를 극복하는 전화 통화까지 했음에도 소소한 오류는 결국 바로잡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당시 인터뷰 자리에 함께 있었던 딸이 결국 'boy'로 기록되었다.) 특히나 후자는 나도 현업에 있을 때 잘 못했던 점이라 여러 생각이 들었다. 같은 언어로 대화를 주고받아도 말의 취지가 왜곡될 수 있는데 하물며 다른 언어가 번역되는 과정이 있으니 어쩔 수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대화를 할 때도 상대의 말을 정확히 들으려고 노력하고, 나 역시도 언어를 잘 벼려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이 많이 알려진, 다른 나라의 잡지에 우리 이야기가 실리는 경험은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누군가 내게 질문해서 답을 골라내는 과정도 재미있었고, 그게 어느 이름 모를 독자에게 전달될 거라고 상상하는 것도 즐거웠다. 이를 계기로 우리 가족의 방향성이 조금 더 명확해진 것도 좋았다. 그런데 이런 특별한 순간도 결국 평범한 일상 속으로 흘러들어 갔다. 이번 일을 지나며 마지막으로 남은 생각은 이것이다. 어디서, 어떻게 우리 가족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도 결국 우리는 평소처럼, 행복이라고 믿는 곳으로 천천히 나아갈 뿐이다.



더 뉴요커 해당 기사 링크

https://www.newyorker.com/magazine/2025/03/03/the-population-implo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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