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시작했고, 함께 하며 깊어진다
우리 부부에겐 두 명의 아이가 있다. 글을 쓰는 지금 시점을 기준으로 한 아이는 32개월, 다른 아이는 18개월이다. 두 아이 모두 다른 매력으로 너무나 사랑스럽다. 아이들을 돌보는 건 때로 힘에 부치지만 그래도 즐겁다. 마치 멈춤 버튼 없는 고자극 영상이 실시간으로 재생되는 것 같다. 물론 화면을 보고만 있을 순 없고, 상황에 직접 참여해야 한다는 점에서 체력 소모의 차이가 크지만. 그런데, 이런 삶을 왜 선택했을까?
사실 별생각 없었다. 결혼을 하지 않았을 때부터 막연하게 아이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스스로가 1남 1녀 중 장녀로 컸다. 주변에도 다 형제, 자매가 있는 환경이어서 아이, 더 나아가 두 아이가 있는 '네 식구의 가정'이 낯설지 않았다.
그런데 별 고민 없이 선택한 결정은 꽤 큰 뒷감당을 요구했다. 새로운 일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지나치게 예민한 생명체를 돌봤다. 저질 체력과 호르몬의 작용 등 여러 이유로 쉽게 우울해지던 나날이었다. 그래도 문득문득 아이가 너무 예뻤다. 내가 가장 잘 아는 타인(남편)과 내가 만났는데 생각지 못하게 전혀 다른 사람이 나타난 게 신기했다. 그러다 우리를 조금씩 닮은, 그런데 완전히 새로운 인간을 하나 더 만든다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그렇게 둘째를 또 낳아 길렀다. 둘을 키우면 한동안 쉴 틈이 아예 없어질 거란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이미 아이 둘이서 세상에 나와 각자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울부짖고 있을 때였다.
그러고 보면 평소에도 난 가까운 미래의 어려움을 상상하는 게 어려웠던 것 같다. 마음이 서면 일단 '고' 하고, 나중에 조금 후회를 하거나 뒤를 돌아본다. 가끔 뒤를 돌아보며 아이들을 번갈아 안았다. 이 애들이 조금씩 걸어 다닐 즈음되어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남편은 원래 오랫동안 아이 없는 삶을 추구해 왔다. 아이는 예쁘지만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에 시간과 돈이 많이 들 거라고, 그게 싫다고 했다.(이런 내용은 다른 글로도 한 번 쓴 적이 있다.) 그런 그를 움직인 건 육아 휴직과 각종 지원금이었다.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봤고, 하루하루 반복되는 업무는 지루하고... 그러던 차에 배우자인 내가 육아 휴직으로 열심히 설득했다. 그는, 실제론 아이가 나오고 나서 많이 쉬진 못했겠지만, 어쨌든 돈을 받으면서 집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매우 만족해했다. '내 삶의 존재 이유'라거나, '배우자를 닮은 아이를 낳고 싶은' 그런 로맨틱한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그냥 그는 본인이 가장 소중한 사람이며, 아이 양육이 본인에게 득이 된다고 판단해 아빠가 되기로 한 것이다.
둘이나 낳은 이유에 대해서도 그는 명확한 답이 있었다. '하나나 둘이나, 이미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렇다면 아이를 하나 더 낳아서 여러 지원을 받는 게 낫지 않겠냐'는 거다. 처음에 그 이유를 들었을 땐 너무나 로봇 같이 무미건조한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거듭 묻기도 했고 같은 답을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를 이해한다. 이해할 뿐 아니라 오히려 좋다. 그는 스스로의 욕구에 솔직하기에 그 이후 결정도 열정적으로 책임진다. 해서 아이들의 성장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고, 아이들에게 가장 다정한 아빠로 살고 있다. 매주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책을 도서관에서 잔뜩 빌려다 두고, 공공 육아센터에서 아이들이 재미있게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눈여겨봤다가 사두는 식이다. 비록 나에게 종종 '이제는 정기적으로 자유 시간을 달라'며 홀로 여행 갈 궁리만 하지만 말이다. 로봇처럼 철저하게 계산하는 그 마음으로, 그는 가장 좋은 아빠가 되는 방식을 매일 고민한다.
이렇게 우리끼리는 이미 말없이도 이해하는 서사가 있지만, 때로 이 삶을 설명해야 할 때도 있다. 특히 '저출산 시대에 아이가 있어 얻게 되는 경제적 이점'은 우리 부부가 적극 좇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부분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자면 곧바로 다음과 같은 냉소적인 반응이 온다. "그 돈이 얼마나 된다고." 지금이야 아이한테 드는 비용이 얼마 안 드니 지원금으로도 먹고살지, 나중엔 더 힘들어질 거라는 거다. 너무나 맞는 말이다. 그런데도 경제적인 이유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건 아이를 낳지 않을 때 얻는 이점으로 흔히들 '경제적인 부분'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으면 어떤 점이 좋은지, 그러니까 '삶이 다채로워'지고, '힘들지만 행복'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지고... 이런 추상적인 이유 말고 구체적인 이유를 달라고 한다. 그래서 최대한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경제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면 '고작 그거'라고 한다.
"맞아. 경제적인 이유가 전부는 아니지. 아이가 있으면 한마디로... 너무 다채로워진다고. 인생이 얼마나 다채로운지 몰라! 그리고,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돼. 모든 것에 너그러워지고 사랑이 뭔지 알게 돼!!" 이런 말을 듣는 친구들의 표정은 영혼이 없다. 모든 걸 있는 그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나의 한계 때문일 거다. 그럼에도 소심하게 말을 덧붙여본다. "야, 진짜야. 마음으로 가득 차는 게 있다니까!" 가족을 만들고 함께 살아가는 일에는 어쩔 수 없이 낭만이 포함된다. 사람 마음에 흐르는 무언가, 효율로만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최대한 아이 있는 삶이 내게 주는 이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이런 이야기도 해본다. 경제적인 이야기는 많이 했으니까, 정서적인 면에서 좀 더 얘기해보겠다는 거다. 서울 나들이를 할 때 아이를 유아차에 태우고 걷는데, 지하철을 타다가 거의 울 뻔했다. 엘리베이터가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고, 어디 있는지 모를 역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환승하는 통로는 바퀴로 갈 수 없는 길로 중간이 뚝 끊겨 있었고, 역을 겨우 빠져나와 걷는 보도 블록 길도 차나 간판들로 막혀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 때야 처음으로 휠체어 타는 사람들의 이동에 대해 체감했다. 혼자 걸을 땐 전혀 생각도 못 했던 부분이었다.
또 아이들과 동물원에 갔을 때도 새로운 걸 깨달은 적이 있다. "엄마, 저 코끼리는 저 자리에서 왜 자꾸 왔다 갔다 해?" 그제야 무언가 아파 보이는, 많이 야윈 코끼리를 의식할 수 있었다. 온갖 곤충들의 이름을 알고, 공룡들에 대해 배우고,...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며 매일 스스로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아이들에게 좋은 습관을 물려주기 위해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건 물론이다. 그러니까, 역지사지 잘 되는 사회인으로서도, 자기 계발에도 육아가 매우 도움이 된다.
엄마로 살고 있다 보니 아이 있는 삶에 대해 예찬했지만, 사실 아이를 낳아 기르지 않는 삶도 충분히 존중한다. 부모가 되기로 결정하는 건 마치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실거냐, 따뜻한 아메리카노 마실 거냐'의 문제처럼 취향을 선택하는 문제 같기도 하다. 좀 더 삶의 형태를 바꾸는 주요 결정 중 하나가 되겠지만 말이다. 애가 있든 없든 고민해서 결정했을 테니 그 이후의 삶을 즐기면서, 혹은 감당하면서 산다. 오로지 그 사실만이 모두가 추구해야 할 삶의 태도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