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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늙어본 적이 없다

작은 영화관에 가서 생긴 일

by 미지의 세계

몇 달 전 읍내에 작은 영화관이 들어왔다. 상영관 하나당 마흔여섯 자리씩, 총 두 관이 있는 작은 영화관이다. 최신 영화들도 상영하고, 팝콘이나 각종 주전부리도 구매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작지만 알찬 영화관이라 볼 수 있다. 이 동네에선 지역에 무슨 일이 있을 때 읍내 큰길에 현수막을 걸어 알리는데, 그 시기 즈음에는 이런 현수막이 걸렸다.


'ㅇㅇ영화관 오픈 기념, 3일간 무료 영화 상영'


남편과 나는 날짜를 잘 적어뒀다가,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관에 도착해 공짜 표를 받아 들었다. 선착순 입장이었음에도 빈 손으로 돌아서는 사람 없이, 그저 공간이 꽈악 차도록 적당한 사람들이 영화관을 분주히 오갔다.


오후 2시 즈음이라는 시간적 특성 때문일까, 아니면 지역 특성 때문일까? 영화관 안에는 중장년층 손님이 대부분이었다. 그 가운데서 30대 중후반인 우리 부부는 매우 젊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우연히 우리 옆 자리에, 역시 30대 즈음되어 보이는 젊은 부부가 앉았다.


"아이고~ 어르신! 어르신 영화는 10분 뒤에 저 뒤에 2관에서 하는 거예요" 진행 요원들과 영화관 직원들은 자주 길을 잃고 헤매는 어르신들을 자리에 앉히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자기 자리가 아닌 데 앉은 사람, 상영관을 잘 못 찾은 사람, 팝콘 말고 다른 기념품도 있냐고 묻는 사람.... 약간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 우리 네 명은 조용히 핸드폰을 봤다. 그러다 이내 불이 꺼지고, 몇 개의 공익 광고가 나온 뒤 영화가 시작됐다. 극장 에티켓 영상이 나오기 전, 우리는 핸드폰을 무음으로 하고 각자 가방이나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날 영화관은 영화 시작 후에도 정숙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사람과 그를 타박하는 일행의 대화도 들렸고, 심지어 통화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 어! 나? 제주도에서 어제 왔지...."


그 극장에 있던 사람들은 전화받은 분이 언제 제주도에 다녀왔으며, 며칠 머물렀고, 그날 날씨가 어땠는지를 다 알았을 것이다. 그분은 애써 조용히 하려는 노력 없이 대화를 5분가량 이어갔다. 그래도 약간의 매너는 있었다. "근데 나 극장이네. 나중에 전화해" 옆에 앉아있던 젊은 부부가 실소하며 나누는 얘기가 들렸다. "시골 스타일~ 알지" 영화를 어찌어찌 다 보고 나서, 갈 곳 없는 짜증은 비아냥으로 입 밖을 비집고 나왔다.


"어르신들이 극장 에티켓이 익숙하지 않으신가 보네. 영화 보는 내내 좀 정신없었지?"

"음. 글쎄?"


별다른 호응을 받지 못한 내 말이 허공에 흩어졌다. 조금 머쓱한 마음으로 화장실로 들어갔다. 손을 씻는 데 앞에서 손을 씻고 있던 분들의 대화가 들렸다.



"나 몇 년 만에 극장을 다 와보네."

"그러게~ 나도!"

"젊을 때는 그래도 가끔 갔는데. 진짜 오랜만이야."

"응~ 재미있었다. 우리 뭐 맛있는 거 먹고 가자."

"그래, 그래!"


시원하고 깔끔하게 차려입은 두 여성은 마치 어린 학생들 처럼 밝은 표정이었다. 손을 씻는 모습도 경쾌해보였다. 그 분들이 나가고 혼자 손을 씻으며 곰곰이 생각해봤다. 젊은 사람에겐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문화 생활도 누군가에게는 무슨 계기가 있어야 하는 거구나. 내가 더 나이가 들어서 우연히, 낯선 무언가를 시도한다면 그때 나는 어떨까. 아마 낯선 기계 앞에서 어리둥절해하고, 누군가의 눈총을 받으며 영화관에 오가게 될지도 모른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뭔가 어색하게 삐걱댈 것이다. 낯선 상황에 처한 사람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말이다.


'젊은이들은 늙어본 적이 없다'는 인터넷 게시물을 본 적이 있다. 앞에 생략된 내용은 '나는 젊어본 적이 있지만'이다. 문맥상 유추가 가능하지만 여기서 '나'는 나이가 많은 사람일 것이다. 늙었다는 이유로 뭔가 설움을 느낀 것 같기도 하다. 단순히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나는 젊어봤어!"하고 소리칠만큼 더 지혜로워지거나 사람이 깊어지는 건 아닐테다. 그래도 새로운 변화 앞에서 서툴고 낯설어하는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건 고개가 끄덕여진다. 누구나 나이 든 사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나이 든 사람이 겪는 고충이, 곧 내 미래의 고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영화관을 갈 때 만큼이나 가벼운 마음이 되었다. 머리가 희게 센 사람들이 많은 동네에 살아서 좋다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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