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각자의 세계에서 당신은

사랑이었다

by 미지의 세계

평소보다 분주한 아침을 보내고 차에 탔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지 1년이 지났다. 한 시간 반쯤 달려야 닿는 언덕 위 묘지, 그곳에 잠들어 계신 그분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잠시 할아버지의 옛날 모습을 생각했다. 첫 손녀에게 유독 다정했던 당신, 바쁜 맞벌이 자녀 부부를 대신해 손주들의 과 후 일과를 책임지던 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모습은 요양원에 누워 있는 앙상한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할아버지 하면 예전의 그 다정한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일상을 사느라 잠시 넣어두었던 그리움이 다시 피어올랐다. 단풍이 지고 갈대가 흩날리는 모습이 창 밖으로 아름답게 지나갔다.​



그는 살아생전 신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활동도 활발히 하셔서 당시 성당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날도 가족들과 묘지 근처의 성당에서 간단히 위령미사를 드릴 예정이었다. 미사 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을 때, 가족들은 성전 뒤쪽에 다 같이 앉아있었다.


눈으로 인사를 드리고 아버지 옆에 서니 영성체를 모실 시간이었다. 성당에 꾸준히 다녔으면 영성체를 모시러 앞으로 나갔겠지만 그렇지 못했기에 자리에 얌전히 앉았다. 주변을 돌아보니 가족들도 나와 마찬가지였다.​


문득, 이제 우리 집안은 4대째 크리스천 집안이라며 흐뭇해하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스쳤다. 할머니는 물론 그의 3남 1녀 자식들과 그 배우자, 손자, 손녀들까지 전부 세례를 받았다. 살면서 어려움을 마주할 때 신앙생활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득하셨기 때문이다. 그의 설득력은 정말 대단했다. 본인을 위해선 성당에 나갈 생각이 전혀 없었던 우리 아버지도 나와 동생의 사춘기를 잘 보내게 하기 위해 기꺼이 성당을 다녔다.


하지만 열정적인 타인에 의해 시작한 신앙생활이어서였을까, 할아버지의 기력이 약해질수록 가족들은 성당에 나가지 않았다. 그 결과가 오늘까지 이어진 것 같아서 조금 머쓱했다. 괜히 두 손을 모으고 성가를 크게 불렀다. 그런 동작으로라도 마음을 다하고 싶었다.​



"네가 올 줄 몰랐다. 정말 고맙고 반갑네."

미사가 끝나고 작은 아버지가 내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다들 바쁜데 저는 여유 되고 시간 있으니까 왔지요."

설령 회사에 다니고 있는 중이었어도 연차를 낼 마음이었지만 그냥 그렇게 말했다. 작은 아버지는 이런 기특한 조카에게 과자 세트를 쥐어주며 말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미지의 세계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전직 프리랜서 방송인, 현직 남매 엄마이자 과학해설사. 스스로에게 가장 엄격해요. 매일 검열하고 싸우면서 문장을 써요. 그래도 결국은 따뜻하고 재미있는 글쓰기를 소망해요.

120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4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5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5화시골이 아이들을 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