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생이었던 어느 날, 발표를 마치고 자리에 앉으려는데 담임 선생님이 말했다.
"너는 말을 잘하니, 나중에 아나운서 하면 좋겠다."
그때 내가 보는 TV 프로그램이란 주말에 하는 디즈니 만화동산뿐이었다. 그래서 진행자라는 개념은 아예 몰랐지만, 본능적으로 이 생소한 직업이 뭔가 좋은 맥락에서 나왔다는 건 알았다. 집으로 돌아가 엄마한테 물어봤다.
"엄마, 선생님이 나 아나운서 하면 좋겠대. 아나운서가 뭐야?"
첫 사회생활 5년을 카메라 앞에 서게 만든 힘은 바로 그 말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그날 이후로 뉴스를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방과 후 수업으로 방송반에 들어갔고, 모든 장래희망란에 아나운서를 적어냈다. 꿈이 일관되니 어딜 가도 진행자의 역할을 맡게 됐다.
그러나 무대 앞에 서면 잔뜩 긴장돼서, 부모님을 불러 앉혀 놓고 가족회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것도 쑥스러워서 직접 쓴 대본으로 자꾸 입을 가렸는데, 나중이 되니 콧잔등에 검은색 연필 가루가 잔뜩 묻어있었다. 연필로 눌러쓴 대본을 코와 입에 문지른 탓이었다.
어설픈 경험들이 도움이 됐을까. 실제 카메라 앞에 섰을 때는 생각보다 낯설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수없이 상상해 본 장면 같았기 때문이다. 스튜디오 조명은 생각보다 밝았고, 카메라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몸에 붙는 정장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서고, 커피를 마시며 라디오 진행을 하는 날들이 일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또 하나의 반전은, 꿈이 시작된 그 '칭찬의 기억'이 내게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 모든 일은 어머니께서 나중에 말씀해 주셨다. 그동안 나는 그 꿈이 부모님께서 억지로 주입한 꿈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전문직 여성으로 자라길 바라는 부모님의 마음 말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의심을 원천 차단했다.
"무슨 소리야. 어느 날 네가 학교 갔다 와서 그랬잖아. 선생님이 아나운서 하면 좋겠다고 했다고. 그 뒤로 뉴스 보고 그러던데?"
그러니까 냉정히 말하면 내 꿈의 역사는, 엄마의 기억 속에서 왜곡되고 미화되었을지 모를 어느 에피소드에서 시작된 셈이다.
인생을 바꾼 말이 타인의 기억에 의존하고 있다는 건 무척 어리둥절한 일이다. 마치 열렬히 사랑하던 사람과 결혼도 했는데, 문득 그 시작을 돌아보니 남이 지나가듯 말해준 장점 때문이었다는 걸 알게 된 느낌이랄까. 운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허무하기도 하다. 사랑한 모든 시간에 진심이었으니 그 마음 자체가 가짜는 아니지만 말이다. 이처럼 인생을 바꾸는 말이란 대개 그렇게 평범하게 시작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 선생님하니까 생각나는데, 나는 그분을 아주 엉뚱한 추억 하나로 더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선생님은 우리나라의 특징에 대해 초등학생들이 이해할 만한 단어로 설명해주셨다. 그러다 문득 덧붙였다.
"선생님은 우리나라가 '중진국'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말은 없습니다만, 선진국이라고 하기엔 아직 어색하고, 후진국은 확실히 아니고! 이제 우리나라는 거의 선진국으로 가고 있죠. 여러분이 크고 나면 우리나라는 정말 선진국이 되어있을 거예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은 경제학적 정의와는 거리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교실에 앉아 있던 아이들에게는 충분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다. 선생님의 목소리에는 우리가 조금 더 나은 나라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당시는 밀레니엄이라는 말이 유행하던 시기였다. 모든 공문서 날짜란에 으레 적혀있던 '19' 숫자를 '20'으로 바꾸는 때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 시절을 주력 세대로 살았던 선생님은 새 시대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그대로 비친 것이다. 그 희망찬 미래를 너희가 이끌 거라는 기대와 막연한 애정을 담아서.
시간이 지나 그의 말은 '맞냐, 틀리냐'를 평가할 수 있는 과거가 되었다. 선진국, 후진국이란 단어는 더 이상 안 쓰지만, 이후 우리나라는 각종 분야에서 상위권에 드는 선진국형 국가가 되긴 했다. 또 '아나운서가 되거라'는 말을 들은 제자는 방송인으로 살다가 또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즉, 선생님의 말은 어느 정도 유효했다가 무효한 것으로 나아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마음에 남은 파장이다. 그는 예언자가 아니라 스승이기 때문이다. 수십 명의 학생들 앞에서 수없이 건넨 말들, 그중 몇 가지가 어떤 아이의 삶을 이렇게 오래 따라다니고 있다는 걸 본인은 알고 계실지 새삼 궁금하다.
말은 아니지만, 해당 선생님이 내게 남긴 따스한 기억도 하나 생각난다. 전학 간 지 얼마 안 되어서 친구도 없을 땐데 무슨 배짱인지 학급회장 선거에 나갔었다. 후보자가 많아 예선전은 선생님이 후보자의 이름을 호명하고 아이들이 거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때 나는 당연하게도 0표를 기록했다. 그 결과가 칠판에 쓰여 있었는데, 선생님이 잠시 고민하더니 1표로 바꾸셨다.
그건 선생님의 무조건적인 응원이었다. 모두가 눈을 감고 있었지만 나는 실눈을 뜨고 보고 있었기에 다 알고 있었다. 그 뻔한 위로에... 마음이 놓였다. 나뿐 아니라 그날 학급 회장 선거에서 0표를 받은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선생님의 말이 오래 남은 것은 아마 그분의 큰 마음을, 아이 때부터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던지는 사람은 잊어버리고, 듣는 사람만 오래 붙들고 사는 말들이 있다. 어떤 아이들은 그 말을 나침반 삼아 자라난다. 내 인생에서 그 첫 나침반은, 유독 따뜻하던 초등학교 4학년 교실에서 아무렇지 않게 건네진 한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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