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나타내는, 음악에 대하여
2000년대 초반에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은 알 것이다. 싸이월드라고, 미니홈피에 지금은 소위 ‘오글거린다’고 평가받는 글들을 나름 진지하게 소비하던 사이트 말이다. 물론 어떤 내용의 글을 올리든 그건 개인의 자유였다. 하지만 대체로 ‘퍼가요~♡’ 댓글이 달리던 인기있는 게시물들은 시니컬한 태도를 취하거나, 뭔가 감성적인 글들이었다. ‘자유롭게 눈물 흘리는 내가 좋다’ 라거나 (아아), ‘선생님, 내 마누라 건들지 마세요.’ (아아아!) 이런 표현들 말이다. 아, 추억이여! 그 때는 정말 그런 감성이 먹히던 시절이었다.
‘음악은 이 나라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다.’... 이 문장 역시 당시에는 성경 구절처럼 내려오는 명언이었다. 지금은 ‘허세’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렸지만 사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일단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이동 시간만 되면 마치 중독자처럼 각자가 좋아하는 음악을 찾아 듣기 바쁘다. (버스와 지하철에서 각자 이어폰을 꽂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라.)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뭐 하나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음악이 전하는 위로가 꽤나 크다. 특히 우울하고 힘들 때, 적절한 노래만큼 위로가 되는 건 없다. 슬픈 기분이 들 때 슬픈 노래를 들으면 오히려 기쁜 기분이 드는 호르몬이 나온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 않나.
어쨌든 ‘중독’과 ‘위안’, 두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음악과 마약은 이렇게나 유사하다.
음악이 마약만큼이나 사람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면 이런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뭐냐면, 누군가를 알아가는 과정 중에 그의 플레이 리스트를 훑어보는 것을 포함시키는 것이다. 그가 보는 세상의 배경음악이 뭔지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어떤 감정을 증폭시키고 있는지도 알 수 있고 말이다. 사적으로 친해지고 싶다면 명함 대신에 서로의 플레이 리스트를 교환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안녕하세요, 저는 요새 이런 음악을 듣는 미지라고 합니다.’ '어, 당신의 플레이 리스트에는 이 가수 노래가 있네요. 좋죠.'.. 너무 비현실적인가. 흠...
이쯤에서 내 플레이리스트의 역사를 밝혀볼까 한다. 보통 내 플레이리스트는 6개월~1년 단위로 싹 바뀐다. 어떤 시기에는 발라드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다가, 또 어떨 때는 클럽 풍의 비트 강한 음악이 주류를 차지하곤 한다. 그러다 갑자기 뉴에이지 음악을 미친 듯이 듣기도 하고, 국악에 빠져서 한동안 들은 적도 있다. 이렇게 변덕스러운 음악 목록이 무려 3년 간 유지된 적이 있었는데, 바로 고교시절 때였다.
당시 내가 사랑하던 음악은 ‘힙합’, 그 중에서도 영어로 엄마 아빠를 찾는(?) 소위 갱스터 랩 계열의 음악이었다. 그런 음악을 들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던 것 같은데, 명확한 이유는 기억이 안난다. 다만 10년도 더 된 기억을 끄집어내 추측해보자면 이렇다. 나는 쉬는 시간마다 혼자 MP3를 꺼내 파괴적인 랩을 들으며 영어 단어를 외우던 학생이었다. 이어폰 너머로 들리는 시끄러운 음악을 뚫고 내게 말을 거는 친구들이 없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친구들과 대화만 해도 대학문이 멀어지리라 우려하던 때였다. 그런 상황에서 마음에 벽을 쌓는 사회 비판적 랩은 최적의 배경음악이었지 않았을까. 결국은 고립을 위해 쌓아둔, 음악 목록이었던 셈이다. 3년 동안 바뀌지 않는 공고한 벽 말이다.
그러면 지금도 그런 플레이리스트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할 것이다. 실은 대학에 진학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거친 음악(?)과 멀어졌다. 달달한 러브송이나 실연의 음주 송이 내 마음을 더 잘 대변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음악들을 채워넣기 위해 이 전에 들었던 어두운 음악들은 모두 삭제했고, 그렇게 과거는 말끔히 청산되었다.
...아니, 사실 청산했다라고 표현했지만, 요즘도 우연히 거친 내용의 랩을 들으면 영어책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그 소녀가 생각난다. 그녀가 듣고 있는 이어폰을 뽑고 말이라도 걸어볼까. 그 소녀는 오히려 화를 낼 수도 있지만, 고립을 자초한 기억이 가끔 스스로를 쓸쓸하게 만들 것이라는 것을 말해준다면 어떨지 생각하곤 하는 것이다. 물론 이미 지워버린 플레이리스트처럼,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긴 하지만... 만약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소녀에게, “음악 정도는 밝은 걸 들어도 돼. 네가 더 밝은 사람이어도 돼”하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고 보면 열심히 싸이월드를 하던 시절, 왜 그리도 ‘도토리질’을 해가며 싸이월드 배경음악을 골랐는지 알 것 같다. 내 홈페이지의 첫인상을 뭔가 멋지게 남기고 싶었던 욕망이 반영되었던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거친 음악들을 선곡한 기준도 역시 ‘타인’이었다는 점에서 (물론 타인의 선호도와는 상관없이, 타인을 밀어내기 위한 음악이었다는 점이 다르지만) 그동안의 음악 선곡 기준이 어디에 있었나를 돌이켜보게 된다. 더불어 요즘은 이전보다 밝고 편안한 음악들을 훨씬 선호하는데, 내 마음이 편한 음악들이라는 점에서 그 기준점이 내게로 조금씩 이동하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너 요즘 참, 편안해 보여.’ 최근 지인들에게 많이 듣는 평가인데, 나는 이게 나의 플레이 리스트와 무관하지 않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