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 예찬론자의 이상형
어깨가 넓은 사람을 좋아한다. 어깨가 넓고 판판한 사람을 보면 절로 눈길이 멈추고, 첫인상을 좌우할 대화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물론 알고 있다. 신체 중 일부를 호감의 기준으로 삼는 이들이 속물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말이다. ‘마음이 착한 사람’을 좋아하는 이들은 다소 뻔해보이기는 하지만 뭔가 차분하고 진중한 느낌이 든다. 반면 ‘엉덩이가 예쁜 사람’을 좋아하는 이들은 변태라는 말을 듣거나 가벼운 눈흘김을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이런 위험성을 무릅쓰고 굳이 ‘어깨’를 호감 포인트로 꼽은 건 간단하다. 그것 말고는 다른 요소에 심장이 뛰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마음이 시작되는 포인트에 대해 묻고 있는데,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나는 어깨가 넓고 판판한 사람이 참 좋다. 몸매까지 좋다면 더더욱 감사하고.
물론 이상형은 이상형일 뿐, 실제로 머리를 기댔던 어깨들이 전부 넓고 판판하지는 않았다. 살이 없어 뾰족한 어깨, 너무 동그래서 자꾸 머리가 미끄러지던 어깨, 비누 냄새가 은은히 나던 어깨를 지나 몇 시간씩 묵묵히 베개로 있어주던 어깨도 만났다. 넓고 판판하다기보다는 그저 기대고 싶은 어깨들이었다. ‘기대고 싶다’는 말에는 아주 많은 말들이 내포되어있지만 간추려보자면 이런 것 같다. 우선 가까이 가고 싶을 만큼 호감 가는 사람, 그리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 결과적으로는 내가 세상사는 게 조금 어려울 때 잠시 기댈 수 있는 사람. 결국 넓은 어깨가 좋다는 건, 마음껏 기댈 수 있었으면 한다는 욕구의 발현이다.
“독립적인 사람이 좋아” ‘독립’을 매력 포인트로 꼽는 하얀 어깨와의 만남은 그래서 좀 특별한 면이 있었다. 그는 논리적인 사람이었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스스로가 설득되지 않은 주장에 대해서는 절대 그냥 받아들이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다. ‘남자친구니까 받아줘야 하는 거 아니야'따위의 말은 절대 허용이 되지 않았다. 사실 그에게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이나, ‘그냥’이라는 말처럼 흔히 쓰는 말도 잘 통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물론 나 역시 대부분 그의 생각에 동의했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문득 문득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그럼 이 사람한테는 이성친구로서 기댈 수가 없는 걸까?’. 흔히 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라 하면 상대가 ‘지친다’는 표현을 할 때 기꺼이 달려와주어야만 했다. 그게 이성친구의 의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왠지 그에게는 그런 의무를 기대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일을 만사 제치고 달려와 주는 ‘진정한 사랑꾼’이, 부담스럽다고 스스로도 말하고 다녔지만 사실은 내 남자친구만은 ‘진정한 사랑꾼’이 되어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하얀 어깨남과의 인연이 가까워져 올수록 무척 설레었지만, 지치고 힘들 때마다 그 어깨에 기댈 수 없겠다는 생각에 조금씩 괴로워지기도 했다.
예감이 적중했다는 것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거의 매일같이 싸웠다. 내용은 주로 이런 거였다. 내가 사회일이든, 가족 일이든 뭔가 시시콜콜한 일에 힘든 감정을 느끼면서 어깨를 내놓으라고 반 협박(?)에 가깝게 말을 하면 그는 대부분 단호하게 뒷걸음질 쳤다.
“나는 네 엄마가 아니야. 네 아빠도 아니라고. 네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항상 거기 있어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야.” 어쩜 그리 서운하게 구구절절 맞는 말만 하는지. “근데, 꼭 그렇게 말을 했어야 했니?” 또 다른 서운함이 밀려오면 그 때부터 2라운드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몇 시간씩이고 끝없이 격한 감정을 주고받으며 지쳐갔다. 이런 대화는 보통 그의 단절선언을 끝으로 간신히 끝나곤 했다. “다음에 이야기 하자”
진짜 이건 뭐, 물러선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사라진 것이었다. 전화도 안 되고, 카톡도 답이 안오니 혼자 맥주를 마시며 화를 삼키거나, 책을 읽으며 잠시 잊을 수밖에 없었다. ‘이 어깨는 내 어깨가 아닌가보다.’ 욕 비슷한 말을 중얼거리면서 그 하얀 어깨를 마음에서도 몇 번이나 밀어냈다. 시간이 지나면 이런 감정은 대부분 사그라들곤 했지만, 어쨌든 필요할 때마다 옆에 있어주지 않는 그 어깨가 많이 원망스러웠다. 거리를 두고 다시 가까워졌다가 다시 거리를 두는 연애가 반복되면서 해가 거듭 지났다.
하얀 어깨와의 연애가 내 성향을 조금 바꾸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오랜만에 만난 대학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서였다. “너 얼굴이 많이 좋아졌어.” 하는 이야기를 여러 명에게 들은 것이었다. “요새 살이 좀 쪘어”하며 웃어 넘겼지만,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이 전에 비해 덜 상처받고, 덜 화내는 사람이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기대고 싶을 때마다 기댈 어깨는 없다는 걸 받아들인 마당에, 왠만한 일로는 상처를 받거나 쓰러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단단히 만든 결과였다.
중력과도 같이 매일 느꼈던 고통, 또는 어려움 따위를 스스로 이겨내고 있다는 건 대견한 일이었다. 마치 허리의 힘을 키우듯 마음의 힘을 키웠다. ‘포기’라기보다는 ‘성숙’에 가까운 거였던 것 같다. 어쨌든 이렇게 홀로 서있을 수 있는 모습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덕분에 아무도 기댈 수 없었던 내 어깨에도 누군가 기댈 공간이 생기게 되었다. 나는 기대기보다 홀로 서있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상형과는 거리가 조금 있었던 만남 덕분에.
그래서, 나를 이렇게 우뚝 세워둔 하얀 어깨와는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실 것이다. 그와는 여전히 여러 논쟁(?)을 주고받는다. 또 그는 여전히 내가 힘들다고 떼를 쓰면 뒤로 물러나려는 준비를 한다. 그러나 이 전 보다는 어깨를 내어주는 횟수가 늘었고 내 어깨에 기대어 올 때도 생겼다. 이제 힘든 세상, 지칠 일도 많은 세상에서 하얀 어깨와 나는 서로의 어깨에 종종 기대어 있는다. 그가 내 마지막 '기댈 어깨'일 지는 모르겠으나 먼 훗날에도 이상형에 꼭 맞는, 어깨가 넓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