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전여행
철없던 19세 겨울, S와 H 그리고 나 셋은 수능을 마치고 그간 버킷리스트였던 기차로 무전여행을 떠났다. 지금은 없어진 기차일텐데 무엇이었을까 비둘기호? 통일호? 였을까? 고향인 부산에서부터 시작하여 해남 땅끝마을을 목적지로 하여 편도 기차표를 끊고 낡은 기차에 올라탔다. 각자 두둑이 챙긴 배낭에는 라면, 바나나, 물 등 각종 먹을거리 들과 여벌의 옷, 침낭, 가스버너 등을 가득 채웠다. 버킷리스트 무전여행인 만큼 우리 셋은 몹시 흥분에 들떠있었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지도를 가지고 목적지와 경로를 봐가며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아마 H였던 걸로 기억한다.
"저 재밌게 모르는 아무 역에서 내려서 거기서부터 목적지로 가볼래?"
"오! 재밌겠는데 진짜 그래볼까?"
그렇게 우리는 부산에 있는 지명이라는 이유로 송정역이라는 곳에서 내렸다. 낮에는 나름 햇빛이 따사로워 걸을만했다.
"와 날씨도 좋고 진짜 좋은데 이대로 땅끝마을까지 걸어가 볼까?"
우리는 묵묵히 몇 시간을 걷고 쉬고 걷고 쉬고를 되풀이 했는데, 이렇게 걸어서는 꼼짝없이 야외에서 노숙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히치하이킹을 시작했다. 지금이야 건장한 남학생들 셋이서 히치하이킹을 하면 누가 태워주겠냐만은 당시 우리는 참 많은 도움을 받았다. 다만 조롱 섞인 농담도 받아내야 했다.
"이야 경상도 아들이 겁도 없이 어디 여길와, 옛날 같으면 돌 맞아 죽었어"
가장 기억에 남는 말씀들은 요즘도 히치하이킹을 하는 친구들 있음에 놀라신 점, 경상도인 부산에서 용감하게 전라도로 무전여행을 왔다는 점. 무전여행을 왔다고 하면 믿기지 않으시는지 참 여러 번 물어 들 보셨다. 당시만 해도 우리는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이 무전여행을 시작으로 참 많은 무전여행을 할 줄 알았었다. 오히려 그 무전여행을 시작으로 다시는 무전여행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할 줄은 모른 채.
송정에서 도보와 히치하이킹으로 장흥군으로 이동했다. 첫날 정말 감사한 은혜를 입었다. 해가 저물어가는 가운데 히치하이킹을 작업 트럭으로 태워주셨다. 농사를 짓는 부부셨는데, 우리가 밖에서 자야 할까 봐 걱정이 많이 되셨는지, 장흥까지 차로 태워주시는 건 물론이고, 잠까지 자고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셨다. 참 그때는 그렇게 겁도 없고 염치도 없었는지, 제안에 응했다. 처음 보는 분 댁에서 잠자는 것은 아마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지 않을까.
많이 걸었던 터라 피곤했는지 어떻게 잤는지도 모르게 자고 일어났더니 부지런 한 두 분이 이미 아침 식사까지 준비해 두셨다. 닭 미역국이었는데 당시 미역국에 닭고기가 들어간 것이 생소했던 기억이 난다. 정말 맛있게 잘 챙겨 먹고 다시 출발하려는데, 싸줄 것이 변변치 않다며 김치와 깍두기를 싸서 쥐어주셨다. 참으로 감사했고 앞으로도 평생 감사함을 안고 살 것이다. 가끔 생각이 나서 다시 찾아뵙고 감사 인사를 전해드리고 싶은데, 방법이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글을 빌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그렇게 다시 출발한 2일 차, 앞서 쌓인 피로가 누적이 되어서인지 이튿날은 생각보다 피로가 빨리 찾아왔다. 좋은 음식도 없었고 물도 부족하게 섭취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어찌나 피곤했는지 힘들게 잡은 히치하이킹 차에 올라타서 세 명 다 잠드는 죄송한 실수를 하기도 했다. H는 차에 걸린 십자가로 차주께서 기독교인임을 알아보고,
" 하나님이 도와주실 거라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는 깨알 같은 드립도 하곤 했다. 그렇게 얻어 타고, 걷고를 반복해서 2일 차 밤늦게 우리는 해남 땅끝마을에 도착했다.
해남바다를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고, 부산 바다를 늘 보고 자란 우리들은 땅끝마을의 밤 풍경에 실망을 금치 못했다. 캄캄한 밤바다는 아름답지 않았고, 감회도 기대했던 것에 이르지 못했다. 그리고 날씨는 정말 생각보다 엄청나게 추웠다. 어디 한 곳 몸 누일 곳을 찾아 헤매 대 가 예전에 교회로 쓰다가 버려진 컨테이너 박스 건물을 찾아서 잠을 청하기 위해서 각종 포일 장판, 침낭, 다운점퍼를 껴입고 양말도 여러 겹을 신었음에도 외풍 심한 맨바닥 컨테이너 박스는 잠을 청하기 너무나도 추웠다. 몇 시간을 졸다가 추워서 깨다가 되풀이했다. 그러다 병약한 H가 너무 추워했다. S와 함께 새벽에 잠결에 H의 얼굴을 봤는데 입술이 아주 보라색이어서 이러다가는 큰일 나겠다 싶었다. 재워주실 만한 곳을 찾아 헤매다가 다 거절을 당하고 결국에는 한 모텔에 들어가게 되었다.
무전여행 온 사정을 이야기하고 몇 시간만 재워주시면 깨끗이 청소하고 돌아가겠다고 했으나 단칼에 거절당했다. (당연히 나였어도 거절했을 것 같다.) 밖은 너무 춥고 눈 붙일 곳은 없고 해서 거절당하고 나오던 모텔 로비의 소파에서 셋이 앉아 있다 졸고 있는데, 사장님이 나오시더니 깜짝 놀라서 우릴 깨웠다. 정말 무전여행을 온 거냐고 제정신이냐고. 아마 그 꼴을 보고는 거짓말이 아님을 믿어 주신 듯하다. 그렇게 감사하게 따뜻한 방한칸을 내주셨다. 우리는 3일만에 처음으로 샤워를 했다. 그것도 따뜻한 물로. 그 따뜻한 샤워가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임을 잊지 않고 있다. 다음날 아침 방을 최대한 깨끗이 정리하고 나와 인사를 드리려는데 안 계셔서 글로 마음을 전했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부디 감사 인사는 전하는 개념을 가졌었기를 바래보며, S와 H에게 한번 물어봐야겠다. 모텔을 나와 다음 일정을 어떻게 할지 논의를 했다. 그때는 정말 셋이 아주 의견이 일치했다.
"자 이제 부산행 기차표를 끊자"
19살 소년들의 무전여행. 지금도 피가 되고 살이 되었고, 가슴속에도 깊이 간직하고 있다. 도움을 주신 어른들이 보고싶다. 감사의 말씀을 전해 드리고 싶다. 그때 도와주신 덕분에 셋 모두 건강히 잘 여행하고 왔고 잘 성장해 아저씨들이 되었다고. 그리고 그 무전여행 이야기는 달달한 술안주가 되었다고.
안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