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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월 Apr 11. 2021

곰장어와 노신사

당신의 월요일은 안녕하신지.


 얼마 전 여의도에 외근을 나갔던 때였다. 그날 마포 인근에서 퇴근하던 친구 녀석 하나가 평소답지 않게 한잔 하고 싶은 생각이 역력해 보였다. 마침 근처에 있기도 했고, 그런 날이 많지는 않다 보니 결국 장소는 마포로 하고 즉흥적으로 만남을 가졌다. 그 친구 집이 마포이다 보니 종종 그곳에서 모임을 가진 적이 제법 있었는데, 늘 가보면 만석이라 들르지 못했던 한 곰장어 집이 있었다. 평소에는 늘 궁금했지만 엄두를 못 내던 곳이었는데 그날은 조금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다행히도 여유 있게 자리를 잡았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커플 한 팀, 이미 그 시간에 거나하게 취한 직장인 아저씨들 한 팀, 시끌시끌한 혼성 한 팀, 그리고 우리. 만석은 아니지만 이곳저곳에서 많은 대화 소리가 곰장어 향과 함께 가득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그 집 곰장어는 참으로 특이했다. 보통 양념에 버무려져 나오는 스타일이 아니라 간이 없는 스타일의 곰장어를 바로 구워 소금을 곁들인 기름장에 곁들여 먹는 방식이었는데, 낯설고 조금 부담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조금 익어가면 잘 잘라내고 한점 맛을 보니 기우였다. 섬세하게 가득 찬 식감과 고소한 맛이 어우러지는데 신이나 우리도 점점 목소리를 높여가며 간신히 대화와 곰장어를 이어 한잔 두 잔 하고 있었다.


 한 십여분쯤 지났을까, 연세 그윽이 드신 노신사 한분이 지팡이 하나를 짚으시며 가게로 들어오셨다. 가게 사장님과의 대화를 들어보아 하니 종종 들르시는 분인 것 같았다. 마침 우리 옆자리에 자리하셔서 곰장어를 주문하시고 앉았는데, “약주는 평소처럼 안 하시죠?” 하더라. 그렇게 떠들썩한 가게 안에서 혼자 1인분을 주문하시고 점잖게 기다리고 계셨다.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조금은 동떨어진 것 같아 자꾸만 시선이 갔는데 낡았지만 깔끔하고 잘 관리된 옷차림이 눈에 띄었다. 주문하신 음식이 나오자 천천히 음미하며 드시고는 우리보다 빨리 자리를 뜨셨다. 조용히 천천히 드셨음에도 그리 조용히 그리고 깔끔히 자리를 비우고 나가시는 모습을 보며 '참 멋있으신 분이다'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어떻게 자주 들르게 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친구들과 늘 함께 오던 노포인데 이제 같이 올 친구들이 상황이 여의치 않은가, 혹은 친구들이 먼저 떠났을 수도 있겠다, 나도 우리도 곧 그런 날이 다가오고 있겠다 등.


 죽마고우들에게 지금의 아내를 처음 소개해주던 날, 그날도 어려서부터 자주 가던 부산의 한 곰장어 집이었다. 방파제 너머로 부산 바다가 넓게 펼쳐진 운치 있는 곳. 지금도 그 날을 자주 회상하며 한잔 두 잔 걸치곤 하는데, 그런 추억과 사연이 있는 분은 아닐까. 그렇게 그 날 나는 그 노신사 덕에 좋은 친구와 좋은 추억 하나를 더 만들었다. 맛있는 곰장어와 함께.


조금 더 나은 월요일을 위해.

안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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