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넷에 산골짜기 펜션 주인이 되었습니다
봄이 왔다 싶으면 어느새 진한 녹음으로 숲이 물드는 뜨거운 여름이 왔다.
과실수들이 익어가는 여름이 오면 제일 먼저 자두 따먹을 생각에 침샘이 아리곤 했다. 직접 나무에서 갓 딴 자두맛은 일품이다. 아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에 있던 두 그루의 자두나무에서 자두를 따서 아이랑 나란히 앉아 남편이 까주는 자두를 날름 받아먹곤 했다. 펜션을 떠나올 때는 마지막으로 자두나무에서 따낸 자두로 청을 담가서 귀한 물건이 아닌 자두청을 소중히 안고 나왔었다.
여름이 오면 장마가 먼저 왔다. 펜션에는 비가 오면 엄지손가락만 한 개구리를(우리는 참존 개구리라 불렀다) 데크 여기저기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살림집은 수영장이 있는 데크에서 3층 높이인데 살림집 창문에도 개구리가 붙어 있는 것을 보고 비를 타고 다닌다는 말이 진짜인가 생각했다.
한창 비가 오는 계절에는 비가 그치고 나면 저 멀리 강가에서 물안개가 차오르곤 했다. 그 모습이 신비스럽기도 하고 축축하기도 했다.
장마가 가고 나면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지만, 펜션의 여름은 조금 달랐다. 아스팔트가 없는 곳이라 그런지 낮에는 쨍쨍 내리쬐지만, 오후 4시가 넘어가면 선선한 바람이 불며 꽤 시원한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럴 때면 밤 산책을 하는 손님들과 가득 차있는 수영장 물에 발을 담그고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마시는 손님들을 위해 분위기 좋은 음악을 내내 틀곤 했다.
옥수수가 맛있는 지역이라 여름이면 농가에 말해서 그날 새벽에 딴 찰옥수수를 가마솥에 쪄서 그날 받았다. 그날 받은 엄청난 양의 옥수수를 식혀서 소분해 옥수수 전용 냉동고에 급랭을 시킨 후 저녁 바비큐 메뉴에 내보내고 지인이나 단골손님이 오면 한아름 안겨 보내곤 했었다.
여름은 산에 온갖 산나물이 풍성한 계절이다. 장에 나가면 산에서 캐논 나물들을 좌판에 널어놓고 하염없이 앉아있는 할머니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그중 나물 때깔이 끌려 살짝 건드리며 "이건 이름이 뭐예요?"라고 한 마디라도 건네면 "산나물이야, 산나물, 데쳐먹고 볶아먹고 무쳐먹으면 둘이 먹다 둘 다 죽어도 몰라. 요만치만 가져가."라며 바로 비닐봉지에 한가득 넣어서 품에 안긴다. 결국 이름 모를 산나물은 그날 저녁 펜션 손님 바비큐 테이블과 우리 집 식탁 위에 올라오게 되곤 했다.
여름의 강은 다슬기를 잡으려는 사람들로 붐비기도 했다. 물이 불어 위험할 때조차 그 자그마한 다슬기를 잡아 주머니에 가득 넣고도 더 잡으려고 욕심을 부리다가 봉변을 당한 사람들도 있었다. 때문에 우린 물론, 손님들에게도 다슬기는 사 먹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다슬기를 잔뜩 넣은 강된장과 다슬기 전은 지금 생각해도 침이 넘어간다.
산골짜기에 위치한 우리 집 주변에는 온갖 곤충이 보이곤 했다. 곤충박사인 지인의 아들이 올 때면 새벽부터 사방팔방을 다니며 곤충을 잡아오곤 했다. 얼굴이 상기되어서 사슴벌레니 장수풍뎅이를 잡아와서는 집에 데려가도 되냐고 묻곤 했었다. 나무스크린을 짜 넣은 펜션 외벽 쪽에서는 가끔씩 동남아에서나 볼법한 작은 도마뱀이 보이기도 했다.
산골짜기에서 살다 보니 절기가 중요했다. 양력 날짜보다 절기라는 게 신기하게 맞아떨어졌다. 아스팔트가 없는 산골짜기에서는 신기하게도 매년 말복 다음 날부터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여름의 끝을 알리는 바람이었다.
그렇게 가을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