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넷에 산골짜기 펜션 주인이 되었습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뜨거웠던 여름이 가고 나면 숲이 알록달록 새 옷을 입었다. 가을이다.
선선한 바람이 살랑 불고 가을 야생화며 코스모스가 산골짜기를 물들인다. 강가에는 억새풀이 바람결에 따라 흔들리며 가을 강도 깊어지고 가을 하늘도 높아진다. 자꾸만 집 밖에 나가고 싶어 아이랑 나뭇가지 한 개씩 집어 들고 바닥을 치며 슬슬 걸어 강가로 놀러 나가곤 했다. 꽃도 보고 흙더미 위에 올라가도 보며 내려간 강가에서는 챙겨 온 포클레인 장난감으로 신나게 땅을 파며 놀곤 했다.
가을이 되면 산골짜기 땅바닥에 여기저기 도토리가 굴러다녔다. 도토리를 주우러 동네 할머니가 굽은 허리를 피지도 못하고 한참을 주워서 커다란 배낭을 가득 채운다. 그렇게 채운 도토리가 너무 무거워 보여 할머니를 모셔다 드리곤 했다. 그러면 할머니는 도토리를 말려서 가루를 내서는 남편을 통해 애기엄마 가져다주라고 도토리가루를 비닐봉지 가득 주셨다. 직접 말려 가루를 낸 정성 가득한 도토리가루로 묵을 쑤면 고소하고 찰진 맛이 일품이었다. 묵을 쑤는 날은 펜션 손님들에게도 참나물이랑 들기름에 무쳐 돌리곤 했다.
낙엽비를 처음 본 날이 잊혀지지 않는다. 낙엽 지는 늦가을에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낙엽이 비처럼 쏟아지는데 마치 예전에 봤던 TV 만화시리즈 빨간 머리 앤이 시작할 때 나왔던 인트로에서처럼 낙엽들이 바닥으로도 떨어지지만 하늘로도 뱅글뱅글 돌면서 솟아오르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집 안에 있다가 쏴 하는 소리에 소나기가 오는 줄 알고 뛰쳐나왔다가 그 모습을 보고 말을 잊고 한참을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가을밤이 되면 숲 여기저기서 기괴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악 악 하는 소리는 고라니의 번식기이거나 고라니가 위협을 느꼈을 때 외치는 소리로 모르고 처음 들으면 비명처럼 들려와 모골이 송연해진다. 그것도 계속 듣다 보니 자연이 내는 소리 중 일부로 받아들여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가을 시골마을에서는 축제가 열린다. 축제를 위해서 나무로 연결해서 윗부분만 짚으로 덮은 옛날 방식의 다리가 마을 사람들의 손으로 만들어 지곤 했다. 시멘트로 만든 다리와 달라 건널 때 출렁거리는 느낌이 조마조마하고도 재미있었다. 달구지 체험도 있었다. 달구지는 원래 소가 끄는 거지만 귀한 소 힘들까봐 트랙터에 달구지를 매달아 타는 체험이었다. 시골 축제면 으레 그렇듯 단골로 나오는 편육이나 전, 떡, 국밥 같은 하는 음식들을 손님들에게 대접하고 마을사람들도 먹었다. 우리도 손님들을 데리고 가서 축제를 즐기곤 했다.
가을에는 먹거리가 풍성하다. 귀한 송이버섯도 그렇지만 송이보다 산더덕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일반 재배 더덕이 아닌 산더덕은 향이 엄청났다. 껍질이 붙어있는 산더덕을 잔뜩 사와 카페에 둘러앉아 껍질을 까면 더덕향이 카페를 들어서자마자 진동을 해서 손님들이 물어보곤 했다. 장어라도 사 와서 산더덕과 함께 그릴에 구워 돌돌 말아먹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인삼과 한우 축제도 열렸다. 한우는 농협에서 좋은 가격으로 늘 먹기 때문에 굳이 축제를 찾아가서 먹지는 않았지만, 축제 구경을 하고 얇은 인삼 꼬다리를 튀겨서 만든 인삼튀김 한 컵씩을 사서 먹으면서 집에 돌아왔다.
그렇게 배부른 가을을 보내다 보면 어느덧 입김이 폴폴 나는 겨울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