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꽃 (펜션사계)

서른넷에 산골짜기 펜션 주인이 되었습니다.

by 소담

겨울이 되면 산골짜기 펜션은 분주해진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겨울이 되면 꽃도 지고 잎도 떨어지고 수영장에 물도 빼서 펜션이 가장 안 예쁠 때라 크리스마스 단장을 해서 조금이라도 예뻐 보이려고 애를 쓰곤 했다. 하지만 그나마도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기 일쑤였다. 거대한 트리는 꺼내놓았는데 틈이 안 나면 지나가는 심심해하는 손님을 붙잡아 트리장식 해보실래요? 라면서 손님의 노동력을 빌리고 맛난 음식으로 보상을 하곤 했다. 변명이라면 트리가 너무 커서..라고 해두겠다. 어쨌든, 커플이든 가족 손님이든 다들 기쁜 마음으로 트리장식을 같이 하곤 했으니 그 또한 손님들에게는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으리라.


겨울이면 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겨울은 나무들이 옷을 홀랑 벗어 황량하기 이를 데가 없었으나 눈이 오면 얘기가 달라졌다. 펑펑 눈이 내리면 사계절을 통틀어 산골짜기 풍경은 가장 임팩트가 있는 그림 같은 풍경이 돼버렸다. 나무마다 눈꽃이 피어있고 온세상이 눈으로 뒤덮인 그곳은 한국의 산골짜기 인지 북해도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깨끗하고 신비로운 풍광을 자랑했다. 비록 펜션에 오는 손님 차들은 쭉쭉 미끄러져서 남편이 호출을 받고 계속 차를 끌러 가느라 바빴지만 말이다.


이렇게 눈이 펑펑 내릴 때면 운전을 조심해서 천천히 해야 한다고 했었다. 눈길에 위험하기도 했지만, 산에 사는 동물들이 먹을 게 없어 먹이를 구하러 내려오기 때문이었다. 고라니며 노루 등 동물들이 갑자기 튀어나와 사고가 생기는 일이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그렇게 무지개다리를 건넌 아이들도 몇 번인가 보았었다.


동물얘기를 하다보니 떠오른다. 실제로 산골짜기 펜션에 이사 온 후 남편이 제일 처음 알려준 유묭한(?) 팁이란 게 멧돼지한테 쫓기면 살아남는 법 같은 것이었다. 진위여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행인지 불행인지 멧돼지를 만나지 못했다), 멧돼지가 쫓아오면 죽을힘을 다해 뛰다가 바위나 절벽 같은 곳 앞에서 갑자기 턴을 하면 멧돼지는 턴을 못해 바위에 헤딩을 하던 절벽에 떨어지던 한다는 믿거나 말거나 식의 이야기였다.




겨울에는 빙어축제가 열렸었다. 아이를 데리고 빙어축제 하는 곳을 가면 대형 비닐하우스가 세워져 있고 그 안에서는 빙어 낚시용품을 팔거나 빌려주고 있었다. 빌린 낚시용품을 가지고 나와 구명이 뚫려있는 얼음판 위에 앉아 있노라면 어쩜 그렇게 우리 얼음구멍만 빼고 빙어들이 찾아가는지 다른 사람들 빙어 잡는 모습만 실컷 보고 꽁꽁 얼어가곤 했었다. 그쯤 되면 아이 핑계를 대며 소득 없는 낚시용품을 정리하고 비닐하우스로 돌아가서 파는 빙어튀김을 사 먹고 조금은 허무하게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가까운 리조트에 눈썰매장과 스키장도 있었지만, 시골 동네다 보니 바닥이 꽁꽁 얼어있는 곳곳에서는 얼음썰매도 탈 수 있었다. 단골소님들이 오면 다 같이 나가서 나무로 만든 얼음썰매에 앉아 얼음을 지치다 보면 어른들도 아이로 돌아가 빨간 볼을 하고 웃으며 신나게 놀곤 했었다. 실컷 놀고 나서 먹는 두부전골에 도토리묵과 모주는 그야말로 기가 막혔다.


아이가 태어나고 치웠지만 그전에는 카페에 난로가 있었다. 겨울이면 난로 위 주전자에는 늘 둥굴레차가 보글보글 끓고 있어서 카페만 들어가면 구수한 둥굴레향이 꽉 차 있었다. 손님들도 주고 우리도 그때만큼은 커피보다 둥굴레차를 더 많이 마셨었다. 난로 위에 둥굴레뿐만 아니라 석쇠를 놓고 떡도 구워 먹고 쥐포도 구워 먹고 김도 구워 먹었었다. 맛있는 난로였다. 방에서 뜨끈한 아랫목에 몸을 지지며 만화책을 보며 난로에서 구운 먹거리와 귤을 까먹으면 행복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내가 살았던 산골짜기 펜션의 봄, 여름, 가을은 싱그러운 자연과 풍족한 먹거리가 있어 좋았고, 눈 오는 겨울에는 향기로운 꽃은 없지만 그걸 능가하는 눈꽃이 있는 설경과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따스한 먹거리들이 있었다. 사계절 모두 아름답고 그 자체로 좋았다.


아마도 나는 그때를 그리워하나보다.





수요일 연재
이전 19화낙엽비 (펜션 사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