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번개

서른넷에 산골짜기 펜션 주인이 되었습니다

by 소담

천둥번개가 무섭게 치고 있는 걸 보니 문득 산골짜기의 천둥번개 치던 밤이 떠오른다.


그 밤에는 밤새도록 폭우와 함께 천둥번개가 쳤었다. 뭔가 보수하느라 예약도 막아놓았던 비수기의 어느 밤이었다.

어차피 예약도 막아놓았겠다. 그동안 머릿속으로 구상만 했던 제일 큰 객실의 리모델링을 위해 한 쪽 벽면 전체를 고흐의 그림을 그리기로 한 날이었다.


지인에게 소개받은 화가는 아직 대학생티를 못 벗은 앳된 아가씨였다. 어느 벽에 어떤 그림을 어떻게 그릴지 상의하고 그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나왔다. 중간에 저녁밥과 간식거리를 가져다주고 그릴만큼 그리고 딸려있는 방에서 자라고 말하고는 살림집에 돌아와 쉬다가 잠이 들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 이미 비가 오기 시작해 잠들 땐 이미 거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차피 예약을 막아놔서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자고 있었다. 새벽녘에 천둥번개가 무섭게 치는 소리에 깼지만 잠결에 이미 자겠지 싶어 그냥 자버렸다.




다음날 아침 거짓말같이 맑은 날씨와 새소리에 기분 좋게 일어나 커피를 내려서 객실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열린 문 뒤에는 퀭한 눈으로 하룻밤새 초췌해진 어린 화가가 울먹거리며 있었다. 놀라서 무슨 일 있었냐고 물으니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다며 원망 섞인 푸념을 했다. 전화하지 그랬냐고 말하니 잘 것 같아 못하고 밤새 무서움에 떨었다고 울먹거렸다. 애도 아닌데 뭐가 무섭다고 그러나 생각을 하다 문득 처음 산골짜기로 이사 왔을 때가 떠올랐다.


이미 30이 넘은 나이였지만, 처음 한동안은 대낮에도 그 큰 곳에 혼자 있으면 무서워서 남편에게 빨리 들어오라고 전화를 했었다. 하물며 밤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그 어린 친구에게 천둥번개에 폭우 치는 산골짜기 낯선 집의 밤을 혼자 견뎌내라고 했으니 얼마나 무서웠을까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어찌 되었든 무서워서 밤을 꼴딱 새운 덕분에 벽화는 거진 완성이 되었었고 마지막 작업만 남겨둔 상태였다. 아침식사를 하고 몇 시간 되지 않아 다 끝낸 어린 화가는 나중에라도 리터치가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했지만 우린 둘 다 알고 있었다. 나도 연락을 안 할 테고 그도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을.


세월이 지나 그 객실의 다락을 트게 되며 벽화는 나무계단에 일부분 가려졌지만 그럼에도 그 객실을 들어갈 때마다 제일 먼저 보이는 고흐의 그림은 어린 화가의 울먹이던 얼굴로 오버랩이 되어 짠하고 미안했던 마음이 함께 떠올랐었다.


어쨌든, 덕분에 그 객실은 좀 더 최선을 다해 예쁘게 리모델링을 해서 결과적으로 손님들은 좋아했다.


지금도 천둥번개 치는 밤이면 가끔 그 어린 화가와 고흐의 그림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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