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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씽크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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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산 Jul 23. 2019

잠 못 드는 밤《조PD의 비틀즈 라디오》


 입시 준비를 하던 언니는 매일 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엄마와 아빠는 일을 핑계로 얼굴을 마주하기가 힘들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었지만 집에 홀로 남겨지는 건 나에게 너무 두려운 일이었다. 텅 빈 집에 남겨져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나는 라디오를 즐겨 들었다. 웃음과 눈물이 담긴 사연을 듣다 보면 내 외로움은 금방 잊혔다.


 DJ가 주는 상품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어린 나에게는 남의 행운도 내 영웅담이 될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라디오는 내게 많은 상상을 하게 만들어 즐겁게 했다.


 다양한 음악을 듣기에 라디오 만한 것도 없었다. 우리나라 댄스곡과 전혀 다른 맛이 느껴지는 비틀스의 노래. 고급스러운 음색에 외국어 노래는 뜻은 모르지만 마음이 간질거렸다. 텅 빈 집에 부드러운 멜로디로 가득 메워질 때, 집은 더 이상 외로운 공간이 아니었다.   


 “예스터데이~오마트 러블 심소 팔 어웨이~나나나나나~나나나나~오 예스터데이~”


 어른이 된 내가 가사를 보지 않고 블라블라 팝송을 부르는 날을 꿈 꿨다. 와인잔을 들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yesterday’를 흥얼거리는 내 모습은 정말 근사했다. 당시 초등학생 여자아이들의 우상 세일러문을 보는 것보다 라디오 속 나만의 세상에 빠져있는 게 좋았다. 


 어른이 된 나는 밤새 회식을 하고, 눈치를 보며 택시를 잡고 튀기 바빴다. 와인잔을 기울이는 건 전혀 근사하지 않았고 라디오를 들을 여유도 없었다. 택시 창밖 도시의 불빛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어디선가 익숙한 노래가 들려왔다. 


“ Yesterday


All my troubles seemed so far away


Now it looks as though they're here to stay


Oh, I believe in yesterday


Suddenly


I'm not half the man I used to be


There's a shadow hanging over me ~ “


 잠이 오지 않는 할아버지, 회식 후 텅 빈 집을 향해가는 노총각, 시도 때도 없이 깨는 아이를 재우기 성공한 엄마, 미래가 예측되지 않는 청춘까지 늦은 시각 라디오 속 비틀즈는 여전히 외로운 누군가를 위로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엔 너무 늦은 시간. 잠 못 이루고 있다면 라디오를 켜라. 《조PD의 비틀즈 라디오》가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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