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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결 Jun 02. 2021

아무리 좋아도,

매일 글쓰기

아기 고양이 용이가 우리 집에 오고 난 후, 나는 계속 정신이 없었다. 익숙해져 체계가 잡히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사람이라 아직도 허둥지둥한다. 용이가 가냘픈 목소리로 '야~옹'이라 하기만 하면 하던 걸 멈추고 용이에게 갔다. 용이는 내가 '용아~' 부르면 그 소리를 멈췄다. 그 목소리로 나를 찾는 것 같았다. 부를 때마다 달려갔으므로 당연히 나만의 시간은 없어졌다.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도 짧았다. 기록이 잘 되지 않아 뭔가 자꾸 빠진 시원찮은 느낌이 하루를 지배했다.

                                          

사람 아들 둘을 키울 때도 나는 늘 허둥지둥했었다. 첫째, 둘째 둘 다 낳아만 놓고 3개월 후 바로 복직한 터라 아이와 온전히 교감할 수 없었다. 그 중간에 항상 시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결혼하고 5년 동안 시댁에서 살았고 아이들의 주 양육자는 어머니였다. 첫째를 키울 때 어머니가 헷갈려서 자신을 '엄마'라고 칭한 적이 있었는데 그 순간 뭔가 알 수 없는 상실감도 들었더랬다. 벌써 11년이 넘은 이야기지만 아직도 잊히지 않고 또렷이 기억난다. 일을 해서 몸도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 많이 피곤했던 날들이었다.


사람 아들 둘은 그렇게 키웠지만 고양이 아들의 주 보호자는 '나'이므로 내 뜻대로 균형 있게 키우고 싶다. 그러려면 내가 먼저 단단해야 하는데, 용이를 대하는 모습에서 내 사람 아들들에게 쩔쩔매던 내 모습을 본다.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그만큼 안쓰럽고 걱정되고 불안한 마음. 아마 용이에게 투시된 내 마음이겠지. 용이가 그런 게 아니라 내가 불안정한 상태.


그래서 흔들흔들하는 마음으로 끌려가기 전에 마음을 붙잡으려고 노력한다. 스스로 내 시간을 지키기 위해 나름의 규칙을 정했다.


1. 자는 모습이 너무 이뻐도 바로 안지 않는다.

  내 무릎 위에서 그르렁그르렁 하면서 자는 모습이 너무 이뻐서 자꾸 안고 있고 싶었다. 행동이 제약이 되니, 내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서 용이가 자면 혼자 자게 내버려 두고 안기길 원하면 안아주자로 마음을 바꿨다. 표현하는 마음을 아껴주는 셈이다.


2. 용이의 울음소리에 마음이 약해지지 않게 노력한다.

   들어줄 수 있는 요구만 들어준다. 바로 쫓아가지 않는다.


3. 시간제한을 두고 용이와 놀아준다.

 자꾸 따라다니는 용이를 그냥 둘 수 없어 놀고 싶어 하면 그 앞에 멍하니 앉아서 놀아줬는데, 놀 땐 확실히 놀아주고 내 시간을 가질 땐 내 시간을 가진다.


4. 용이가 자는 시간엔 내 일에 집중한다.


고양이를 두고 이렇게 생각이 복잡해지는 게 좀 우습지만, 아이를 키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들은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던데 용이는 개냥인 듯. 사람을 너무 좋아한다. 그래도 마음을 표현하는 게 고맙다. 나의 애정결핍 증상은 용이로 인해 좀 더 치유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용이를 키우는 것이 좋은 날만 있지는 않겠지만, 마음을 단단히 가져 용이와 나 둘 다 만족하는 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자는게 젤 이뻐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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