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한테 무언가를 받는 것이 나는 왜 이렇게 편하지 못할까? 나이 40이면 이젠 엄마한테 뭘 해 드려야 하는데 매번 받기만 하는 게 미안한, 그런 마음뿐일까? 아이들 추석빔을 사준다고 같이 백화점에 갔을 때도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그런데 단지 그 마음 편치 않음이 미안한 마음만은 아닌듯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엄마가 편하지 않은 걸까?
엄마와 나, 1 대 1로 무언가를 한 기억이 별로 없다. 아니 아예 없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두 분의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고, 아빠 밑에 줄줄이 삼촌 셋의 대학 학비를 대셨다. 내 밑으론 동생이 둘이나 더 있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의 삶은 개인의 생활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온순하고 남의 사랑을 갈망하는 아이였으므로 나의 어릴 적은 순종 그 자체였다. 고집이 쎄 떼를 쓰고 우는 여동생을 보며 '왜 저러지?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야단 안 맞을 텐데'라고 생각했던 내가 아직도 생생하다. 당연히 엄마에게도 할머니에게도 나는 야단맞은 기억이 없다. 대신 잘하고 싶었다. 엄마의 자랑이고 싶었다. 그래서 애쓰고 실망하고 울적해하던 어릴 적의 나를 자주 본다.
얼마 전 엄마 집에서 예전에 내가 썼던 편지들을 보는데, 엄마한테 어버이날이라고 쓴 편지에는 꼭 빠지지 않는 말이 있었다. '.. 해서 죄송하다. 더 잘하지 못해서 죄송하다. ' 그때도 나는 엄마에게 미안한 감정을 품은, 그런 아이였다. 그랬구나. 어릴 때부터 키워온 미안함.
그 기억을 떠올리니 지금의 미안함과 뭔가 연결이 된 듯한 느낌이 든다. 엄마와 나의 관계에 어떤 잣대를 대고 있는 거다. 어릴 때는 엄마의 자랑이고 싶은데, 그만큼 하지 못하는 내 존재에 대한 미안함. 지금은 좀 더 성공해 부자가 되어 엄마에게 좋은 것 해드리고 싶은데 해 주지 못하는 내 존재에 대한 미안함. 그런 딸이 되지 못하는 미안함.. 아,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같은 의미로 엄마에게 미안해하고 있구나.
어릴 때 쓴 편지를 보며 웃었었는데, 뭘 그렇게 미안해했냐고. 안 그래도 됐었는데, 충분히 너는 사랑스러운 딸인데 왜 그렇게 스스로 주눅 들어 살았냐고, 어릴 적 나에게 그렇게 얘기해줬는데. 나는 아직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구나.
엄마가 내게 바라는 것은, 돈을 많이 벌어 엄마에게 좋은 것 사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자책하는 딸보다, 지금을 감사히 여기며 행복하게 사는 딸일 텐데. 혼자 삐뚤어진 생각으로 힘들어하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뻐하는 딸일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