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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결 Sep 25. 2020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매일글쓰기 D-25  with conceptzine

엄마한테 무언가를 받는 것이 나는 왜 이렇게 편하지 못할까? 나이 40이면 이젠 엄마한테 뭘 해 드려야 하는데 매번 받기만 하는 게 미안한, 그런 마음뿐일까? 아이들 추석빔을 사준다고 같이 백화점에 갔을 때도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그런데 단지 그 마음 편치 않음이 미안한 마음만은 아닌듯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엄마가 편하지 않은 걸까?


엄마와 나, 1 대 1로 무언가를 한 기억이 별로 없다. 아니 아예 없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두 분의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고, 아빠 밑에 줄줄이 삼촌 셋의 대학 학비를 대셨다. 내 밑으론 동생이 둘이나 더 있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의 삶은 개인의 생활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온순하고 남의 사랑을 갈망하는 아이였으므로 나의 어릴 적은 순종 그 자체였다. 고집이 쎄 떼를 쓰고 우는 여동생을 보며 '왜 저러지?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야단 안 맞을 텐데'라고 생각했던 내가 아직도 생생하다. 당연히 엄마에게도 할머니에게도 나는 야단맞은 기억이 없다. 대신 잘하고 싶었다. 엄마의 자랑이고 싶었다. 그래서 애쓰고 실망하고 울적해하던 어릴 적의 나를 자주 본다.


얼마 전 엄마 집에서 예전에 내가 썼던 편지들을 보는데, 엄마한테 어버이날이라고 쓴 편지에는 꼭 빠지지 않는 말이 있었다. '.. 해서 죄송하다. 더 잘하지 못해서 죄송하다. ' 그때도 나는 엄마에게 미안한 감정을 품은, 그런 아이였다. 그랬구나. 어릴 때부터 키워온 미안함.


그 기억을 떠올리니 지금의 미안함과 뭔가 연결이 된 듯한 느낌이 든다. 엄마와 나의 관계에 어떤 잣대를 대고 있는 거다. 어릴 때는 엄마의 자랑이고 싶은데, 그만큼 하지 못하는 내 존재에 대한 미안함. 지금은 좀 더 성공해 부자가 되어 엄마에게 좋은 것 해드리고 싶은데 해 주지 못하는 내 존재에 대한 미안함. 그런 딸이 되지 못하는 미안함.. 아,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같은 의미로 엄마에게 미안해하고 있구나.


어릴 때 쓴 편지를 보며 웃었었는데, 뭘 그렇게 미안해했냐고. 안 그래도 됐었는데, 충분히 너는 사랑스러운 딸인데 왜 그렇게 스스로 주눅 들어 살았냐고, 어릴 적 나에게 그렇게 얘기해줬는데. 나는 아직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구나.


엄마가 내게 바라는 것은, 돈을 많이 벌어 엄마에게 좋은 것 사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자책하는 딸보다, 지금을 감사히 여기며 행복하게 사는 딸일 텐데. 혼자 삐뚤어진 생각으로 힘들어하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뻐하는 딸일 텐데.


지금의 나.

그대로도 괜찮지?

애쓰지 않아도 되지?

그래도 괜찮아. 이미 사랑스럽고 대견해.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단다.



엄마가 이렇게 이야기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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