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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결 Oct 03. 2020

신랑 하고도 경쟁을 하다니

매일 글쓰기 D-33   with conceptzine

추석 때 제부가 애들 만들기 시키자며 글라이더를 사 왔었다. 시간이 없어서 만들지 못하고 집으로 가져왔는데, 오늘 만들어서 공원 가서 날리면 딱 좋을 것 같았다. 글라이더 만들기 하자! 하니 모두가 좋단다. 그렇게 4명이서 팀을 짜 두 개의 글라이더를 만들기 시작했다.


원래 아이들의 선물이었으므로 아이들이 만들게 도와주고 싶었다. 특히 첫째는 4학년이니 스스로 만들어 볼 때가 되었다 생각했다. 내가 옆에서 살짝만 도와줘야지 생각하며 신랑에게 둘째를 맡아달라 하니, 자기가 첫째를 맡겠단다.


신랑과 나는 둘 다 이과 출신으로 만들기에 어느 정도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글라이더는 둘 다 대회 나가 상을 받은 분야다. 신랑은 자신이 잘하는 걸 첫째에게 보여주고 싶었는지 매우 상세한 만들기 팁을 설명하면서 만들기 시작했다.


미심쩍은 마음으로 첫째를 양보한 나는 그 옆에서 둘째와 엉거주춤 시작했는데, 신랑은 뭐도 필요하고 뭐도 필요하다면서 이것도 들고 오라, 저것도 들고 오라 기세 등등했다. 아주 오래전 일인데도 만드는 요령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게 신기했다. 그에 반해 하나도 기억이 안 나 어리바리하던 나는 주눅이 들었다.


그래도 설계도가 있으니 기억을 더듬어 천천히 만들기 시작했다. 1학년인 둘째도 참여시켜야 하고 설계서도 봐야 하니 정신이 없었다. 그 와중에 신랑은 첫째와 무난하게 진도를 나가고 있었다. 아빠보다 느린 엄마가 답답했던지 둘째가 '엄마 아빠가 이건 이렇게 해야 된대'라며 아빠팀에 만들기를 커닝해왔다.


그런데 둘째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슬슬 자존심이 상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신랑이 어리바리하는 나를 보고, 아니 대회에서 상 받은 실력이 맞는가? 이거 영 허술한데, 라며 놀리니 스스로가 경쟁 모드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미 애들은 자기들끼리 놀기 시작했고 신랑과 둘이서 초 집중 모드로 만들기를 하고 있었다.


처음 시작할 때 신랑은 꼬리 날개부터 만들고 본 날개를 만들었고 나는 본 날개를 먼저 만들기 시작했다. 본 날개가 각도도 잡아야 하고 일이 많이 때문에 느릴 수밖에 없는데도 마음이 조급해졌다. 설계도대로 안되고 자꾸 뭔가를 빼먹기도 했다. 조급함으로 인한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순간 내가 너무 신랑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엇?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신랑한테 꼭 이길 필요 없잖아. 그냥 즐겁자고 시작한 일을 죽자고 덤벼들고 있네. 대충대충 하자. 그냥 나만의 비행기를 만들면 되잖아. 비교하지 말자. '


그런 생각이 드니 마음이 편해졌다. 만들기가 더 잘되고 속도도 붙었다. 끼우고 붙이고 하는 건 신랑이 더 유리했지만 날개 종이를 붙이는 데는 내가 더 유리했다. 내 비행기가 종이가 더 반듯하게 붙여지니, 아 잘하네? 왕년에 상 받은 실력이 맞네 하며 급 수습하는 신랑. 이번 대결은 아이들이 즐겁게 가지고 놀았으니 비긴 걸로!



다 만들고 공원으로 가는데, 와 신랑을 대상으로 이런 경쟁의식이 생기다니 무서웠다. 신랑과 같은 직업을 가지지 않은 걸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계속 이기려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매번 노력해야 했을 테니.


'비교하지 말자, 그저 나 자신으로 살자.' 이게 정말 어려운 일이란 걸 오늘 다시 한번 깨달았다.

다시 또 그런 상황이 되면 깊은 심호흡 한 번으로 빨리 알아채길. 그리고 평온을 되찾길. 나 자신에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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