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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결 Oct 07. 2020

엄마, 우리 엄마

매일글쓰기 D-37  with conceptzine

공직생활 40년 여 년, 퇴직한 지 이제 1년 남짓된 엄마는 엄마가 원하는 곳에 터를 잡아 전원주택을 짓고 아빠와 단둘이 살고 있다.


연금만으로도 그럭저럭 삶을 꾸려갈 수 있는 엄마는, 밖에서 보기엔 별 걱정이 없는 편안한 삶만이 남아 있는 듯 보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편안하게 사실 거라 생각했다.




요즘 하도 오라는 말씀을 많이 하셔서 오늘 엄마 집에 왔다. 저녁을 먹고 아이들은 할머니 집만 오면 허용되는 무한 티브이 보기 혜택을 누리고 있고, 그 틈에 엄마, 아빠, 나, 여동생은 동네 마실 타임을 누렸다.


동네 어귀에 아빠가 잘 가는 단골 카페가  있어 차나 한잔 마시자고  갔는데 얘길 하다 보니 또 엄마 아빠의 부부 클리닉이 됐다.


시어머니 모시고 살랴, 직장 다니랴, 우리들 돌보랴 정신없이 살아온 세월 탓에 엄마는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나 보다.


아빠와 싸우게 되는  지점을 얘기하다가 엄마 안의 어린아이를 봤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엄마의 결핍들이 아빠와 충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올라오는 길에 어쩌다 엄마와 단둘이 걸었는데 어릴 적 돈이 없어 학교에 가지 못했던 기억, 시집와서 서러웠던 기억들이 나를 이렇게 만든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지금 충분히 아름다운 것에 둘러싸여 행복해야 하는데  기분이 괜찮을 땐 다 이해가 되다가도 조금만 엄마의 어떤 부분을 건드리는 얘기가 나와서 기분이 안 좋아지면 모든 상황이 증폭되어 힘들어진다고.


그러니까 너희들도(나, 여동생) 엄마를 앞에서 너무 타박하지 말라, 그런 행동이 보이면 나중에 나한테 살짝 말해달라 부탁하셨다.



엄마 안의 어린아이를 다독여줄 방법이 뭐가 있을까 한번 생각을 해봐야겠다. 내가 도움받은 심리학 책이 뭐가 있었는지도 한번 더듬어봐야지.


엄마가 지금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봐야겠다. 그리고 엄마 앞에서 농담이라도 엄말 무안하게 하는 행동은 정말 조심해야지.



이쁜 저녁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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