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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결 Mar 19. 2021

내게 필요했던 건 작은 토닥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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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생신이었다. 코로나 감염에 민감한 곳에 일하셔서 저녁을 우리 집에서 드시기로 했다. 회가 드시고 싶다는 어머니의 의사를 반영해서 메뉴는 회.


오랜만에 먹는 거라 어머니께 맛있는 고기를 대접하고 싶었다. 가까운 곳에도 횟집이 있었지만 어시장까지 가서 회를 사 오느라, 혼자만의 시간인 오전을 다 보내버리고, 나름 애썼다며 뿌듯해했다. 회도 준비 두었고, 미역국도 끓였고. 됐다, 싶었다.


신랑이 조금 일찍 퇴근해서 왔다. 멀리서 회를 사 왔으니 수고했다며, 자신이 거들 건 없냐고 물었다. 나중에 설거지를 하라고 하고 좀 쉬라 했다.


예전에 집에 회를 사 와서 먹었을 땐 그 횟집에서 야채까지 다 준비해줘서, 회 외에 다른 걸 준비해야 한다는 걸 생각을 못했다. 어머니가 오시고, 회를 꺼내는데, 신랑이 '어? 회가 양이 왜 이래 작냐?' 했다. 기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된장과 초장 등의 양념을 꺼내는데, 횟집에서 챙겨준 것에 간장은 없었다. 신랑이 양념을 샀는데도 간장도 안 챙겨주냐며 툴툴거렸다.


용기에 일렬로 정갈하게 담겨 있던 회를 접시에 담는 과정에서 신랑이 막 담아 회가 그냥 수북이 쌓인 꼴이 됐다. 상에 올려진 회가 너무 초라해 보였다. 부수적인 것들도 좀 신경 써야 했었나? 너무 내가 신경을 안 쓴 건가? 하는 자책이 시작되었다. 정작 어머니는 회가 고소하게 맛있다며 잘 드시는데, 괜히 내가 죄송했다.


회를 먹던 둘째가 '엄마 가시 있어'했다. 신랑도 하나를 발견했다. ' 이 횟집 안 되겠다. 전화해서 따져야겠는데?' 했다. 회에 가시가 나오는 건 기본이 안되어 있는 거라고. 어머니도 가시가 있을 수도 있다, 말씀하셨고, 나도 지금 전화해서 뭐하겠냐고 그러지 마라 하며 웃으며 넘겼지만 마음은 더 쳐졌다. 꼭 모든 게 내가 잘못한 거 같았다.


어머니가 가시고, 신랑은 운동하러 가고, 아이들을 혼자서 챙기고 재우는데 기분이 자꾸 가라앉았다. 뭔가 자꾸 내가 잘못한 느낌. 내가 부정당한 느낌.


10년 넘게 같이 산 신랑이라 신랑이 나를 탓한 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머리는 알고 있었지만 내 정성 자체를 부정당한 거 같은 기분은 쉬이 나아지지 않았다. 그게 아니라고 외쳐도 이미 마음은 상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화살은 신랑에게 가고 있었다.


'에고 내가 왜 저런 눈치 없고 무신경한 남자를 만나 가지고. 그냥 넘기면 될 일을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부터 시작해서 신랑의 단점들을 캐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 편안하게 잠도 들지 않았다.


신랑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고, 신랑에게 갔다. 무턱대고 얘기했다간 싸움이 난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말 없이 신랑 옆에 누웠다. 그리고 '나 오늘 조금 속상했어. 내가 열심히 검색해서 알아본 횟집에서 사 온 회에 대해서 안 좋다고 얘기해서'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 남자는 ' 내가 멀리까지 갔다 온 거 수고했다고 얘기했고, 회에 대해서는 팩트만 얘기한 거다'라고 대답했다.


뭐,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하지만 마음은 또 상했다. 대답을 안 했다.


나는 이 남자에게 어떤 대답을 듣고 싶었던 걸까?


갑자기 엄마를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나를 챙기지 않던 엄마에게 너무 서운해 펑펑 울었던 꿈이 생각이 났다. 그래, 나는 그냥 등을 토닥여주며 '수고했다.. 잘했다.. 고맙다.. ' 이 말을 듣고 싶었던 거다. 모든 일이 끝난 후에.


그래서 신랑에게 "나 등 두드리면서 '잘했다, 수고했다, 고맙다' 해줘"라고 말했다.

신랑이 내 등을 두드리면서 '잘했다.. 수고했다.. 고맙다'라고 하는데, 요청해서 들은 말이라도 그 말을 들으니 조금 마음이 가라앉았다. 셀프 위로.


내가 원했던 건 그런 작은 토닥임이었고, 내가 노력했다는 걸 알아주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걸 억지로라도 얻어냈다. 신랑도 알까? 이런 나의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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