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 자브신 호조마귀 2/3

호조마귀를 눌러라

by 소피

# 호조마귀를 눌러라


이곳이 태초부터 습하고 그늘이 많은 지역이었다고는 하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이곳에 처음으로 움막을 짓고 정착했던 인간부터 그토록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슬퍼하다 비참하게 인생을 마감하더라니… 결국 음산동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떠돌던 인간들의 마지막 정착지가 되었고 그런 인간들 각자의 사연에 얽힌 잡귀가 주인인 땅이 되고 말았다.


호조마귀 사태로 음산동 신령들이 모두 모였다. 심각한 상황임을 인지하고 모인 자리였지만 각자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와 서러움을 쏟아내느라 바빴다. 다른 지역의 신령들처럼 매년 향냄새도 좀 맡으면서 제대로 대우받고 싶었을 텐데, 신령들도 오랜 세월 동안 많이 답답했을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동지들이 반가우면서도 서로 딱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는지 몇몇 신령은 울컥하며 뛰쳐나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정리되자 신령들은 진지하게 다시 자리를 잡았다. 비록 잡귀들에게도 무시당하고 인간의 마음도 품지 못하는 무능한 신령들이지만 지금의 상황은 평소처럼 잡귀들이 알아서 해결하도록 방치하는 우유부단한 판단을 할 수 없었다. 각자 지난 세월의 모든 과오는 잊고 반드시 응징해야 할… 음산동 신령, 더 나아가 한국 귀신의 자존심을 걸고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심각한 문제였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이야기에 진전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호조마귀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던 변종 잡귀가 나타났으니 일반 잡귀처럼 때려잡을 수도 없고, 소문을 듣자 하니 이 잡귀가 확실히 일반 잡귀는 아니었다. 신령들이 공통으로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일본에서 건너왔고, 호조마귀라는 이름을 쓰지만 주로 자브신(JAV 神)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는 이미 알려진 사실 뿐이었다.


긴 침묵의 시간이 흐르자 답답했던 음산본향산신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집중의 박수를 요구했다.


집중의 박수를 짝! 짝! 짝!


"신령님들… 고민하실 시간도 충분히 드렸다고 생각하고 모셨는데, 이게 지금 뭡니까? 다들 뭐든 좀 말씀을 해보시지요."


이 때, 손을 들고 나선 신령이 있었으니, 음산동의 물(水)의 신령 '음산아리수신'이었다. 그는 시선을 고정하지 못하고 허벅지를 긁적거리며 매우 조심스럽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허어… 이것이 참… 말씀드리기도 참 뭣한… "

"오! 아리수신 님, 뭣한 내용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이 상황에 무엇이든 방법을 찾아봐야겠지요. 뭐든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그러면 한 번 들어봐 주시겠습니까? "


"제가 음산동의 물을 담당하고 있지요."

"그렇지요."

"그런데… 그 물이라는 것이 참 범위가 방대합니다."

"호조마귀 대책 회의에서 갑자기 웬 물 타령이오?"

다들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음산아리수신을 바라보았다.


"이 호조마귀라는 잡귀년이… 거친 표현 죄송합니다."

"놈이든 년이든 저희가 이해해드려야지요. 어허허"


"아무튼 그 잡귀년이 일본에서 건너오지 않았습니까?"

"그렇지요."

"하아… 어헛험… 이게 참 말하기도 그렇고… 말 안 하기도 그렇고… "

"그냥 물 타령이 아니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무엇이든 말해보시게!"


"네. 알겠습니다. 본향산신님. 그럼 용기 내어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맙소. 아리수신님."


"사실 물이라는 것이 범위가 참 광범위합니다. 주로 강과 바다, 비와 눈처럼 자연 속에서 발생하는 물에 대해 관여를 하고 있습니다만, 인간의 몸도 자연의 한 부분입니다."


"시간도 없으니 말 돌리지 말고 직관적으로 말씀하시게!"


본향산신이 단호하게 소리치자, 아리수신은 음산아리수신은 삼다수 한 통을 벌컥벌컥 한꺼번에 마시며 긴 이야기를 시작할 준비를 했다.


"신령님들. 죄송합니다. 조금 떨리네요. 제가 이 자리를 빌려 처음으로 말씀드리는 것 같습니다. 저, 아리수신. 사실 그동안 너무 살기 어려워 부업 겸 서브 잡으로 평소 다루지 않던 특별한 물에 대해서도 관여하고 있었습니다."


"아리수신, 그게 무슨 소린가?"


"아주 특별한 물입니다. 저는 여성의 물에도 관여하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모든 신령이 아리수신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그것은… 여성의 물이라 함은…?"


"네, 맞습니다. 여성의 물입니다. 여성의 눈물이나 소변, 여성의 몸을 씻은 물 같은 경우는 전국 무당들도 다루는 흔한 물이지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음산동 이곳은, 각자 다양한 사연으로 이별하거나 서방이 죽어 홀로 남겨진 쓸쓸한 여성이 많습니다. 그런 여성들에게 물의 신인 저, 아리수신도 모르고 있던 물이 있었습니다. 음산동 여성들의 고귀한 그곳의 메마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음산동 땅에 그 물이 적절한 여성은 없었습니다. 메마른 여성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밤낮 구분도 없이 하루종일 젖고 흐르는 물이 있었습니다."


지금 아리수신이 하는 이야기가 호조마귀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워낙 충격적인 상황이라 모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침만 꿀꺽 삼키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한 여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알고 있는 음산동 주민인가?"


아리수신은 대답 대신 오히려 신령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신령님들. ㅇㅈㄴ를 아십니까?"

"ㅇㅈㄴ??"


"네, ㅇㅈㄴ 말씀입니다."

"ㅇㅈㄴ라면… 보자보자… 설마!!!"


"생각하시는 그 ㅇㅈㄴ가 맞을 겁니다."

"그렇다면 정말 원정녀를 말씀하시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바로 그 원정녀 말입니다."


ㅇㅈㄴ라는 말에 한번 놀라고, ㅇㅈㄴ를 원정녀라고 바로 알아맞히는 자신들에게 한번 더 놀라게 된 신령들은 서로 쑥스러워하며 얼굴이 붉어지거나 쓸데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리수신은 잠시 숨을 고르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혹시 수많은 원정녀 중에 가장 물이 많았던 원정녀를 기억하십니까?"

"가장 예뻤던 것은 18호였지만… 아… 물이 많았던 원정녀라면 나도 잘 모르겠네…"


본향산신이 대답하자, 나머지 신령들은 본향산신을 다시 봤다는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본향산신 님이 원정녀를 어찌 이렇게 잘 아십니까? "

"어험… 지금 그게 중요한가. 자네들도 이미 알고 있는 원정녀인 것을!"


본향산신이 먼저 선빵을 날려서인지 불편한 구석이 있던 분위기는 한순간에 편안해졌다.


"가장 물이 많았던 원정녀는 29호였습니다."


"그렇지! 아… 그랬었나? 그랬던 것 같군…"

"아!! 그렇지요. 29호가 물이 참 많았지요. 아…. 이런… 엇험…"


"29호 원정녀가 음산동에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르셨겠지요."


"이게 무슨!? 원정녀들은 모두 일본에 정착한 줄 알았더니!!"

"예쁘고 착하고 물 많던 29호가 음산동이라니! 자네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29호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아니! 아리수신, 어떻게 혼자만… 아…"


아리수신은 원정녀 29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풀어놓았다.


어릴 때부터 늘 물이 넘쳐흘렀고, 그 물 속을 헤엄치려고 모여드는 송사리, 붕어, 잉어부터 갈치, 고등어, 고래 같았던 남자들. 그러나 늘 외로웠던 29호가 일본으로 원정을 떠나게 된 이야기.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갑작스러운 메마름…


아리수신의 이야기에 푹 빠져든 신령들은 호조마귀 따위는 이미 잊었는지, 어릴 때 보았던 29호의 모습을 다시 떠올리며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004 자브신 호조마귀 3/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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