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사람
사실 그녀는 동네 사람 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다. 나처럼 버스 놓쳐가며 그녀를 기다리는 사람이 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아주 유명하다. 버스정류장에 그녀가 나타나면 모두 그녀에 관해 이야기한다.
내 눈에 그녀가 보이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이야기도 시작된다.
왔네. 왔네.
미친년이 왔네.
아이고. 젊은 나이에 어쩌다가.
미친년이 어쩌고저쩌고 어쩌고저쩌고.
아침부터 비옷을 쳐 입고 지랄 어쩌고저쩌고.
그렇다.
그녀는 동네에서
미친년으로 유명하다.
사람들은 그녀를 미친년이라 부른다.
주로 동네 어르신들이 그렇게 부르는데 나이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는 약간 귀여우면서도 나름 순화시킨 별명이 있는 모양이다. 학생들은 그녀를 이렇게 부르더라.
광년.
노랑우비광년.
안타깝게도 이렇든 저렇든 똑같은 것 같다.
사람들 눈에 보이는 그녀는 결국 미친년이니까.
나는 매일 아침 그 미친년을 기다리고 있다. 그녀가 미쳤는지 정상인지 아직 판단할 수 없지만, 우리 동네에서 적어도 버스정류장에서는 나 하나만이라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매일 그녀를 기다리고, 반가워하고, 볼 수 없는 날은 그리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 외에 그녀에 대한 다른 정보는 없다.
매일 아침 7시 정도에 내 앞에 나타나고
늘 노란색 우비를 입고 달리는데
맑은 날 우비를 입지만
비 오는 날에는 달리지 않는 이상한 사람.
나이는 이십 대 중반으로 보인다. 달리기의 출발점은 그녀의 집으로 예상되는데 버스정류장 앞에서 늘 거친 숨을 내쉬는 것으로 봐서 그녀의 집은 여기서 제법 멀리에 있을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그냥 원래 숨소리가 거친 소녀일 것으로 상상을 마무리해 본다.
그녀는
왜
우리 동네에서
유명한
미친년이 되었을까?
아… 나는 그렇게 부르지 않기로 했지.
내가 부르기로 한 그녀의 이름은.
우비소녀.
오늘도 달린다! 내 사랑 우비소녀!
그녀가 유명해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금이 6월 초여름, 이제 3개월 정도 지난 것 같다. 겨울이 끝나고 벚꽃이 필 무렵부터 나타난 미친년이니까.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자꾸 미친년이라고 그러네.
아무튼 봄과 함께 나타나 무작정 달리는 우비소녀에게 관심이 생겼고, 언젠가 말을 한번 걸어보고 싶은데, 타이밍이 참 좋지 않다. 나는 버스를 타야 하고, 그녀는 내가 지각하지 않을 수 있는 마지막 버스와 거의 비슷한 시간에 나타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조금만 더 빨리 지나가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미친년처럼 달리던 사람 붙잡고 세워놓고 “죄송하지만, 내일부터 10분만 일찍 달려가면 안 됩니까?”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녀를 처음 만났던 날이 생각난다. 봄이 왔고 하늘은 너무나 맑았고 아침 기온이 많이 올라서 약간 덥게 느껴지던 날이었다. 노란 우비를 입은 사람이 내 앞을 미친 듯이 헉헉거리며 지나쳐 갔는데 내 기준에서 워낙 비정상적인 장면이라서 잠시 당황했으나 짧게 스쳐 지나간 우비 속으로 아주 짧은 시간, 그녀의 눈을 보았다.
초롱초롱 예쁜 눈.
반했다. 첫눈에 반했다.
처음 봤던 그녀의 눈동자를 잊을 수 없다.
그녀가 머리에 꽃이라도 꽂고 달렸다면 나도 그냥 미친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내 눈에는 아주 낮게 날거나 사람 모양의 유에프오 같기도 했다. 그만큼 특별하고 소중한 장면이었다. 그렇게 그녀가 지나가고 작은 점이 되어 사거리 모퉁이를 돌아 사라질 때까지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뒷모습은 야쿠르트 아줌마 같기도 했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기도 했는데, 시장 앞에서 떠먹는 야쿠르트를 사러 온 손님과 수다를 떨다가 한눈파는 사이에 갑자기 내리막을 굴러 내려가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야쿠르트 배달차를 잡으러 허둥지둥 뛰어가는 야쿠르트 아줌마. 너무 예쁜 눈을 가진 허둥지둥 귀여운 야쿠르트 아줌마.
점점 빨리 굴러가던 브레이크 고장 난 야쿠르트 배달차가 과속방지턱을 만나 크게 점프를 했다가 떨어지고, 그 충격에 담겨 있던 야쿠르트까지 밖으로 튀어나와 배달차와 내리막을 함께 굴러가는… 그런 상상. 야쿠르트를 하나씩 주워 야쿠르트 아줌마를 따라가는 상상을 하다가 버스가 도착했고 덕분에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빠르고 예쁘지만, 허둥지둥 엉성한 달리기였다.
그때, 그녀를 본 사람들은 모두 잠시 웃었다.
나를 포함해 버스정류장에 있던 모든 사람에게 뜬금없었지만 귀여운 소녀가 뛰어가는 평범한 상황이었다. 그냥 맑고 화창한 날이었고 한 소녀가 너무 튀는 노란색 우비를 입고 뛰어갔을 뿐이었다. 처음에는 분명 그랬었다.
장마노랑우비광년 003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