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어와 사시미
두 학생의 대화를 엿들으며 나왔던 단어들을 조합해보니, 상상하다 보니 어제 저녁때 횟집에서 먹은 삼치구이 칼집과 레몬즙, 그리고 사장님의 사시미칼이 떠올랐다.
유난히 욕을 많이 섞어서 하던 학생이 그녀의 운동화와 같은 운동화를 사서 신었다가 온몸에 칼집이 난 채로 노란색 우비에 둘둘 말려서 변사체로 발견되지 않기를 기도하며 그녀의 예쁜 눈, 코, 입을 떠올렸다. 칼자국이 좀 있으면 어때, 야쿠자면 어때, 국제 결혼인가? 이 따위 생각을 해보았다.
며칠 후, 퇴근하고 집에 바로 왔더니 현관에 신발이 가득했다. 엄마가 계모임 가신다더니 우리 집에서 계모임을 거하게 치르고 계셨다. 대충 인사를 하고 방에 들어가려는데 이번에는 동네 어르신들의 수군거림이 들렸다.
또 우비소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녀에 대한 동네 어르신들의 이야기라니, 너무 궁금해서 괜히 거실 주변을 맴돌았다. 아침에 들었던 학생들의 이야기가 ‘그것이 알고 싶다’ 분위기의 잔인하고 미스터리한 사연이었다면, 어머님들 사이에 돌고 있는 소문은 아침마당이나 인간극장에 나올 법한 불쌍하고 가슴 아픈 내용이었다.
요약하면 우비소녀는 대충 이런 삶을 살았다고 전해진다.
제1화
정육점 사모님 편.
몇 해 전이던가, 갑자기 비바람이 휘몰아치던 날. 그녀가 남자친구와 우산 하나를 함께 쓰고 걷다가 음주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달려드는 차량을 발견한 남자친구가 그녀를 급히 옆으로 밀쳐서 목숨을 구했지만, 본인은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하더라. 그 후로 그녀는 지금처럼 미쳐버렸는데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완전 더 미쳐서 자꾸 극단적 생각을 하는 바람에 양쪽 팔에 칼자국이 가득하다더라. 그리고 사고 당일, 남자친구는 투명우산을 사려고 했는데 그녀가 까만색 우산을 사자고 하는 바람에 사고를 당했다는 생각에 어디서나 잘 보이는 노란색 우비를 사 입고 남자친구 귀신을 만나러 그렇게 사고 현장 주변을 달린다고 하더라.
…
허허허.
나는 그냥 웃었다.
처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알아둘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거실에서 엿듣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아예 아주머니들 사이에 눌러앉아서 과일도 깎고 커피도 타면서 집중할 수 있었다.
제2화
네일아트 사장님 편
정육점 언니 이야기처럼 다들 알고 있지만,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이 오피셜이다. 비가 엄청나게 오던 날 둘이 우산 쓰고 걷던 것은 맞는데 뺑소니 사고가 아니고 살인 사건이 있었다. 남자친구는 군의관이었고 2박 3일 휴가를 나왔다. 그렇게 짧은 휴가라도 감사하며 남자친구와 보내는 시간을 행복하게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충격적인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남자친구의 휴가는 원래 9박 10일이었고, 다음날부터 남은 휴가 기간 내내 다른 여자와 일본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것. 그녀는 조용히 진실을 물었지만, 남자친구가 끝까지 사실을 말하지 않자 준비했던 사시미칼로 남자친구를 찔러 죽였다고 한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남자친구의 휴가는 2박 3일이 맞았고 바람을 피운 적도 없으며, 이 모든 것이 그녀를 미워하던 남자친구의 여동생이 두 사람을 헤어지게 하려고 꾸민 짓이었다. 죽은 남자친구의 본가가 우리 동네인데 그녀는 깜방 생활을 마치고 출소 후 남자친구를 죽일 때 사용했던 사시미칼을 가슴에 품고 그 여동생을 죽이겠다고 매일 이 동네를 헤매고 있다. 노랑 우비를 입는 이유는 남자친구를 죽일 때 피가 너무 많이 튀어서 아끼는 블라우스가 피에 흠뻑 젖었던 더러운 기분을 잊지 못하고, 동생을 죽일 때는 옷에 피 묻을까 봐 우비를 입고 다닌다고… 하지만 그 가족은 이미 멀리 이사를 했다더라.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말했다.
“우리 네일 언니가 오피셜이라면 진짜인데?!”
…
허허허허.
네일 아주머니의 오피셜이라니 믿어야 하나...
오피셜이 끝나자 온갖 뇌피셜 몸피셜이 뒤를 이었다.
제3화
잡귀 퇴치 편
그녀의 엄마가 무당인데 굿하다가 실수로 자기 딸 몸에 음한 잡귀가 들어갔다. 비 오는 날은 잡귀가 딸을 지배하는 바람에 동네 주민들 해칠까 봐 봉인해두고, 구름 없이 맑은 날마다 동네에서 가장 강한 수맥 위를 따라 1,000일을 뛰어야 잡귀가 도망가는데 우리 동네에서 가장 강한 수맥이 버스 노선하고 똑같다더라.
제4화
기타 편
그냥 미친년이고 눈 마주치면 사람 죽인다더라.
비 오는 날 나오지 않는 이유는 맑은 날인 줄 알고 온종일 빨래를 한다더라.
우비 만드는 회사 마케팅팀장이라더라. 우비 홍보용으로… 등
…
허허허.
허허허허.
어허허허허.
나는 계속 웃었다.
계모임은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누군가에 의해 처음 시작된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점점 <내가아는 미친년 소문 뽐내기>가 되더니 온갖 그럴싸한 소문과 말도 안 되는 잡소문까지 섞여 아주 풍성하게 마무리되었다.
그래.
그녀는 아주 미친년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그녀는
정말 더럽게 많은 소문을 가진 미친년이었다.
그동안 모은 정보를 정리해보면 내가 사랑하는 그녀는.
온몸에 칼집이 있고, 등에는 잉어 문신이 있는데, 눈 마주치면 바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누군가를 죽이려고 가슴에 사시미칼을 품고 다닐 수도 있지만 알고 보면 남자친구를 뺑소니 사고로 떠나보낸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우비회사 마케팅 팀장인데 미친년이라서 비 오는 날이면 맑은 날인 줄 알고 하루 온종일 세탁기를 돌린다고 할 수 있겠다.
계모임이 끝나고 집이 고요해졌다.
뉴스에서 내일은 비가 온다고 한다.
내일은 볼 수 없을 그녀가 보고 싶다.
보고 싶은데...
그런데...
조금 무섭다.
그날 밤.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나는 그녀에게 고백했고
그녀가 예쁘게 웃으며 사시미칼을 들고 칼춤을 추었다.
사시미칼 끝이 내 살에 닿을 때마다
곧 노란색 우비에 내 붉은 피가 흥건히 고이고 있었다.
우비의 품질은 좋다고 느끼며
나는 피도 눈물도 없이 버스정류장 앞에서 죽었다.
그녀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늘 그렇듯 소문이라는 것은 퍼지면서 더 자극적으로 변해갔다. 어느새 그녀의 손에 죽은 사람이 다섯은 넘었고 그녀가 미친 살인마가 된 이유에 대해서 오조오억 가지는 넘을 것 같은 다양한 분석이 생산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네일아트 사장님의 뇌피셜 분석의 신뢰도가 가장 높았는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믿지는 않더라도 설마설마하다가 혹시 재수 없게 무슨 일이라도 당할까 싶었는지, 사람들은 조금씩 그녀를 피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장마노랑우비광년 005에서 계속